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장환수 스포츠전문기자= 출전 명단 어디를 뒤져봐도 북한 국기는 없다. 2018년 평창에서 세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북한은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에선 자취를 감췄다. 정치적 보이콧 때문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징계 탓도 아니다. 성적이 모자라 출전 티켓을 한 장도 따내지 못했다. 대신 백두산 설원을 배경으로 '그들만의 동계올림픽'을 꾸렸다는 소식이다.
이번 동계올림픽에는 90개국이 넘는 국가에서 2900명 안팎의 선수가 참가했다. 동계올림픽에 꾸준히 얼굴을 비쳤던 IOC 회원국 가운데 스타트리스트에서 흔적이 완전히 사라진 나라가 바로 북한이다.

이 공백은 한 번에 생긴 게 아니다. 북한은 코로나19 확산을 이유로 2020 도쿄 하계올림픽을 건너뛰었다가 IOC 징계를 받았다. 그 결과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에도 나가지 못했다. 징계가 풀린 뒤에도 국경 봉쇄와 국제대회 공백이 길어지면서, 동계 종목 전반의 기량과 랭킹이 추락했다. 밀라노를 향한 예선 레이스에서 철저히 밀렸다.
북한이 가장 기대를 걸었던 건 피겨 페어였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때 존재감을 알렸던 렴대옥-김주식(또는 한금철 조합) 라인이 마지막 희망이었다. 하지만 올림픽 추가 쿼터를 걸고 열린 지난해 9월 피겨 페어 올림픽 퀄리파잉 대회에서 북한은 11팀 중 10위에 그쳤고, 상위 세 팀에게만 주어지는 밀라노행 티켓을 놓쳤다.
흥미로운 것은 북한이 이 공백을 메우는 방식이다. 북한 매체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북한은 올림픽 개막을 사흘 앞둔 4일 양강도 삼지연시 백두산 지구 체육촌에서 2026년 전국겨울철체육경기대회의 막을 올렸다.

개회식이 열린 곳은 빙상호케이(아이스하키) 경기장이다. '백두혈통의 성지'라고 주장하는 백두산 주변 해발 1600m 베개봉 일대에 조성된 동계스포츠 전용 단지 한복판이다. 이 체육촌은 스키 슬로프, 눈썰매, 초급 스키 코스, 실내 빙상장과 아이스하키 링크, 선수 숙소까지 갖춘 북한판 '올인원 윈터 리조트'로 꾸려졌다. 인민들이 스키·썰매를 즐기고 실내 축구, 각종 체육오락을 곁들일 수 있는 종합 겨울 레저 타운으로 북한이 선전해온 곳이다.
이번 대회에는 빙상호케이, 빙상휘거(피겨스케이팅), 스키 등 5개 종목에서 50여 개 세부 종목이 열린다. 개막식 연설자는 이를 "겨울철 체육 종목 기술을 또 한 번 비약시키는 중요한 계기"라고 치켜세웠다. 겉으로는 평범한 전국 동계체전이지만, 시점과 장소를 보면 사실상 '밀라노 대체 이벤트'에 가깝다.

북한의 마지막 동계올림픽 출전은 2018년 평창이었다. 당시 북한은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에 포함된 12명을 포함해 5개 종목, 22명의 선수를 파견했다. 나름대로 경쟁력이 있었던 북한 동계올림픽 자산은 잇따른 국제대회 공백 속에 빠르게 닳아버렸다.
문제는 이 '백두산 올림픽'이 북한 동계스포츠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플랫폼이 될지, 아니면 베이징에 이어 밀라노도 놓친 현실을 가리는 내부용 이벤트로 남을지다. 평창이 열어줬던 문을 스스로 닫은 뒤, 북한은 다시 백두산 눈밭 위에 새로운 이야기를 그리려 한다. 하지만 그 설경이 다시 전 세계 중계 카메라에 잡히려면, 언젠가는 국제무대의 냉정한 쿼터 경쟁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zangpabo@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