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정간섭은 표면적 이슈...본질은 탈(脫)달러 시도 원천봉쇄
[시드니=뉴스핌] 권지언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브라질에 50%에 달하는 '관세 폭탄'을 투하했다.
표면적으로는 정치적 이슈를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브릭스를 중심으로 세를 불리고 있는 '탈달러' 진영의 움직임에 급제동을 걸려는 의도가 익힌다.
9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은 브라질에 50%의 상호 관세를 부과하는 내용의 서한을 공개했다. 이는 지난 4월 10%의 기본 관세만 적용했던 데서 무려 40%포인트 인상된 것이다.
◆ 경제 사안에 정치적 잣대...내정간섭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 앞으로 보낸 서한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브라질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을 대하는 방식은 국제적인 수치"라며 "이 재판은 열려서는 안 되고 마녀사냥을 즉시 끝내야 한다"고 했다.
관세와 무역 정책이라는 경제적 사안에 정치적 이슈, 그것도 내정간섭에 준하는 이유를 들이댄 것이다.
'남미의 트럼프'로 불렸던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은 2022년 브라질 대선에서 룰라 대통령에 패했다. 이후 지지자들은 대선 결과에 불복해 정부 청사 3곳을 습격하고 파괴하는 등 대규모 시위를 벌였고,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은 쿠데타를 모의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브라질의 관세 및 비(非)관세 장벽을 문제 삼으며 미국이 브라질과 기존 무역 관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미국 기업들의 디지털 교역 활동에 대한 '브라질의 계속된 공격과 다른 불공정 무역 관행'을 언급하며 제이미슨 그리어 무역대표부(USTR) 대표에게 브라질에 대한 조사를 즉시 시작할 것도 명령했다.
◆ 몹시 불편한 이웃...트럼프 vs 룰라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일에도 트루스소셜 계정에 글을 올려 보우소나루를 두둔하며, 그를 향한 재판을 "마녀사냥"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룰라 대통령은 트럼프가 보우소나루 관련 사안에 지속적으로 압력을 넣자 이날 밤 소셜미디어에 "브라질은 누구에게도 지도를 받지 않는다"고 밝히며, "쿠데타를 기획한 이들에 대한 수사는 브라질 사법 시스템의 영역이며, 외부 간섭이나 위협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룰라는 "일방적인 관세 인상에는 브라질의 경제적 상호주의 법으로 대응할 것"이라며 "브라질 국민의 주권과 이익을 향한 단호한 수호가 우리의 외교 관계를 이끌 원칙"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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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로이터 뉴스핌] |
◆ 내정간섭은 표피적 이슈…속내는 '탈달러 경고'
트럼프 대통령이 50%라는 관세 폭탄을 투척하면서 표면적으로는 정치적 문제를 이유로 들었지만, 실제로는 최근 브릭스를 중심으로 한 '탈달러' 움직임을 견제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은 그 진영의 중심에 있다.
달러의 '터무니 없는 특권'에 대한 룰라 대통령의 불만은 뿌리 깊다. 2023년 대통령직에 복귀한 이후로도 그 불만은 이어졌는데, 최근에는 중국과 한층 결속을 다지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지난 5월 중국을 방문했던 룰라 대통령은 당시 "우리는 하나의 통화에 의존하지 않는, 통화 그룹 혹은 (별도) 통화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달러의 굴레에서 자유로운 국제 무역 결제 시스템을 강조한 것이다.
당시 룰라 대통령은 "중국과 관계를 더 강화해 나갈 것"이라며 "그에 따른 미국의 잠재적 보복은 두렵지 않다"고 말했다. 브라질의 필요한 기술 발전을 이루기 위해 "중국의 도움이 필요하다"고도 강조했다.
또 지난 7일 브릭스(BRICS) 정상 회의 폐막 기자 회견에서는 브릭스를 겨냥한 트럼프 대통령의 경고, 즉 '반(反)미' 행보에 동참하면 10%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엄포를 정면으로 비판하며 "세계는 더 이상 황제를 원치 않는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 아킬레스건을 건드리지 말라!
독일 공영방송 도이체벨레는 트럼프 행정부의 이번 관세 조치의 강도는 지난 1월 "달러를 가지고 장난치는 국가들"에 대해 공언했던 100% 관세보다는 낮지만, 트럼프는 세계 기축통화인 달러를 지켜야 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재정악화에 따른 달러 신뢰성 문제가 잠복한 상황에서 트럼프의 동맹과 적성국을 가리지 않는 관세정책과 일방적 외교는 달러 질서를 더 위태롭게 할 위험을 안고 있다. 이는 달러에 대한 조금의 도전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날 선 반응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편 브라질은 멕시코와도 무역 협력을 강화하며 대미·대중 의존도를 벗어나려는 노력을 강화 중이다.
지난 1일 파이낸셜타임스(FT)는 양국 외교 소식통을 인용해 멕시코와 브라질이 기존 무역협정을 심화하기 위한 사전 협의에 돌입했다고 전했다.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취임한 이후, 양국 외교 당국 간 비공식 대화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으며, 양측은 이를 바탕으로 공식 협상 틀을 마련하고 있다.
양국은 규모 면에서 라틴아메리카 최대 국가들이지만, 과거에는 역내 주도권 경쟁과 경제 개방도 차이, 멕시코의 대미 무역 의존도 등으로 관계가 다소 거리를 둬왔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2기 정부의 관세정책, 그리고 최근 라틴아메리카 좌파 정권 간 이념적 공감대가 맞아떨어지면서 이번을 계기로 협력이 강화되는 분위기다.
현재 멕시코는 캐나다와 더불어 이미 25%의 관세를 적용받고 있는 상황이라 트럼프의 관세서한 대상국에서는 빠진 상태다.
미중 무역전쟁 속 반사이익을 얻었던 멕시코는 미국-멕시코-캐나다(USMCA) 조기협상을 통해 활로를 모색하려는 노력 중이다. 마르셀로 에브라드 멕시코 경제장관은 지난 5월 "USMCA의 공식적인 검토 개시는 9월로 예상된다"고 밝힌 바 있다. 당초 USMCA 협정 검토는 2026년으로 예상돼 있었다.
kwonjiu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