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 규모 헤지펀드 제칠 기세
부와 사회적 지위의 상징격
[서울=뉴스핌] 황숙혜 기자 = 미국 패밀리 오피스의 자산 규모가 헤지펀드 업계를 바짝 추격하는 가운데 월스트리트 뿐 아니라 이른바 메인 스트리트에서도 새로운 권력 세력으로 급부상 했다.
초고액 순자산 가문들 사이에 유행처럼 번져 나가는 패밀리 오피스의 자금이 경제 곳곳에 파고들면서 인공지능(AI)부터 헬스케어, 정치권까지 영향력을 확대하는 움직임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2월25일(현지시각) 패밀리 오피스의 자산 규모가 폭발적으로 증가, 부의 상징인 동시에 사회적인 지위까지 장악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회계 컨설팅 업체 딜로이트에 따르면 패밀리 오피스를 보유한 가문들의 자산 규모가 2025년 6억90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보이고, 2030년까지 9조달러를 돌파할 전망이다. 향후 몇 년 이내에 헤지펀드보다 몸집을 확대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은행을 포함한 금융권은 패밀리 오피스의 모든 필요를 충족시키는 데 사활을 거는 모양새다. 기업가와 투자 매니저들 역시 이들 가문의 막대한 부에서 한 몫 챙기려고 안간힘을 쓴다.
패밀리 오피스만 전문적으로 다루는 넬슨 멀린스의 헨드릭 조르단 파트너는 WSJ과 인터뷰에서 "이들은 단순히 성장하는 게 아니라 폭발적으로 확대되고 있다"며 "차세대 사모펀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자산가들 사이에 패밀리 오피스 설립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제프 베이조스와 마이클 델, 빌 게이츠 등 거물들이 수 년 전부터 패밀리 오피스를 세우고 수십억 달러를 관리해 온 가운데 수 억 또는 수천만 달러의 자산을 가진 이들도 뛰어들고 있다.
딜로이트에 따르면 전세계적으로 8000개 이상의 싱글 패밀리 오피스가 운영되고 있다. 2019년 6130개에서 30% 이상 뛴 수치다. 딜로이트는 2030년까지 1만개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한다.
순자산 7500만달러 이상의 가문과 일하는 US 뱅크 어센트 프라이빗 캐피탈 매니지먼트의 저스틴 플래치 자산 전략 책임자는 "초고액 자산가들 사이에 패밀리 오피스를 보유하고 있는지 여부가 화제"라며 "칵테일 파티에서 가장 뜨거운 관심사"라고 전했다. 패밀리 오피스의 보유 여부가 거물들 사이에 지위의 상징격으로 통한다는 얘기다.
대형 패밀리 오피스는 아폴로 글로벌 매니지먼트나 블랙스톤 등 기존의 거대 기관 투자자들과 경쟁할 수 있을 정도로 세력을 키웠다.
이들은 단순한 주식 투자를 넘어 인수합병(M&)에도 참여한다. 퍼퀘트 캐피탈의 창업자 고(故) 아서 샘버그와 애디슨 피셔의 오피스는 12월 초 트럼프 미디어 앤드 테크놀로지 그룹과 60억달러 규모의 합병 계약을 체결한 핵융합 에너지 업체 TAE 테크놀로지스의 투자자 가운데 하나다.
지역 교사와 소방관들이 가입한 공적 연금이나 투자자들에게 정기적으로 재무제표를 제공하는 헤지펀드와 달리 패밀리 오피스의 수장들은 자신 이외에 누구에게도 책임지지 않는다. 이는 장기간에 걸쳐 극심한 변동성을 견디거나 대규모 베팅을 강행할 수 있는 재량권을 부여한다. 트레이더와 자문가들은 패밀리 오피스가 종종 파생상품을 통해 베팅을 헤지하는 데 거의 관심이 없다고 전한다.
특정 종목이나 섹터에 대한 강세 베팅을 계속 유지하려는 움직임은 상당수의 기업들에게 매력적인 자금원으로 비쳐진다.
에베레스트 그룹 창업자 겸 기업가 비노드 굽타는 "정말 많은 제안을 받는다"며 "매일 수많은 메일을 받는데 열어 보지도 않고 삭제한다"고 말했다.
패밀리 오피스는 부유한 가문의 재정 생활에 중추로 부상했다. 많은 패밀리 오피스가 부유한 개인과 자녀들을 위해 연간 수천 건의 청구서 지불을 포함한 일상적인 업무를 처리하고, 이들이 신용카드 명세서를 볼 필요가 없도록 한다. 전세계 개인 부동산에 직원을 배치하고, 비행기나 요트 등 '장난감'을 선택하고,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자문가들과 협력한다. 여행 예약부터 짐 싸기나 관리, 레스토랑 예약까지 모든 것을 수행한다.
일부 패밀리 오피스는 투자를 위해 소수의 직원만 고용하지만 다른 곳들은 수십 명에서 수백 명의 직원을 두고 있다. 가정부나 집사부터 심리 상담사까지 다양한 부류의 인력을 채용한다.
씨티그룹이 300개 이상의 패밀리 오피스를 대상으로 실시한 서베이에서 5억달러 이상의 자산을 가진 패밀리 오피스 중 5분의 1 가량이 미술 자문가를 둔 것으로 나타났다.
초부유층 투자자들은 다른 패밀리 오피스의 동향에 대해 뜨거운 관심을 보이고, 종종 정보를 공유하거나 공동 투자에 나서기도 한다.
특정 패밀리 오피스가 매력적인 투자 기회를 감지하면 다른 자산가들이 참여, 집단으로 움직이기도 한다는 얘기다. 이 때 해당 가문의 네트워크에 연결된 오피스는 더 유리한 거래 조건을 확보할 수도 있다고 변호사와 자문가들은 말한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부자들의 재산 관리를 맡았던 패밀리 오피스가 이제 거대 사모펀드와 직접 경쟁할 정도로 규모를 확대했고, 수 년 뒤에는 헤지펀드보다 더 큰 자산을 보유할 전망이다.
일부에서는 공공 연금이나 헤지펀드와 달리 패밀리 오피스의 경우 투자자 보고 의무가 없어 불투명하다고 지적한다. 무시할 수 없는 권력 집단으로 부상한 패밀리 오피스가 금융시스템 측면에서 잠재적인 리스크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shhwang@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