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인재 육성에 초중고, 대입, 교원 포함
대학 교수 교육·평가 정책 '사각지대'
AI 활용 투명성 및 평가 기준 재설계 필요
[세종=뉴스핌] 이경태 기자 = 정부가 2030년까지 피지컬AI 세계 1위를 목표로 한 인공지능(AI) 국가전략을 제시했다.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는 지난 15일 98개 과제를 담은 '대한민국 인공지능행동계획안'을 발표했다. 초·중·고 연속적인 AI 필수 교육체계를 구축하고, 내년에만 9조9000억원을 투입해 핵심인재를 확보하겠다는 계획이다.
최근 한 대학 교수가 학위논문 심사 시 생성형 AI를 쓴 부분을 고백하지 않으면 졸업 불가 처분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찬반 논쟁이 뜨거웠다. 찬성 측은 "연구윤리를 지켜야 한다"고 했고, 반대 측은 "AI를 안 쓰는 게 더 비효율적인 시대"라고 맞받았다.
이 두 장면은 한국 AI 정책의 심각한 모순을 보여준다. 정부는 초중고부터 'AI 활용 역량'을 미래 핵심 경쟁력이라 외치며 적지 않은 예산을 투입할 예정이다. 그런데 그렇게 키운 학생들이 대학 학부나 대학원에 오면 AI 사용은 갑자기 의심의 대상이 된다. 피지컬AI 1위를 외치면서, 정작 그 인재를 키우는 대학원에서는 AI를 쓰면 졸업을 못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정부의 AI 행동계획안을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공백이 발견된다. 초중고 교사를 위한 연수체계, 학생을 위한 AI 교육, 대학·대학원 인재 양성, 심지어 산업 현장 인력 교육까지 있다. 그런데 단 한 그룹이 빠져 있다. 대학 교수다.
초중고 교사는 연수를 받고, 학생들은 AI 교육을 받는다. 그렇게 키운 인재들이 대학, 대학원에 진학해 석박사 과정까지 밟는다. 그들을 지도하고 평가하는 사람이 바로 대학 교수인데, 정작 이 교수들이 AI를 어떻게 이해하고 평가해야 하는지에 대한 계획은 어디에도 없다.
더 근본적인 질문이 있다. "AI를 썼다"는 것의 경계는 어디인가. 문법 교정 도구를 썼거나 AI로 영문 논문을 번역한 것은 어떠한가. 문장을 다듬은 것이나 AI 검색으로 논문을 찾는 것은 또 어떻게 봐야하나. 연구 아이디어를 AI와 브레인스토밍했지만 글은 직접 쓴 경우는 또 어떻게 판단해야 하나.
엘스비어 같은 주요 학술 출판사들이 AI 사용 가이드라인을 만들었지만, 그 존재조차 모르는 교수와 학생이 적지 않다. 기준은 모호하고, 해석은 각 심사자의 주관에 맡겨져 있다.
정부는 오픈AI, 앤트로픽 등 글로벌 AI 기업과의 협력을 확대하려는 정책 방향을 내놓고 있다. 글로벌 연구 현장에서는 코딩, 영어 교정, 방대한 문헌 정리 등에서 AI를 활용하는 사례가 빠르게 늘고 있다. 점차 AI를 연구를 위한 기본 도구 중 하나로 인식하는 분위기도 형성되고 있다.
그런데 한국 대학원생들은 AI를 활용하면 "글이 너무 잘 써져 있어서 수상하다"는 의심을 받는다.
진짜 문제는 AI 사용 여부가 아니다. 첫째, 검증 없는 복사-붙여넣기다. AI가 만들어낸 환각 인용을 확인도 않고 논문에 넣는 무책임이다. 둘째, 이해 없는 사용이다. AI가 써준 내용을 자신이 설명조차 못하는 무능력이다. 셋째, 투명성 결여다. AI를 썼으면서 마치 자기가 다 한 것처럼 포장하는 부정직이다.
따라서 심사의 초점은 "너 AI 썼지?"가 아니라 "넌 네 연구를 제대로 이해하고 책임질 수 있니?"여야 한다. 평가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 논문 텍스트를 읽으며 "이 문장 AI 같은데?"라고 의심할 게 아니라, 구두 심사에서 연구 설계의 논리, 방법론 선택의 근거, 결과 해석의 타당성을 깊이 있게 물어야 한다.
만약 AI가 생성한 논문을 전문가도 구분할 수 없다면, '논문을 잘 쓰는 능력' 자체가 더 이상 학위의 유효한 기준이 아니라는 뜻이다. 학위가 증명해야 할 것은 복잡한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 방법을 독창적으로 설계하는 능력, 비판적으로 사고하고 논리적으로 논증하는 능력이다. 이것들은 AI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영역이다.
정부의 AI 행동계획안에 필요한 것은 명확하다. 대학원 교수진을 위한 AI 시대 연구 지도 및 평가 가이드라인 개발, 학문 분야별 AI 활용 윤리 기준 수립, AI 사용을 투명하게 밝히되 불이익이 없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 텍스트가 아닌 연구 역량 중심 평가 방법론 개발이다.
진짜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손으로 쓴 논문'을 원하는가 아니면, '학문적으로 가치 있는 연구'를 원하는가. '과거 기준으로 평가받은 박사'를 원하는가, '2030년 피지컬AI를 이끌 인재'를 원하는가.
후자라면 지금 당장 대학원 평가 기준을 전면적으로 재설계해야 한다. 바뀌어야 할 것은 학생들의 AI 사용 습관이 아니라 교수들의 인식이고, 정부의 정책 사각지대다. 그것이 없다면 수조원은 허공으로 증발하고, 피지컬AI 1위는 영원히 구호로만 남을 것이다.
biggerthanseoul@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