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이동훈기자] 범현대가의 '종가(宗家)'이자 국내 건설업계의 종가이기도 한 현대건설이 그룹에서 이탈한지 10여년 만에 다시 친정집으로 돌아간다.
지난 1947년 故정주영 명예회장이 세운 현대토건으로 태동을 알린 현대건설은 한국건설사 60년을 일궈놓은 주역으로 꼽힌다. 아울러 현대건설은 "공업사(현대자동차공업사)를 통해 푼돈을 벌기 보다 큰돈을 벌고 싶었다"는 정 명예회장의 분신과도 같은 신념이 새겨져 있는 현대그룹의 모체다.
하지만 이 같은 현대건설의 "영예로운 경력"은 98년 기습적으로 찾아온 IMF외환위기를 맞아 얼룩지고 만다. 이어 2000년 벌어진 이른 바 "왕자의 난"은 이후 10년을 두고 현대건설이 겪어야할 풍상의 예고탄이었다.
우선 현대건설의 발목을 잡은 것은 건설경기의 극심한 침체였다. 90년대 들어 신도시개발과 토지공개념 도입에 따라 시작된 건설경기 침체는 IMF 외환위기로 더욱 가중됐다. 이는 현대건설 뿐만 아니라 한국의 건설회사라면 누구에게나 혹독했던 시련이었다.
IIMF 직전인 1997년부터 우성건설, 삼익건설, 한보건설, 동아건설, 건영, 우방, 청구, 한신공영, 쌍용건설 등 전통의 건설사들이 하나둘 쓰러져 갔고, 그나마 현대건설이 건설업계 위기를 선봉에서서 막고 있는 상태였다.
또한 모그룹인 현대그룹의 위기를 최전방에서 막고 있다는 부담도 현대건설의 맹점이었다. 92년 대선에 출마해 김영상 전 대통령을 괴롭혔던 정 명예회장의 현대그룹은 김 대통령 당선과 동시에 정치권의 '표적'이 됐고, 이는 문민정부 5년 동안 현대그룹의 체력을 고갈시킨 직접적인 원인이 된 것으로 지적된다. 이와 함께 국민의 정부 시절 추진했던 대북사업은 체력이 손상된 현대그룹의 재정 상태를 더욱 악화시키는 요인이 됐다.
결국 현대건설 임직원들로서는 잊을수 없는 2001년 5월 18일이 왔다. 이날 채권단은 현대건설에 대해 감자와 동시에 출자전환을 단행했으며, 현대건설은 현대그룹에서 계열분리돼 채권단의 공동관리를 받는 수모를 받게 된다.
시련의 계절, 그리고 극복
업계1위-매출7조 달성
워크아웃에 들어간 현대건설은 말그대로 혹독한 시련의 계절은 보냈다. 우선 업계 순위부터 재조정 됐다. 2004년 현대건설은 워크아웃 이후에도 42년 동안 놓치지 않았던 건설업계 1위 자리를 삼성물산에 내주고 만다.
이 역시 현대건설에게는 적지 않은 치욕이었다. 지난 1962년 건설업 도급순위(현 시공능력평가순위)가 도입된 이래 42년간 단 한번도 1위 자리를 내놓지 않았던 현대건설이, 하필 정 명예회장 생전 숙명의 라이벌이었던 삼성그룹 계열 삼성물산에 1위를 빼앗겼다는 점은 현대건설의 쇠락을 바라만 보고 있는 정 명예회장 자손들의 심정을 더욱 쓰라리게 하기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어 2005년과 2006년에는 같은 워크아웃 건설사였던 대우건설에게도 밀리며 3위로 떨어지고 만다. 특히 대우건설은 2005년부터 3년간 업계 1위 자리를 고수하며, 현대건설보다 먼저 워크아웃 위기를 극복했다는 평을 받았다는 점도 현대건설로선 뼈 아픈 부분이었다.
현대건설이 워크아웃으로 인해 받은 '상처'는 국내 주택사업의 진수인 강남 재건축에서 고스란히 나타났다. 현대건설은 강남구와 서초구 등 강남지역 재건축 물량 중 워크아웃 이전 수주한 도곡주공1단지 외에 아무런 사업도 추진하지 못했으며, 그나마 수주에 성공했던 반포주공1단지의 경우도 일부 조합원들이 현대건설의 워크아웃을 이유로 시공자 교체를 요구하면서 사업 추진을 실패하는 등 적잖은 좌절을 맛봐야 했다.
하지만 이 같은 오욕의 세월 속에서도 현대건설은 착실하게 내실을 다져왔다. 채권단 관리 이후 이지송 현 LH사장을 비롯해, 이종수 사장(효성 사장)을 거쳐 현 김중겸 사장까지 이어지며 현대건설은 국내 토목사업부터 천천히 그 내실을 다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한발 한발 걸어온 현대건설은 2006년 워크아웃을 졸업하면서 부활의 신호탄을 올렸다. 특히 2008년 들어서는 IMF 외환위기에 버금가는 세계 금융위기 속에서 현대건설은 어떤 건설사도 미치지 못하는 토목-플랜트 기술력을 바탕으로 해외 수주를 싹쓸이하는 저력을 보이며 전인미답의 매출 7조원 시대를 열었다.
'인생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말이 있듯 2000년대 초반 워크아웃 업체란 이유로 제대로 하지 못했던 주택사업은 오히려 현대건설의 리스크 관리능력을 키운 요소로 꼽힌다.
2000년대 초반 주택사업 붐이 불 때 삼성, 대우, GS, 대림, 현대산업개발 등 다른 업체들은 발빠른 주택 브랜드 마케팅을 통해 주택사업 매출을 극대화했지만 현대건설은 이에 동참하지 못했다.
하지만 2007년 이후 부동산 경기 침체로 인해 미분양 적체가 늘어나면서 주택사업에 비중을 뒀던 이들 건설사들이 모두 미분양 해소에 애를 먹고 있는 반면 현대건설은 미분양 해소보다 해외 시장 진출에 더욱 매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의 현대"도 현대건설의 부활을 앞당긴 요소로 꼽힌다. 비슷한 상황의 대우건설의 경우 임직원들이 워크아웃과 동시에 회사를 이탈했지만 현대건설 임직원들은 별다른 동요없이 여전히 회사를 지켜 결국 현대건설의 기술과 건설 노하우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으로 지적된다.
역대 현대건설 사장, 좌측부터 이지송, 이종수, 김중겸 사장 |
현대건설, 풀어야 할 난제 많다
현대그룹과 융합문제 가장 중요
풍상의 세월을 보내며 현대건설은 10년전 그룹에서 분리될 때 보다 훨씬 강한 모습으로 다시 친정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앞으로 현대건설이 넘어야할 산은 높다.
우선 10년간 '별거'를 하는 동안 이질 조직이 돼버린 현대그룹과의 융화 부분이다. 현대그룹이 현대건설 인수에 나선 가장 큰 이유는 그룹의 지주회사격인 현대상선 경영권 방어 때문인 것으로 꼽힌다. 그런만큼 현대건설 경영을 제대로 추진할 수 있을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범 현대가 건설 인맥은 현대건설과 현대산업개발 출신으로 양분된다. 이들 양대 건설사 인력은 상당수가 현대차그룹 MK진영의 현대엠코와 故 정세영 명예회장과 정몽규 회장의 현대산업개발로 흡수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결국 인수주체인 현대그룹 내부의 건설 인력풀이 약하다는 것도 업계에서는 현대그룹의 약점으로 지적하고 있다.
아울러 김운규 전 현대아산사장의 예에서 볼 수 있듯 현정은 회장의 친정 체제가 유독 강한 현대그룹에 10여년간 독립경영 상태였던 현대건설이 큰 불협화음 없이 융합할 수 있을 지도 현대건설이 풀어야할 난제다. 실제로 현대건설 노조의 성명에서 알 수 있듯 현대건설 임직원들은 현대차그룹의 인수를 더욱 기대해왔다.
국민들에 대한 봉사도 현대건설이 가져야할 덕목으로 꼽힌다. 현대건설은 경영자였던 정씨 일가의 경영 실패로 인해 막대한 공적 자금 투입을 통해 재생할 수 있었던 기업이다. 국민 돈으로 살려놓은 기업인 만큼 인수 이후에도 국민들의 성원에 보답하는 자세를 견지해야하는 것도 간과해서는 안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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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 Newspim]이동훈 기자 (dongle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