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상의, '통상임금 100일' 실패조사 결과 발표
대기업 노조·퇴직자 소송 줄이어...중기는 상여금 바꾸기
대기업-중소기업 임금격차 확대 불가피
[서울=뉴스핌] 김승현 기자 = # A 대기업 인사팀은 통상임금 소송에 어떻게 대응할지 골머리다. 노조가 수천 명의 퇴직자에게 '퇴직금의 기본이 되는 통상임금에 상여가 포함됐다'며 '20년 근속하면 퇴직금 차액만 1000만원~2000만원' 소송단을 꾸리고 있다. 노무 담당자는 "인건비가 상대적으로 낮은 중국과 경쟁해야 하는데, 우리 회사는 임금 올려줄 여건만 만들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 "설 현금 말고 선물드리면 안되나요?" 중소 제조업체 B사는 매년 명절마다 직원들에게 상여금을 지급해 왔다.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됨에 따라 추가 시간외 수당이 따라 올라가게 생겨 고육지책으로 낸 아이디어다. C사 인사팀은 정기 상여금을 식비나 교통비로 바꾸는 방안도 고민 중이다. B사 관계자는 "제조업은 기본적으로 정기 상여가 많은 업종"이라며 "갑작스러운 임금상승에 어찌 대응할지 인사팀들이 우왕좌왕 하는 상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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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대법원이 '정기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라'고 판결한 후 100일 동안 산업현장이 혼란을 겪고 있는 것으로 30일 조사됐다.
대한상공회의소(회장 최태원)가 최근 조건부 상여금이 있는 기업 170여 개사를 대상으로 한 '통상임금 판결 100일, 기업 영향 및 대응 긴급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기업의 63.5%는 '통상임금 충격이 상당한 부담이 되거나 심각한 경영위기를 맞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 19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13년 통상임금 판결 이후 약 11년간 현장에서 통상임금 판단요건으로 작용해 왔던 정기성, 일률성, 고정성 중 고정성 요건을 폐지하면서 "(기존과 달리) 재직조건이나 근무일수 조건이 붙은 정기상여금 등 각종 수당들을 통상임금에 포함하라"고 판결한 바 있다.
판결 100일 동안 노동시장에는 혼란이 야기되고 있다. 대기업은 '때 아닌 줄소송', 중소기업은 '인건비 줄이는 아이디어 없을까요?'라며 갈팡질팡 중이다. 그 사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임금격차는 심화되는 상황이다.
실제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 포함 후 임금 상승률이 어떻게 되냐를 묻는 질문에 대기업 55.3%는 '5% 이상 임금상승'을, 23.1%는 '2.5% 이내 상승'된다고 응답했다. '2.5% 이내' 23.1%, '2.5~5%' 18.5%, '거의 증가하지 않을 것' 1.5%, '모름/무응답' 1.5%이다.
반면 중소기업은 25.0%가 '5% 이상 임금상승'을, 43.4%가 '2.5% 이내 임금상승'된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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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부품 제조중소기업 사장은 "중대재해처벌법을 시행하여 기업인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더니 이제는 법원이 종전 판결에 맞춰 잘 줘왔던 통상임금을 법에 미달한다며 임금체불 기업으로 만들어 버렸다"며 "요즘 정말 기업할 맛도 안 나고 이렇게 힘들게 경영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한탄했다.
늘어난 인건비 부담에 기업들은 임금인상을 최소화하고 정기상여금을 대체하는 동시에 신규인력을 줄이는 방향으로 대응을 계획 중이다.
대응책을 묻는 질문(복수응답)에 기업의 32.7%가 '임금인상 최소화'라고 답했고, 이어 정기상여금 축소 또는 대체(24.5%), 시간외 근로시간 줄일 것(23.9%), 신규인력 줄이는 등 인건비 증가 최소화(18.9%), 통상임금에 산입되지 않는 성과급 확대(17.0%) 등의 순이었다.
별다른 대책을 세우지 못한 기업도 21.4%에 달했다. '신기술 등 R&D통해 생산성 증대' 1.3%, '기타' 3.8%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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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기업들의 대응이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노동계는 올해 임금단체교섭지침 등을 통해 대법원 판결에 따른 통상임금 산입범위를 쟁점화해 기존 노사합의를 무효로 하고 재합의를 추진하도록 권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 노조의 줄소송 움직임도 걸림돌이다.
김동욱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올해 임금교섭의 주요 의제는 통상임금 산입범위가 될 것으로 보이며 당장 현실화되고 있지는 않지만 잠재되어 있는 소송도 많은 것으로 보인다"며 "이번 판결을 통해 재정적, 법적 위험에 노출된 기업의 입장에서는 근본적 해결을 위해 임금체계 개편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올해 가장 우려되는 노동시장 현안을 묻는 질문(복수응답)에 기업의 47.2%는 '최저임금 인상'을 꼽았다. 이어 중대재해에 대한 법원판결(35.2%), 주4일제 등 근로시간 단축(34.0%), 60세 이상 고용 연장(19.5%), 노조에 경도된 노동입법(19.5%) 순이었다.
이종명 대한상의 산업혁신본부장은 "글로벌 지형이 바뀌면서 고강도의 혁신이 필요한 상황에 중소기업 대표들은 통상임금 컨설팅까지 받고 있는 형국"이라며 "근로조건 결정은 노사합의라는 기본 원칙에 근거해 법제도적 보완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kimsh@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