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대차대조표·시장 개입 비판
월가 "질병 자체보다 해로운 치료" 경고
[서울=뉴스핌] 황숙혜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신임 연방준비제도(Fed) 의장 '픽' 케빈 워시의 '대차대조표 전쟁'이 벌써 월가에 뜨거운 감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비대해진 연준의 대차대조표를 과감하게 줄이고 준비금 체계를 재설계하겠다는 워시의 입장을 놓고 논란이 가열되는 모양새다.
AI 도구를 이용해 주요 외신들을 분석한 결과 워시의 출발점은 분명하다. 위기 이후 9조달러까지 부풀었다가 여전히 6조달러 중반대에 머무는 연준 대차대조표와 초과준비금 및 역레포를 통해 단기 금리를 통제하는 '시장 과개입', 여기에 대형 대차대조표가 재정 규율과 시장 가격 신호를 왜곡한다는 주장이다.
로이터에 따르면 그는 연준의 대규모 채권 보유가 국채 수익률을 인위적으로 낮추고, 재정 규율을 흐리며, 월가에 과도한 혜택을 주는 구조라며 거듭 비판했다. 그는 연설과 기고문에서도 연준이 더 이상 모든 위기의 소방수 역할을 맡아서는 안 되며, 재정과 정치 권력이 져야 할 부담까지 떠안는 현재의 구도가 민주주의와 시장 모두에 위험하다고 주장한다.
워시 구상의 핵심은 단순한 양적긴축(QT)을 넘어선다. 그는 정책금리와 대차대조표를 분리해 금리를 상대적으로 낮게 유지하되 연준의 자산 규모는 더 과감히 줄이는 조합을 구상하고 있다.
옥스퍼드 이코노믹스는 그의 청사진에 대해 새로운 연준을 설계하고 있다고 전했다. 재무부와 협정을 통해 긴축의 무게 중심을 금리에서 대차대조표로 옮기고, 연준의 시장 영향력을 축소하려는 의도라는 해석이다.
워시는 이런 방식이 장기적으로 국채시장의 민간 가격 신호를 복원하고, 연준이 더 이상 재정의 '보증인' 역할을 하지 않게 하는 해법이라고 본다. 정치적으로는 '작은 연준, 큰 시장'이라는 슬로건이 트럼프 행정부의 기조와 맞아떨어진다.

문제는 연준의 운영 체계가 이미 풍부한 준비금(ample reserves)을 전제로 설계돼 있다는 점이다. 팬데믹 이전까지만 해도 연준은 소규모 대차대조표와 희소한 준비금을 기반으로, 국채 매매와 일일 수급 미세조정으로 금리를 통제하는 체제였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대규모 자산 매입과 규제 강화, 초단기 역레포(ON RRP)와 상설 레포기구(SRF) 도입 등을 거치면서 현재 시스템은 은행과 머니마켓펀드(MMF)가 두툼한 준비금 및 역레포 잔액을 쥔 상태를 근간으로 돌아가고 있다.
콜롬비아 대학과 연준 출신 경제학자들이 운영하는 머니 앤드 뱅킹(Money & Banking) 블로그는 최근 '연준의 준비금 관리가 기로에 서 있다'는 제목의 글에서 현재 6조7000억달러 수준의 대차대조표와 준비금이 줄이기도, 늘리기도 애매한 임계점 근처라고 판단했다.
이들은 2019년과 2025년 두 차례 QT 국면을 사례로 들었다. 당시 연준이 준비금을 일정 수준 이하로 밀어내리려 하자 레포 금리와 단기 머니마켓 금리가 갑자기 튀어 올랐고, 결국 연준이 다시 유동성을 공급할 수밖에 없었다.
뉴욕 연은도 2025년 연설에서 비슷한 경고를 내놓았다. 준비금이 충분히 많을 때는 수요·공급 충격이 있어도 단기 금리가 안정적으로 움직이지만 준비금이 희소해진 체제에서는 아주 작은 충격에도 금리가 급등할 수 있다는 얘기다.
연준 이코노미스트들이 최근 발표한 '중앙은행 대차대조표 삼중 딜레마' 논문은 이 문제를 보다 체계적으로 분석했다. 중앙은행이 세 가지 목표, 즉 낮은 준비금과 안정적인 단기 금리, 높은 수준의 금융 안정을 동시에 달성하기 어렵다는 것.
현재의 풍부한 준비금 체제는 단기 금리와 금융 안정에 유리하지만 작은 대차대조표라는 목표와는 상충하고, 반대로 대차대조표를 작게 가져가면 준비금과 단기 금리 안정성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할 수 있다는 결론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워시의 계획은 준비금과 대차대조표 축소에 과도하게 기울어진 해법에 가깝다.
씨티그룹과 위즈덤트리 등 금융권은 워시의 구상이 실현되려면 결국 두 가지 중 하나를 건드려야 한다고 분석한다. 은행 유동성 규제를 풀어 은행의 준비금 수요 자체를 줄이거나 상설 레포와 역레포 같은 안전판을 약화시켜야 한다는 얘기다. 전자의 경우 글로벌 시중은행들이 위기 이후 쌓아 올린 유동성 버퍼를 얇게 만들 수 있고, 후자의 경우 단기 금리 상단을 잡아주는 장치를 허물어 머니마켓 변동성이 급격히 커질 수 있다.
월가는 모든 논란이 채권과 주식, 달러에 가져올 파장에 신경을 곤두세운다. 현재 연준 대차대조표는 GDP 대비 비중 기준으로 이미 팬데믹 직후 고점에서 상당히 내려온 상태이다. 로이터는 연준이 2025년 말 머니마켓 금리가 요동치자 QT 속도를 늦추고 일부 만기 재투자와 대체 매입을 통해 대차대조표를 기술적으로 재확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는 현 체제에서 무리 없이 줄일 수 있는 구간이 상당 부분 소화했다는 의미다. 여기서 워시식 급진적 축소를 다시 시도하면 연준 논문이 경고하는 대로 준비금–금리 반응도가 매우 급격해진 지점에서 실험을 하게 되는 셈이다.
맨그룹은 '워시 패러독스'라는 분석에서 워시가 한 손으로는 정책금리 인하를 검토하면서 다른 손으로는 대차대조표 축소를 밀어붙이려 할 경우 샌프란시스코 연은이 산출하는 이른바 '대리 기준금리(proxy funds rate)'가 실제 금리보다 높게 느껴지는 왜곡이 다시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한다.
QT가 진행되던 2024~2025년 초, 연준이 이미 기준금리를 내리고 있었는데도 대차대조표 축소와 준비금 감소 탓에 금융 여건은 실제 기준금리보다 더 긴축적으로 작용했다는 지적이다. 워시식 구도에서는 금리가 떨어졌는데 장기 금리와 모기지, 신용 스프레드는 충분히 따라 내려오지 않는 상황이 재연될 위험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른바 연준 대차대조표 비대화의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폴리티코는 워시 발언을 인용해 "이른바 재정 우위(fiscal dominance)가 아니라 중앙은행이 사실상 재정의 최종 심사역이 되는 '통화 우위(monetary dominance)'가 현재로서는 더 큰 위험"이라는 진단을 내놓았다.
AI 도구로 여러 리포트와 연구 자료를 나란히 놓고 비교해 보면, 결론은 한 가지 방향으로 수렴한다. 연준의 영향력을 줄이자는 방향성에 동의하더라도 현재 규제 및 시장 구조에서 준비금과 대차대조표를 빠르게 더 줄이는 방안은 질병 자체보다 더 해로운 치료가 될 위험이 크다는 지적이다.
shhwang@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