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최현민 기자 = "이사했다며, 어디 살아?" 누군가 물었다. 망설이다 어렵사리 입을 열었지만 나도 모르게 말끝을 흐리게 됐다. "그냥, 저기 주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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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민 건설중기부 기자 |
대한주택공사 시절에 대규모로 공급된 아파트들은 회사의 이름을 줄여서 '주공아파트'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지금까지도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지은 아파트는 주공아파트라는 이름으로 통칭되고 있다. 과거 수많은 서민 가정의 보금자리였고 지금도 전국 곳곳에 서른살 넘은 단지들이 남아 있다.
하지만 여전히 '주공아파트에 산다'는 말은 누군가에겐 부끄러움이 되고, 누군가에겐 타인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고 있다.
2010년대 초반 일부 학생들이 사용하던 단어들이 퍼지면서 주공아파트는 '형편이 넉넉지 않은 이들이 사는 곳'이라는 인식이 확산됐다. 어쩌면 우리가 무의식 중에 만들어낸 계층화된 주거 인식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노후화된 단지가 많고 민간 브랜드 아파트에 비해 외관이나 커뮤니티 시설이 부족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마저 저평가해야 할 이유는 없다. 십수년이 지났음에도 아직까지 주공아파트에 거주한다고 했을때 나오는 반응들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아파트 겉모습만으로 판단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문제는 사는 곳에 따라 서로 배척하고 끼리끼리 어울리는 주거지에 대한 차별을 아이들이 배우며 자란다는 것이다. 가장이 된 후 크게 신경쓰지 않았지만 혹시나 나의 자녀가 학교에 입학했을 경우 '주공 사는 애'라는 낙인이 찍혀 따돌림을 당하거나 상처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곤 한다. 상대적으로 청약 가점이 낮은 신혼부부나 청년들도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 주공아파트 입주를 두고 고민하는 사례도 종종 들린다.
오히려 최근 서울 강남이나 수도권 주요 입지에 위치한 주공아파트는 재건축 기대감에 수십억원을 호가하기도 하고, 입지 경쟁력을 따지면 최신 브랜드 아파트보다 나은 경우도 많다. 도심 곳곳에서 정비사업이 본격화되면서 가치가 높아진 것이다. 특히 오래된 주공아파트의 경우 저층으로 대지 지분이 넓어 재건축시 수익성도 높아지게 된다.
마치 '흙 속의 진주'와 같이 뒤늦게 가치를 인정받게 되지 않을까 싶다. 실제로 강동구 둔촌동의 '올림픽파크포레온'은 둔촌주공 1~4단지를 재건축했고 '고덕그라시움' '고덕아이파크' 등 고덕동과 상일동 일대 아파트들도 고덕주공 1~7단지를 재건축한 결과물이다. 특히 둔촌주공의 재건축 사업 추진 당시 '단군 이래 최대 규모'라는 수식어가 붙어 부동산 시장에서 단연 주목받았던 곳이다. '올림픽파크포레온'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재탄생한 이후에도 화제성이 높은 지역이다.
주공아파트에 대한 편견을 바꾸는 건 제도도, 시장도 아닌 사람의 인식이다. '주공에 산다'는 말이 더 이상 숨겨야 할 이야기가 되지 않기를, 그리고 그 공간이 누군가에게는 자랑스러운 삶의 터전이라는 점을 기억하길 바란다.
min72@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