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지식산업센터 거래량·거래금액 동반 하락
"정부 차원 대책 내달라" 투자자 청원 올라오기도
[서울=뉴스핌] 정영희 기자 = 부동산 호황기 인기 투자처로 인기를 끌었던 지식산업센터(지산)가 고금리에 급증한 대출 이자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수익률이 크게 떨어지며 공실이 속출한 데 이어 분양가보다 낮은 가격에 매물을 내놓는 '마피'(마이너스 프리미엄)도 등장했다. 저금리 시기 투자 급증의 부작용이 커지면서 정부는 대책 마련을 위해 고심하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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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2025년 전국 지식산업센터 거래량 및 거래금액 변동 추이. [그래픽=김아랑 미술기자] |
◆ 텅 빈 지산에 투자자 '고심'… 내놔도 안 팔린다
22일 경매 데이터 기업 '지지옥션'에 따르면 올 5월 경매로 나온 전국 지산 매물은 313건으로, 월별 기준 통계 집계를 시작한 2001년 1월 이후 가장 많았다. 지난달 30일 기준 전국에는 1539개의 지산이 있다. 이 가운데 수도권 물량은 1189개(77.3%)로 ▲서울 391개 ▲경기 717개 ▲인천 81개 등이다.
지산은 제조업, 지식산업, 정보통신산업 등에 속하는 사업장이 6개 이상 입주하는 산업시설이다. 도시 내외에 산재한 소규모 공장의 집단화를 위해 도입됐다가 첨단산업 입주를 위한 시설로 바뀌었다. 입주 업종에 제한이 있는 반면 취득세·재산세 등의 세금 혜택을 부여한다는 특징이 있다.
영세 소규모 공장의 입지난을 해소하기 위해 1988년 '아파트형 공장'이라는 개념으로 도입된 지산은 이후 2010년 지금의 명칭으로 바뀌었다. 정부에서 지산을 산업성장의 거점시설로 보고 택지개발지구 자족용지 등에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대규모 부지 활용과 지원시설 범위 확대 등의 영향으로 규모도 점차 커졌다.
분양 또는 매입가격의 80% 내외까지 대출이 가능해 대출금리가 낮았던 부동산 호황기에는 아파트나 오피스텔의 대체 투자처로써 개인들이 활발하게 매수했다. 기관투자자나 대기업이 많이 투자하는 오피스, 실수요자 비중이 높은 오피스텔과 달리 지산은 부동산 경기와 대출 금리에 따라 매입 수요가 크게 달라진다는 특징이 있다.
최근 공급은 늘고 수요는 줄어들며 당분간 가격 조정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산 인허가(승인) 건수는 2018년 이후 연간 100건 이상으로 뛰었고 2022년 141건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그러나 분양받을 사람이 점차 줄어들며 미분양 위험이 커진데다 분양 완료된 물건 중에서도 여러 건이 할인 가격으로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임차인을 구하지 못하거나 대출이자와 관리비 등 운영비를 감당하지 못해서다.
상업용 부동산 전문기업 '부동산플래닛' 조사 결과 올 1분기 전국 지식산업센터 거래는 총 552건으로 전 분기(971건) 대비 43.2% 줄었다. 거래금액 또한 44.8% 감소한 2184억원을 기록했다. 최근 5년 내 가장 낮은 수치다. 3.3㎡당 평균 가격도 1468만원으로 전 분기(1581만원) 대비 7.1% 하락했다. 정수민 부동산플래닛 대표는 "지산 시장에는 자금조달 부담, 누적된 공급 물량, 경기 둔화로 인한 기업의 수요 위축 등 복합적인 악재가 동시에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산은 공실 위험이 높은 상품으로 꼽힌다. 입주업체 대부분이 종업원 10명 미만 영세기업으로 경기가 악화되면 입주업체가 사업을 접거나 임대료를 미납할 위험이 큰 편이기 때문이다. '지식산업센터114'에 따르면 경기 평택과 고양, 남양주, 구리 등 지식산업센터 공급과잉이 심한 수도권 일부 지역은 공실률이 40~50%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손정락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원은 "건축비 상승 등으로 최근 몇 년간 지산 가격이 급등한 반면 공급 증가로 임대료가 정체되며 임대수익률이 대출금리를 하회하고 있다"며 "가격상승 기대감이 낮고 공급이 많아 임대료 인상이 어려운 곳은 가격조정 등으로 수익률이 올라야 매입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 지산→주택 용도변경, 실현까진 '먼 산'
공실이 늘어나며 투자자와 업계 양측에서 정부의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달 초 국민동의 청원 사이트에 '지산 실사용자 보호 및 제도 개선에 관한 청원'이 게재됐다. 충북 천안의 지산 소유주라는 A씨는 "지산은 정부가 장려해온 산업시설이지만 과도한 입주·사용 규제, 부실한 사후관리, 공실 폭증으로 인해 팔 수도 빌릴 수도 쓰기도 어려운 자산으로 전락했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해 기준 전국 지산 소유자 4만여명은 공실 비용과 대출이자를 감당하지 못해 폐업·신용불량 위기에 빠지고 있다"며 공실 해소를 위한 지원 등의 해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주거나 숙박시설로의 용도 전환도 고려해봐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지산을 주택으로 용도전환하면 지산 공실과 수도권 내 주택 부족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는 제안이다. 해외에서는 업무시설의 주택 탈바꿈이 제도권 내에서 허용되고 있다.
미국은 2023년 오피스의 주거 전환사업을 재정적으로 지원할 것이라고 발표한 이후 뉴욕시가 사무실 용도전환과 관련된 건축규제를 완화해 주택 2만가구를 공급하기로 했다. 일본 도쿄에선 오피스 빌딩이 임대·분양 맨션으로 바뀌었다. 프랑스 파리시는 2015년부터 오피스 건물을 주거용으로 전환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 또한 지산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시도하고 있다. 2018년 산업통상자원부는 청년 친화형 산업단지 추진방안에 따른 제도개선 조치로 산단 내 지산에 주거용 오피스텔 설치를 허용하도록 했다. 국토부는 올 3월 '건축물의 탄력적 용도 전환 지원 방안 마련'에 대한 연구용역을 발주해 지산 등 상업·업무용 건물의 용도전환 가능 여부를 검토할 예정이다.
지산의 주택화가 현실화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므로, 지산을 중심으로 한 지역산업 육성 대책이 도입돼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비수도권을 기반으로 하는 지식기반 산업의 규모가 성장하고 있는 현 여건을 고려한 새로운 활용 전략이 도입돼야 한다는 것.
유현아 국토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창업입지 또는 창업기업의 스케일업(매출과 고용 측면에서의 단기 급성장)을 지원하기 위해 비수도권 내 지산이 구심점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chulsoofriend@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