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체적 데이터 없어...'면죄부 자체발급' 논란
[뉴스핌=박영국 기자] 삼성전자 반도체사업장 근무환경이 백혈병 발병과 무관하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인바이론(Environ)의 재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그동안 이른바 '삼성전자 백혈병 논란'에서 삼성전자의 손을 들어 준 조사결과지만, 인바이론은 '우리는 공신력 있는 연구기관이고 우리 조사 결과 삼성전자는 결백하다'는 내용만 밝혔을 뿐 구체적인 수치상의 근거를 내놓지 못했다는 점에서 논란에 종지부를 찍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재조사를 맡은 해외 연구기관 인바이론은 14일 삼성전자 기흥 반도체사업장에서 가진 결과 발표에서 "삼성 사업장은 근로자에게 위험을 주지 않으며 모든 노출위험에 대해 회사가 높은 수준으로 관리 또는 제어하고 있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인바이론 측은 "삼성전자 반도체사업장 근무자 중 백혈병이 발생한 6명의 사례에 대해 과거 작업 환경과 백혈병 유발 물질 노출 빈도를 조사한 결과 4명은 노출이 전혀 없었고 2명은 포름알데히드와 전리방사선 노출 환경에서 근무했으나, 백혈병과 연관지을 만한 정도의 의미 있는 수준의 노출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인바이론은 삼성전자 반도체사업장에서 발생하는 물질 중 백혈병과 연관된 것으로 포름알데히드와 전리방사선, TCE(트리클로로에틸렌) 등 3종을 제시하고 6명의 발병 사례에 대해 각자의 작업별 근무 기간과 해당 작업장에서의 노출 빈도를 계산해 작업 환경과 발병의 유관성을 분석했다.
이를테면, X라는 직원이 A작업장에서 1년, B작업장에서 2년을 근무했을 경우 각 작업장에서 발생하는 발병 물질의 양을 근무 기간에 곱한 뒤 합산하는 방식이다.
이같은 과정을 통해 도출한 결론이 '삼성전자 반도체사업장 작업환경과 백혈병 발병은 무관하다'는 것.
하지만 이같은 내용의 발표는 삼성전자의 '결백'을 증명하기에는 불충분했다는 게 현장의 분위기였다.
일단, 재조사를 의뢰하고 비용을 지불한 주체가 삼성전자라는 점에서 조사의 객관성에 의문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재조사 결과 발표 날이 근로복지공단이 서울행정법원의 백혈병 근로자 산재인정 판결에 대한 항소를 할 수 있는 기한을 하루 앞둔 상황이라는 점도 의심의 눈초리를 사기에 충분하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 측은 "이번 연구 보고서는 소송과 전혀 무관하다"며, "지난해 4월 반도체공장을 공개할 당시 행정소송에 상관없이 공신력 있는 제3기관에 재조사를 의뢰하겠다고 약속했었고, 그 약속을 지킨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바이론 역시 이같은 불신의 눈초리를 의식한 듯 자사가 공신력 있는 연구기관이며, 이번 조사가 '과학적'이고, '객관적'이고, '신뢰성'을 충분히 확보했음을 알리는 데 발표 시간의 절반 이상을 할애했다.
인바이론이 조사 결과의 근거를 뒷받침할 만한 구체적인 수치를 내놓지 못했다는 점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발병 물질의 위험 수치가 몇이었는데 실제 조사 결과 어느 정도가 검출됐다는 등의 내용이 이날 발표에서는 전무했다.
이날 시민단체측 추천으로 참석한 백도명 서울대 보건대학원장은 "결론과 주장만 있을 뿐 데이터가 없는 보고서"라며, "삼성이 밝히고 싶지 않은 비밀이 있기 때문인지, 그걸 대중에게 공개할 의향은 없는지 알고싶다"고 요구했다.
하지만 인바이론 측은 피의뢰기관의 한계를 내세우며 공을 삼성전자에게로 넘겼다. 자신들의 조사 결과 자료는 삼성전자에게만 공개할 수 있고, 그걸 대중에게 공개하는 건 삼성전자가 결정할 일이라는 것.
이에 대해 권오현 삼성전자 DS(디바이스 솔루션) 사업총괄 사장은 "조사 결과에는 삼성전자 뿐 아니라 화학물질 공급업체들의 영업상 비밀도 포함돼 있다"며, "영업비밀 포함 여부를 검토한 후 결정하겠다"고 답했다.
한편, 이번 재조사는 지난해 7월부터 1년간 이뤄졌으며, 인바이론을 주축으로 예일대, 미시간대, 존스홉킨스대 연구진과 국내 한양대 소속 연구진 등이 참여했다.
조사 대상 시설은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 5라인과 화성 12라인, 온양 1라인 등이었다. 5라인은 폐쇄된 3라인과 사업 환경이 유사하다는 점에서 조사 대상에 포함됐으며, 3라인을 포함한 과거 라인에 대해서는 노출 재구성을 통해 조사가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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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 Newspim] 박영국 기자 (24pyk@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