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 없는 매출의 늪"…원가율 90% 시대 고착화
"최소 내년까지는 버텨야"…양극화 심화 속 '데스밸리' 통과
[서울=뉴스핌] 송현도 기자 = 국내 건설업계가 사실상 '마른 수건 짜기'식 생존 모드에 돌입했다. 고금리 장기화, 원자재 가격 급등,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경색이라는 '3중 악재'가 장기화되면서 기업 존폐를 건 생존 경쟁이 본격화된 것이다. 특히 시공능력평가 상위권의 대형 건설사들마저 희망퇴직과 임원 축소에 나서며 업계 전반에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다.
◆ "수익성 불안불안"…현대엔지니어링·포스코 등 인력 쇄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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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엔지니어링 계동 사옥 [사진=현대엔지니어링] |
12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주요 건설사들이 조직 슬림화와 인력 효율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과거 불황기에는 신규 채용 축소에 그쳤다면, 이번에는 기존 인력을 직접 줄이는 구조조정 국면으로 전환된 모습이다.
대표 사례는 현대엔지니어링이다. 시공능력평가 6위인 현대엔지니어링은 이날 노사 협의를 거쳐 오는 23일까지 희망퇴직 신청을 접수하기로 했다. 회사 측은 "커리어 리빌딩 차원의 프로그램일 뿐, 신청자가 없으면 시행하지 않는다"며 "인력 선순환을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이번 결정은 지난달 플랜트본부 직원 1000여명을 대상으로 유급 휴직을 시행한 데 이은 후속 인건비 절감 조치다.
배경에는 수익성 급락이 자리한다. 현대엔지니어링의 올해 원가율은 90% 초반으로, 지난해 100%를 넘겼던 상황보다는 개선됐지만 여전히 '100만원 공사해 10만원도 못 버는' 구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과거 저가 수주 물량의 공사비가 급등하며 쌓인 구조적 적자가 인력 감축이라는 고육지책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해외 플랜트 현장에서 불거진 본드콜 사태까지 겹치며 위기감이 한층 증폭된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포스코이앤씨 역시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포스코그룹 차원의 쇄신 의지에 발맞춰 임원 조직을 약 20% 축소했다. 의사결정 속도를 높이고 고정비를 줄이겠다는 의도다. 또한 플랜트와 인프라 등 주요 사업부를 통폐합해 조직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안전 조직을 사장 직속으로 두어 중대재해 리스크 관리에 집중하고 있다.
이 외에도 주요 건설사 임원들의 급여 자진 반납과 무급 휴직 도입 등 '짠물 경영'이 확산하고 있다. 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 등 유관 업계의 무급 휴직 사례가 건설업계 전반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 "이익 없는 매출의 늪"…원가율 90% 시대 고착화
건설사들이 극한의 비용 절감 모드에 돌입한 배경에는 통제 불가능한 수준으로 치솟은 원가율이 자리한다. 일반적으로 원가율이 90%를 넘으면 판관비를 감안할 때 영업이익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현재 주요 10대 건설사 중 7곳 이상이 원가율 90%를 초과한 상태다.
문제의 뿌리는 2021~2022년 부동산 호황기에 수주한 현장들이 착공하는 시점에 자재비·인건비가 폭등한 데 있다. 이로 인해 상당수 사업장이 '역마진' 구조에 빠졌고, 미착공 현장의 PF 이자 부담까지 눈덩이처럼 쌓이면서 유동성 압박은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
그 여파로 도산 사례도 증가세다. 올해 1~10월 폐업한 종합건설업체는 412곳으로 전년 동기 대비 4.6% 늘었고, 같은 기간 부도 처리된 업체도 19곳에 달한다. 영업활동만으로는 현금 창출이 어려워지자 건설사들은 보유 자산을 매각하며 생존을 위한 현금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대형 건설사들도 건설 혹한기 속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GS건설은 수처리 분야 핵심 자회사인 'GS이니마' 매각에 속도를 내고 있다. 예상 매각가는 약 1조6770억원으로, 미래 성장 동력을 일부 희생하더라도 당장 급한 불을 끄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유동성 우려가 제기됐던 롯데건설은 서울 잠원동 본사 사옥 매각 검토에 이어 남양주 군부대 부지 등 자산 매각에 속도를 내고 있다. IPO(기업공개)를 준비하던 SK에코플랜트 역시 환경 관련 자회사를 매각하며 재무 건전성 확보로 전략을 수정했다.
◆ "최소 내년까지는 버텨야"…양극화 심화 속 '데스밸리' 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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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스코이앤씨 사옥 [사진=포스코이앤씨] |
업계에서는 이번 인력 감축 조짐이 단순한 비용 절감을 넘어, 2027년 이후 도래할 '수익성 반등' 시기를 대비한 선제적 체질 개선으로 해석하고 있다.
대형 건설사 한 관계자는 "최근의 인력 감축은 '선별 수주' 기조로 인해 운영하는 현장 수 자체가 줄어든 데 따른 자연스러운 수순"이라며 "당장 내년 실적 개선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2~3년 후를 내다본 전략적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핵심은 '수익성 믹스(Mix) 전환'에 있다. 현재 건설사 실적의 발목을 잡는 요인은 코로나19 시기(2020~2022년)에 낮은 공사비로 확보한 공사 물량이다. 업계에 따르면 이 같은 '저마진 현장'이 순차적으로 준공되며 포트폴리오에서 이탈하고, 최근 공사비 상승이 반영된 '고마진 신규 프로젝트'가 본격 착공되는 시점이 맞물려야 실질적인 턴어라운드가 가능하다.
업계 관계자는 "원가율이 높은 구형 현장을 털어내고 수익성 높은 신규 현장이 매출을 주도하는 국면에 들어서면 실적 개선 속도는 빠르게 나타날 것"이라며 "그 전까지는 조직 슬림화 등을 통해 고정비를 최소화하는 생존 전략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관건은 버티기다. 내년 전망 역시도 그다지 밝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CERIK) 등에 따르면 2026년 건설 수주와 투자는 기저효과로 인해 수치상 반등할 것으로 예상된다. 11월 건설동향브리핑을 살피면 2026년 건설 수주는 공공 부문의 주도로 전년 대비 4.0% 증가한 231.2조 원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되며, 건설 투자 역시 2025년의 큰 폭 감소(-5.3%~-8.8%) 이후 2026년에는 2.0% 수준의 완만한 회복세로 돌아설 것으로 보인다.
다만 실질적인 체감 경기는 여전히 차가울 전망이다. 건축물 착공 면적은 2026년에도 전년 대비 11~12% 증가에 그쳐, 과거 호황기 수준을 회복하기에는 역부족일 것으로 판단되며, 건설 기성액은 오히려 10% 수준의 역성장이 예상돼 실질적 공사 물량 부족은 여전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시장의 양극화가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수도권 주택 시장과 해외 원전·플랜트 수주 능력을 갖춘 현대건설, 삼성E&A 등 일부 대형사는 실적 턴어라운드가 기대되지만, 지방 주택 사업 비중이 높은 중견·중소 건설사들은 한계 상황에 내몰릴 가능성이 크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건설업계는 2026년 이후 회복기까지 살아남기 위한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을 건너는 중"이라며 당분간은 이 같은 기조가 계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dosong@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