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김홍군 기자]지난 13일 향년 84세로 타계한 故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은 '철(鐵)'을 신앙처럼 숭배한 한국의 철강왕이다.
철강산업의 불모지인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일관제철소를 세운 그는 투철한 애국심과 사명감, 냉철한 판단력을 바탕으로, 그가 세운 포스코를 세계적 철강기업으로 키워냈다.
박 명예회장에게 철은 곧 국가였다. 포스코의 오너는 아니었지만, 철이 국가였기에 모든 것을 바칠 수 있었다.
■육사 생도로 박정희와 인연
1927년 9월 29일(음력) 현재 부산 기장군 장안읍 갯마을에서 태어난 박 명예회장은 일본 와세다대를 중퇴하고 21살이던 1948년 육사(6기)에 입학했다.
여기서 그는 제2 중대장으로 탄도학을 가르치던 박정희 전 대통령과 처음으로 만났다. 그 해 육군 소위로 임관한 박 명예회장은 5사단 참모, 25사단 참모장,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비서실장 등을 거쳐 1963년 소장으로 예편했다.
15년의 군인 생활 동안 그는 충무무공훈장, 은성화랑무공훈장, 금성화랑무공훈장 등을 수훈했다.
■영일.광양만의 기적..한국의 카네기
박정희 전 대통령의 강력한 요청으로 미국 유학을 포기한 박 명예회장은 1964년 텅스텐 수출업체인 대한중석 사장으로 임명되며 본격적으로 철과 인연을 맺었다.
이후 1967년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제철소 건설의 특명을 받은 박 명예회장은 우향우라는 유명한 일화를 남길 정도의 투철한 사명감으로 제철소 건설에 임해 1973년 6월9일 제1고로에서 첫 출선의 감격을 맞보게 된다.
그로부터 한달 뒤에는 조강 기준 연산 103만t의 일관제철소를 완공했다. 포항에 이어 광양에 제철소를 확장한 포스코는 오늘날 연간 조강생산량 3540만t의 세계 5위의 철강사로 성장했다.
포스코 사장 및 회장으로 25년간 박 명예회장이 이룩한 2100만t의 조강 생산체계는 미국의 철강왕 카네기의 800만t을 훌쩍 뛰어 넘는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1987년 현역 철강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철강의 노벨상인 '베세머 금상'을, 1992년에는 세계적 철강상인 '윌리코프상'을 수상해 ‘철강왕’이 칭호를 얻었다.
■사회공헌으로 마지막 불꽃
1981년 정계에 입문한 뒤 4선 국회의원과 민정당 대표, 자민련 총재, 국무총리 등을 역임한 박 명예회장은 일찍부터 장학사업, 사회공헌, 기부활동 등에 관심을 보였다.
1986년 포항 공대(포스텍), 1987년 포항산업과학연구원(RIST)을 설립해 포스코-포항공대-포항산업과학연구원을 축으로 하는 산학연 연구개발 체제를 구축했다. 이는 산업계 전반에 걸쳐 새로운 기술개발 모델을 제시했다는 평가다.
고인이 마지막으로 열정을 바친 포스코청암재단은 아시아인을 대상으로 한 글로벌 장학사업으로 사회에 기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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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 Newspim] 김홍군 기자 (kiluk@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