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세 차례와 다른 점은
중앙은행·ETF·실물 '삼중 매수 구조'
[서울=뉴스핌] 황숙혜 기자 = 달러가 무너지지도 않았고 소비자물가가 1980년처럼 두 자릿수로 폭주하는 상황도 아니다. 그런데도 금값은 온스당 5000달러를 기록하며 과거 세 차례의 '골드 피크'를 모두 넘어섰다.
인공지능(AI) 도구로 과거 50년 치 금·금리·달러 데이터를 겹쳐 보면, 이번 랠리는 단순히 또 하나의 버블이라기보다 과거와 전혀 다른 환경에서 나타난 네 번째 골드 사이클에 가깝다는 결론이 나온다. 시장은 다시 묻고 있다. 1980년식 인플레이션 공포도, 2011년식 유럽위기도, 2020년식 팬데믹 패닉도 아닌데 왜 이렇게까지 금을 사들이는가.
AI 도구로 1970년대 후반부터 금 가격과 실질금리, 달러 지수, 글로벌 이벤트를 시간축 위에 올려보면 골드의 큰 피크는 네 번이었다.
소위 볼커 쇼크 직전의 1980년, 유럽 재정위기와 미국 신용등급 강등이 겹친 2011년, 팬데믹과 제로금리·양적완화(QE)가 정점을 찍은 2020년, 그리고 이번이다. 앞의 세 번은 모두 단일 이슈가 시장을 압도하던 순간이었다. 반면 이번 사이클은 인플레이션과 재정, 정치, 지정학, 통화 패권에 대한 중간 강도의 불신이 겹치면서 나타난 결과라는 점에서 성격이 다르다.
AI 분석으로 과거 세 번의 골드 피크를 복기하면 차이가 선명해진다. 1980년 1월 금은 온스당 850달러까지 폭등했다가 이후 20년 넘게 하락과 박스를 반복했다. 당시에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연 14% 선까지 뛰었고, 폴 볼커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연방기금 금리를 20% 근처까지 끌어올렸다.
AI가 당시 데이터를 재구성해 계산한 실질 금리는 7~9% 수준에 이르렀고, 이는 금이 기대 수익률 면에서 채권과 현금에 완전히 밀리는 구간이었다. 연준이 인플레이션을 꺾기 위해 경기침체와 실업률 급등을 감수하겠다는 신호를 보내자 금은 한 번의 피크를 남긴 채 긴 침체기로 밀려났다. 1980년 사이클의 교훈은 명확했다. 중앙은행이 물가를 잡겠다고 마음먹고 정치가 그 비용을 감내한다면 금은 버블로 끝난다.

2011년 고점도 마찬가지로, 강력한 정책 전환이 뒤따른 '위기형 사이클'이었다. 유럽 재정위기와 미국 신용등급 강등으로 세계가 흔들리던 당시 금은 연평균 온스당 1568달러, 고점 기준 1900달러 안팎까지 올랐다. AI로 당시 뉴스와 리포트를 분석해 보면 키워드는 '유로존 붕괴'와 '미국 디폴트 리스크', '재정 절벽'이었다.
그러나 유럽은 긴축과 구제금융, 미국은 재정 합의와 점진적 긴축으로 위기를 봉합했고 이후 금리는 서서히 올라갔다. 금은 위기 진정과 함께 2011년을 정점으로 2015년까지 40% 가까이 하락했다. 다시 한 번 '한 번의 큰 공포 → 정책 대응 → 위기 해소 → 금 조정'이라는 패턴이 작동한 셈이다.
2020년 팬데믹 피크는 또 다른 유형이었다. AI가 2019~2023년 데이터를 돌려 본 결과, 금은 2020년 초 온스당 1500달러대에서 그해 여름 2070달러 선까지 약 27% 급등했고, 이후 1700~1900달러 박스를 오가다가 2023년 이후 2000달러를 재차 상향 돌파했다.
팬데믹 초기에는 글로벌 경기 붕괴와 금융 시스템에 대한 공포가, 그 이후에는 제로금리와 무제한 QE, 재정 부양책이 금을 떠받쳤다. 하지만 2022년 이후 연준과 주요 중앙은행이 급격한 금리 인상과 양적긴축(QT)에 나서면서 금은 한동안 2000달러 상단에서 막히는 모습을 보였다. 이때도 핵심은 같다. '극단적인 완화 → 인플레이션 → 강력한 긴축'이라는 순환이 금의 랠리와 조정을 설명했다.
AI 도구로 네 번째 피크, 즉 2025~2026년 사이 온스당 5000달러 돌파 구간을 다른 세 번과 나란히 놓고 보면 그래프 모양보다 환경이 더 눈에 띈다.
첫째, 인플레이션은 이미 피크를 지난 상태다. AI가 주요국 물가와 금 가격의 상관관계를 재추정한 결과 1970~80년대에 인플레이션이 골드를 거의 1:1로 끌어올렸다면 2010년대 이후에는 인플레이션 자체보다 정책 신뢰와 실질금리 기대가 금의 설명력을 더 많이 차지하는 것으로 나온다. 이번에는 CPI가 두 자릿수로 폭발하지 않았는데도 금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인플레이션 공포보다는 물가를 제외한 다른 모든 것에 대한 불안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둘째, 연준이 볼커처럼 행동할 수 있는 정치, 재정 여건이 아니다. 1980년대에는 연준이 기준금리를 20%까지 올려도 연방정부 부채 비율이 오늘만큼 높지 않았다. 지금은 GDP 대비 120%를 넘나드는 부채와 고령화된 유권자 구조, 정치 양극화가 삼중 부담으로 얹혀 있다.
AI로 부채와 금리, 성장률을 동시에 넣어 시뮬레이션한 여러 리서치 모델은 볼커식 충격 요법이 재현될 경우 단기간 내에 재정위기와 실업 폭증, 금융 불안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질 것이라는 결론을 내놓는다. 다시 말해, 이론상 금을 꺾을 수 있는 정도의 고금리를 쏟아붓는 전략 자체가 정치, 경제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는 설명이다. 시장은 이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고, 그래서 이번에는 결국 중앙은행이 금을 누를 정도로 강하게 나올 수 없다는 쪽에 베팅하는 모양새다.
셋째, 달러 패권에 대한 도전이 과거와 차원이 다르다. JP모간과 국제통화기금(IMF), 여러 리서치 기관이 AI 기반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분석한 결과, 글로벌 외환보유액에서 달러 비중은 2000년대 초 70%대에서 최근 58~59%대까지 내려왔다.
달러가 아직 지배적인 것은 맞지만 감소 속도가 빨라진 것도 사실이다. 중국과 러시아, 일부 신흥국은 금과 위안화 기반 결제 시스템, 양자 통화 스와프, 금 담보 위안화 대출 등 탈달러 인프라를 착실히 쌓아 왔다. 베이징의 전략을 AI로 분석한 보고서들은 정면 충돌이 아니라, 병렬 시스템을 만들고 그 위에 금을 얹는 방식이라는 점을 반복해서 강조한다.
2011년에는 유로존 위기가 유로를 흔들었지만 달러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축에 있었다. 지금은 달러 역시 제재와 무기화에 대한 반작용, 재정 리스크, 정치 리스크에 동시에 노출돼 있다.
넷째, 공식 부문과 민간 부문의 행동이 일치하는 드문 시기다. 과거 사이클에서는 투자자들이 금을 사면서도 중앙은행은 금을 팔거나 혹은 공식 부문이 금을 사들여도 민간 수요는 상대적으로 조용한 경우가 많았다.
세계금협회(WGC)와 투자은행 리포트를 AI로 종합해 보면, 최근 2~3년간은 중앙은행과 금 ETF, 실물 투자 세 축이 동시에 순매수자다. 신흥국 중앙은행은 달러 대비 금 비중을 늘리고, 서구의 ETF와 로열티 회사에는 기록적인 자금이 들어오고 있다. 1980년에도, 2011년에도 없었던 '3중 매수 구조'가 바로 이번 사이클의 특이점이다.
shhwang@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