수술용 로봇 매년 폭발적 성장, 한국시장도 침투中
보수적인 의사들, 수술 로봇 변화 거부하고 독점 유지
그럼에도 1대 평균 25억원 넘는 고가…불티나게 팔려
[서울=뉴스핌] 한태봉 전문기자 = 한국에서 의사들의 파업이 장기화되면서 주목 받는 미국 기업이 있다. 바로 전 세계 '수술용 로봇' 시장 점유율 1위인 '인튜이티브 서지컬'이다. 로봇이 파업한 외과 의사들의 자리를 대체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의사 없이 100% 무인으로 작동하는 '수술용 로봇'은 없다. 대신 의사가 '수술용 로봇'을 활용하면 수술 시간이 대 폭 단축되는 게 장점이다.
'인튜이티브 서지컬'의 '수술용 로봇' 시장 점유율은 80% 내외다. 이 회사의 대표 수술 로봇인 '다빈치'는 4세대를 넘어 올 상반기에는 최신형인 5세대가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았다.
이에 미래 성장 기대감으로 올 상반기에만 주가가 32% 급등한 444달러를 돌파했다. 역사적 신고가로 과열 주의보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 '수술용 로봇'이 한국 비뇨의학과 표준치료…왜?
사람은 생명을 위협받는 중대한 병에 걸리면 가장 최상으로 치료 받기를 원한다. 전국에서 서울의 5대 대학병원으로 환자들이 몰려드는 이유다. 이런 환자들의 니즈에 맞춰 지난 수십 년간 제약 못지 않게 외과수술 방식도 비약적으로 발전해 왔다. 이는 '수술용 로봇' 덕분이다.
한국에서 '수술용 로봇'이 가장 많이 활용되는 의료분야는 어디일까? 바로 비뇨의학과다. 비뇨의학과에서 다루는 장기인 신장, 방광, 전립선은 복막 뒤에 붙은 후복막에 있거나 골반의 너무 깊은 곳에 위치해 있다. 따라서 전립선암이나 방광암 등에 '수술용 로봇'이 많이 활용된다.
기존에는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하는 전통의 '개복 수술'만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개복수술'이란 '배를 칼로 절개해 복강 내 장기를 치료하거나 제거하는 방식'을 말한다. 이럴 경우 복부에 절개창이 너무 커지게 된다. 따라서 수술 후 통증과 상처가 크고 회복 기간이 길다. 또 봉합부위의 감염 위험도 커진다.
그래서 진화한 게 바로 '복강경 수술'이다. '복강경 수술'은 작은 구멍을 뚫은 후 이산화탄소를 주입해 공간을 확보하고 수술 도구를 삽입해 진행한다. 개복 수술에 비해 통증과 상처가 작고 회복 기간이 짧다. 하지만 문제는 비뇨의학과 수술 중 특히 골반 쪽 장기는 골반 깊이가 너무 깊다. 기존의 복강경 장비로도 수술에 한계가 있다.
이에 따라 더 진화한 게 바로 '복강경 로봇수술'이다. 현재 비뇨의학과에서는 로봇 수술이 거의 표준수술처럼 자리잡은 상태다. 주로 '수술용 로봇'의 대명사로 꼽히는 '인튜이티브 서지컬'의 '다빈치 로봇'이 활용된다.
'복강경 로봇 수술'의 최대 장점은 '최소침습'과 '정교함'이다. 1~2cm 크기의 작은 절개만으로 수술을 시행한다. 로봇 팔은 인간의 손보다 섬세하고 정교하다. 손 떨림도 없다. 따라서 정밀하고 안전한 수술이 가능하다.
또 3D 고화질 영상 시스템을 통해 수술 부위를 확대해 보여준다. 의사는 수술 부위를 정확히 파악하고 수술을 시행할 수 있다. 수술 상처 부위가 작아 미용상의 목적으로도 많이 활용된다.
이런 장점으로 로봇수술은 종양(암), 결석 등 여러 비뇨의학 전문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활약 중이다. 그런데 한국과 달리 미국은 '수술용 로봇'이 비뇨의학과를 벗어나 '일반외과'에서 활용되는 비중이 훨씬 더 높다. 이미 '수술용 로봇' 침투율이 외과 전 부문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뜻이다.
◆ 한국서도 '수술용 로봇' 사용률 폭발적 증가
한국에서는 2005년부터 연세대학교 신촌 세브란스병원이 '인튜이티브 서지컬'의 '다빈치 로봇' 1세대 시스템을 도입했다. 이 당시 국내 최초로 담낭 절제술과 전립선절제술에 로봇수술을 적용했다. 이후 다른 여러 병원에서도 앞다퉈 '다빈치 로봇'을 도입하고 있다.
세브란스병원의 로봇 수술 누적건수는 2013년 1만례(건), 2018년 2만례, 2021년 3만례, 2023년 4만례로 빠르게 증가 중이다. 2023년말 기준 국내 로봇수술 누적 시행 건수는 약 31만례로 추정된다. 세브란스 병원의 로봇 수술 실적 점유율이 전체의 12%가 넘는 셈이다.
세브란스 병원뿐 아니다. 한국 전체로도 '인튜이티브 서지컬'의 '다빈치 로봇 시스템'을 이용한 수술 건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2023년도 한 해 동안만 약 5만례 이상의 수술이 진행됐다. 이 중 비뇨의학과 비중이 약 34 %로 알려져 있다.
로봇수술은 이제 한국에서도 비뇨의학과를 넘어 적용범위가 광범위하게 확대된 상태다. 기존의 복강경 수술로 진행하기에는 복잡한 수술에 널리 활용되고 있다. 위암과 대장암 수술 건수도 늘고 있다.
산부인과에서도 자궁 적출술, 근종 절제술 등에 활용된다. 또 부위에 따라 두강경(두개골, 경추 등)과 관절경(무릎, 어깨, 고관절 등) 수술에도 활용된다. 심지어 비만수술도 가능하다.
문제는 가격이다. 한국에는 약 200여대의 다빈치 로봇 시스템이 공급돼 있다. 이 로봇의 1대당 가격은 모델종류에 따라 10~27억원(7만~20만달러)에 달한다. 평균판매가는 무려 20억원(15만달러)이 넘는다. 물론 한국 환자들은 모두 수술용 로봇으로 수술 받을 수 있다. 단지 '비급여'라서 수술비용이 비싼 게 문제다.
[사진 = 서텨스톡] 다빈치 시스템 |
◆ '인튜이티브 서지컬'의 '다빈치' 발전사
'인튜이티브 서지컬(Intuitive Surgical)'은 20년 전인 1995년에 설립된 미국의 의료기기 회사다. 2000년에 세계 최초의 수술용 로봇 '다빈치 수술 시스템(da Vinci Surgical System)'이 미국 FDA의 승인을 받으면서 폭풍 성장해 왔다. 외과 수술 시 절개 부위를 최소화하는 '최초침습' 방식이 장점이다.
'다빈치'는 초기의 기본모델인 S와 Si를 거쳐 지금은 4세대인 다빈치 Xi와 X 모델이 많이 보급된 상태다. 다빈치 시스템은 기본적으로 4개의 로봇 팔(arm)로 구성됐다. 복잡한 수술에는 4개의 로봇 팔이 필요하다. 하지만 간단한 수술에도 많은 로봇 팔을 사용하면 오히려 도구 간 충돌 위험이 커지게 된다.
이런 필요성에 따라 새로운 라인업으로 2018년에 출시된 단일공 수술 로봇이 바로 '다빈치 SP(단일 포트)'다. 하나의 로봇 팔에 카메라와 수술도구를 동시에 장착한 형태다. 비뇨기과와 두강경(두개골 경추 등) 관련한 FDA의 승인을 받았다. 향후 두강경(두개골, 경추 등) 수술에 많이 활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또 다른 라인업으로는 2019년에 출시된 '폐생검 로봇'인 lon이 있다. '폐 생검(lung biopsy)'은 폐 조직 일부를 채취해 검사하는 의학적 시술이다.
'폐생검 로봇'인 lon은 최소 침습적 방식으로 폐 조직을 채취해 폐암 등을 진단 하기 위해 설계됐다. 폐암은 남자나 여자나 자주 걸리는 암 2위에 랭크 돼 있을 만큼 흔한 암이다. 따라서 '폐생검 로봇'인 lon의 수요는 탄탄하다.
최근 가장 뜨거운 관심은 받은 건 2024년 3월에 FDA의 승인을 받은 차세대 수술로봇 '다빈치 5'다. '다빈치 5'는 이전 모델인 '다빈치 Xi'를 계승했다. '다빈치 5'는 향상된 수술 정밀도와 3D 수술 영상시스템을 자랑한다.
또 이전 모델 대비 1만배 이상 향상된 컴퓨팅 파워도 눈길을 끈다. 당연히 성능이 좋아진 만큼 판매 가격도 상승했다. 기존 '다빈치 Xi' 모델 대비 약 15~30% 가격이 상승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랜만에 나온 신모델인 만큼 투자자들의 기대가 크다.
◆ '다빈치'가 '수술용 로봇' 시장 독점하는 이유는?
'인튜이티브 서지컬'은 20년간 수술용 로봇 시장을 지배해온 절대 강자다. 그런데 '다빈치'는 왜 독점에 가까운 80% 내외의 시장점유율을 아직도 지켜 내고 있는 걸까?
'인튜이티브 서지컬'의 경쟁사로는 대형 의료기기 회사인 '메드트로닉'과 초대형 제약회사인 '존슨앤드존슨'을 꼽을 수 있다. 특히 메드트로닉은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수술용 로봇' 시장에 본격적으로 침투 중이다.
하지만 아직 FDA가 승인한 로봇의 수술적용부위가 제한적이다. 그리고 설사 로봇 성능이 '다빈치'와 비슷한 수준까지 올라오더라도 또 다른 강력한 장벽이 있다.
의사라는 직업은 사람의 생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성향이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다빈치'는 이미 오랫동안 사용돼 온 만큼 외과 의사들 손에는 가장 편안한 기기다. 또 사전 교육도 잘 돼 있다. 이걸 버리고 새로운 기기를 선택해 또 교육을 받고 싶을까? 엄청난 성능차이가 나지 않는 한 변경할 이유가 없다.
병원 입장 또한 마찬가지다. 가급적이면 임상경험이 가장 많은 기기를 택하는 안전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10~27억원(7만~20만달러)에 달하는 고가의 장비 도입 시 가장 고려되는 건 역시 전 세계에서 얼마나 많이 사용됐느냐다.
일반 환자들도 임상경험이 가장 많은 숙련된 의사를 찾아 전국을 찾아 헤맨다. 아무리 대기 줄이 많더라도 서울의 유명 대학병원 의사에게 진료받기 위해 불편함을 감수한다. 고가의 의료기기 구매를 결정하는 병원 경영진 역시 전 세계적으로 임상경험이 많은 '다빈치'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 메인 제품보다 마진 높은 소모품 매출 껑충
'다빈치 시스템'은 2023년말 기준 전 세계에 8606대가 설치됐다. 전년 대비 14% 증가한 수치다. 같은 기간 로봇수술 건수는 229만건으로 전년 대비 22% 증가했다. '수술용 로봇' 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다빈치 시스템'의 설치가 늘어나고 있음에도 2023년 다빈치 시스템 매출액은 2조3000억원(17억달러)으로 전년 수준에 머물렀다. 이는 현재 신규로 출고되는 수술로봇의 약 50%가 리스(임대)로 제공되는 게 원인이다. 따라서 앞으로도 다빈치 제품 판매 시 1회성으로 인식되는 제품 매출액은 크게 증가하기 어렵다.
인튜이티브 서지컬의 사업부문은 크게 3가지로 구분된다. ① 다빈치 시스템 ② 부품 및 액세서리 ③ 서비스 분야다. '다빈치 시스템'보다 알짜인 건 바로 '부품 및 엑세서리' 분야다.
'부품 및 액세서리' 분야의 2023년 매출액은 5조8000억원(43억달러)으로 전년보다 22% 증가했다. 이는 메인 제품을 10~15회 사용 시 안정성을 고려해 의무적으로 부품을 교체하기 때문이다. 로봇 팔 끝 부분 등 교체해야 할 부품과 소모품이 많다. 이 분야가 '인튜이티브 서지컬'의 진짜 주력 수익모델이다.
서비스 분야의 2023년 매출액은 9조6000억원(71억달러)로 전년 대비 14% 성장했다. 의사들에게 로봇 조작에 필요한 전용 프로그램과 가상 시물레이션 등을 제공한다. 또 교육과 유지보수도 진행한다. 서비스 분야는 다년 계약이 기본이라 매출도 반복적으로 발생한다.
이런 사업구조로 볼 때 '인튜이티브 서지컬'은 콘텐츠 회사 같은 구독 모델로 진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시간이 갈수록 '수술용 로봇'의 전 세계 사용률은 증가할 수 밖에 없다. 시장점유율 세계 1위인 인튜이티브 서지컬의 독주는 앞으로도 한 동안 계속될 전망이다.
인튜이티브 서지컬은 경쟁사들이 본격적으로 '수술용 로봇' 시장에 진입하기 전에 차세대 첨단 제품인 '다빈치 5'를 통해 더욱 굳건하게 시장을 지켜 내려 한다. 앞으로 의료시장에서 필연적으로 '수술용 로봇'이 성장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투자자라면 '인튜이티브 서지컬' 주식에도 관심을 가져 보자.
longinus@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