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우동환 기자] 생산갭의 확대와 정부 목표치와 빗나가고 있는 인플레이션 기대치로 인해 주요 선진국들의 물가 문제가 다시 부각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최근 미국을 중심으로 경기가 본격 회복될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점차 금융시장이나 경제전문가들의 논쟁 구도가 경제성장 쪽에서 인플레이션으로 빠르게 이동해 주목된다.
이와 관련해 지난 10일자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Inflation: A high price to pay" 제하의 기사를 통해 지난 2008년 인플레이션 쇼크는 뒤에 불거진 금융위기로 치유가 됐지만 3년이 지난 지금 영국과 미국 등 주요 선진국을 중심으로 다시 물가에 대한 경계심이 고조되고 있다고 전했다.
금융위기로 약해진 경제 여건을 부양하기 위해 주요 정부들이 이례적인 조치를 취하면서 영국을 비롯한 일부 선진국에서는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신흥국 역시 마찬가지로, 일례로 지난해 말 브라질의 경우 물가 상승률이 7.6%로 6년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선진국의 경우는 식품에 대한 소비지출 비중이 크지 않기 때문에 신흥국들에 비해 인플레 압력은 비교적 크지 않지만 영국 등 일부 국가에서 물가가 상승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지난달 유로존의 물가 상승률은 2.2%로 유럽중앙은행(ECB)물가 안정 목표치인 2%를 상회한 것으로 집계됐다.
앞서 장 클로드 트리셰 ECB 총재는 "기대 인플레이션을 안정시키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현 상태에 안주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고 강조한 바 있다.
신문은 지난 2008년 인플레이션 쇼크의 교훈으로 주요국들은 물가에 대해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지만 정책적 딜레마에 빠져있어 결론을 쉬게 내리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긴축을 강화한다면 또다른 경제적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있지만, 완화된 정책을 계속 이어간다면 치솟는 물가를 감당할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 美 디플레 우려, 英 인플레 걱정
최근 불거지고 있는 물가에 대한 우려는 두 가지 가정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하나는 최근의 물가의 오름세가 1970년대와 같이 지속적으로 상승할 것이라는 관측이 있으며 다른 하나는 지난 1990년대 일본식 디플레이션의 전조라는 가정이다.
특히 미국과 영국의 경우는 상황이 정 반대로 영국은 인플레 압력을, 미국은 디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불거지고 있다.
영국은 지난해 식품과 의류품목의 가격이 상승하며 인플레 압력이 증가, 물가 상승률이 영란은행의 목표치 2%를 상회하고 있다.
여기에 영란은행의 물가 전망이 지나치게 낙관적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어 중앙은행에 부담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앞서 지난해 2월 영란은행은 연말 물가 수준을 1.5% 수준으로 예상했으나 결과적으로 예측에 실패하면서 시장에서는 중앙은행이 물가에 대처할 여력을 가지고 있는지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미국의 경우는 일본식 디플레이션에 대한 경계심이 부각되고 있다. 물가는 아직 하락 추세가 확실하지 않지만 헤드라인 물가는 낮은 수준에서 움직이고 있다.
9%를 상회하는 실업률로 생산갭이 확대되면서 물가를 끌어내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안심하기는 이르다. 모간스탠리는 이번주 제출한 보고서 "Growth Debate Over, Inflation Debate Begins"를 통해 "미국 인플레이션이 바닥을 지나 반등할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생산 및 서비스, 주택과 고용시장의 간극이 커 물가 하락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으나 기대인플레이션이 상승세를 보이고 있으나 점차 변곡점으로 가고 있다"면서 "이미 상당한 구성비중을 차지하는 임차료가 상승세를 보이고 있고 식량 및 에너지 등 글로벌 요인이 가세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인플레율이 내년까지 2%를 넘기는 힘들다고 보지만, 근원 인플레율이 몇 개월 내에 1% 대를 회복할 경우 변곡점이라는 판단과 함께 본격적인 인플레이션 논쟁이 유발될 수 있다"고 모간스탠리는 경고했다.
◆ 생산갭 확대가 물가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
미국은 연준이 6000억 달러 규모의 추가 국채매입을 단행한 이유도 생산갭으로 물가가 추가로 하락할 수 있다는 점을 반영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제프리 퓨러 보스톤 연방준비은행 자문관은 "생산갭의 확대로 적어도 일정 기간 동안 물가가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같은 경우 우리는 인플레이션이 특정 수준에서 유지될 것이라는 예상을 너무 믿어서는 안된다"고 밝혔다.
신문은 영국과 미국의 생산갭의 수준과 영향력이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고 전했다.
하버드대 제임스 스톡 교수와 동료들이 지난해 8월 연준 잭슨홀 컨퍼런스에서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생산갭이 큰 수준이라면 물가에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분석했다. 이 보고서는 과거 사례를 감안하면 미국처럼 생산갭이 벌어진 상태에서는 물가의 하락 추세가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인플레 압력이 높은 영국의 경우 평균적인 생산갭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영란은행(BOE) 정책위원 중 가장 매파적인 성향을 보이고 있는 앤드류 센텐스 위원은 잉여 생산능력이 물가의 오름세를 완화하는데 별다른 영향을 미지치 못할 것이라는 점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이에 대해 온건파인 애덤 포센 정책위원은 물가의 상승을 예상하는 센탠스 위원의 주장을 가능성이 희박한 가설이라며 일축하고 나섰다.
그는 "영국의 공급 생산력이 비교적 낮은 수준에서 상승하는 실업률에도 불구하고 붕괴될 수 있다"면서 마치 최근 프리미어 리그의 추세를 보면 뉴캐슬이 우승할 가능성 정도에 불과한 일이라 지적했다.
◆ 인플레 기대, 불안감 자극: 상품가 급등 무시 못 해
생산갭과 함께 잘못된 인플레이션 기대치도 물가 문제를 부채질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코노미스트들은 시장에서 물가가 특정 수준에 이를 것이라는 확신이 있으며 이를 선 반영하는 자기암시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는 실제 물가가 특정 물가 목표치에 맞추는 역할을 하고 있지만 잘못된 기대가 반영된다면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 있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일례로 모든 사람들이 부채가 가중되는 상황에서 물가의 오름세를 예상한다면 지출을 줄이게 되고 이는 물가의 추가 하락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영란은행은 물가의 오름세가 일시적일 것이라는 논쟁을 두고 중앙은행 내부에서도 신뢰에 대해서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기대 인플레이션이 연준의 목표치인 2% 수준에 근접한 상태에서 유지되고 있지만 물가의 반등을 이끌 정도로 강한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문제는 디플레이션을 우려해 완화정책을 지속하는 와중에 글로벌 상품가격 급등으로 헤드라인 물가가 근원 물가와 괴리되면서 빠르게 상승하고, 나아가 근원물가도 점차 상승하는 상황이 전개될 경우다.
연준은 통상적으로 변동성이 심한 에너지와 식품 가격은 제외한 근원물가를 중시하지만, 또한 신흥시장 등으로부터 수입하는 제품 가격이 오르고, 또 맥도날드나 크래프트 같은 업체의 제품 가격이 빠르게 상승할 경우 대중적인 인플레 심리가 작동할 가능성이 있다.
수입제품 가격 상승을 통한 인플레인션은 약 2~4개월 정도 시차를 두고 작용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 같은 대목은 단순히 선진국에서 식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작다고 안심할 것이 아니라는 점을 시사한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하고 있다.
특히 식품가격 급등은 장기 기대인플레이션을 강하게 자극할 위험이 크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