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딧 라인 확보 등 현실적 어려움 상존
[뉴스핌=김동호 기자] #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외국의 대형 기업들간의 인수합병(M&A)가 활발하다. 국내 기업들도 해외기업 인수에 적극 나서고 있다. 글로벌 IB를 지향하는 국내 증권사들에는 중요한 수익원이 등장하는 셈이다.그동안 국내 증권사들에게 이러한 딜은 '그림의 떡'이었다. 빈약한 해외 네트워크도 문제였지만 대규모 딜을 진행할 때 필수적인 환리스크 관리와 자금 환전 등 외환 업무가 불가능했기 때문.
그러나 지난해 정부가 국내 증권사들에게도 투자은행(IB) 업무와 관련한 외환업무 규제를 대폭 완화함에 따라 큰 걸림돌이 사라졌다. 다만, 증권사들의 외환시장 진입은 여전히 높은 벽이다.
◆ 외환업무 규제 완화, 글로벌IB 간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4월 증권사의 외국환 업무 및 외화파생상품 등에 관한 취급범위를 확대키로 결정했다. 기존에 주식 및 채권 등에 대한 투자자금의 환전 용도로 제한됐던 현물환 거래가 IB업무와 관련한 대고객 현물환 거래까지 확대됐다. 이로 인해 외화증권 발행의 주선과 인수를 비롯해 인수합병(M&A)의 중개ㆍ주선 및 대리업무 수행 등과 관련해 환전 업무가 가능해졌다.
글로벌 IB들과의 경쟁에 있어 외환업무 제약이라는 약점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금융투자업계 역시 정부의 이 같은 결정을 반겼다. IB와 관련한 다양한 외환업무 처리가 가능해짐에 따라 해외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M&A 거래 중개시에도 과거처럼 은행의 도움 없이 자체적인 외환업무 처리가 가능해졌다.
한 증권사 대표는 "외국 기업과 관련한 대형 M&A의 경우 환리스크 관리 등 외환 관련 업무 능력이 필수적인데 과거 국내 증권사들의 경우엔 외환 관련 업무의 제약으로 인해 글로벌 IB들과 경쟁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며 규제 완화를 환영했다.
정부는 또한 일반상품에 기초한 외화 파생상품의 취급범위를 확대하고 한국은행에 대한 증권사들의 신고 의무도 없앴다. 이로 인해 파생상품 관련 업무를 처리함에 있어 이전보다 빠르고 간편한 업무처리가 가능해진 상황.
업계 관계자는 "기존에 외화 관련 파생상품 업무의 경우 한국은행에 대한 신고의무로 인해 다소 시간이 지연됐는데, 이 부분이 사라짐에 따라 업무처리가 다소 빨라졌다"고 전했다.
규제 완화 흐름에 발맞춰 증권사들 역시 그간 은행들의 독무대였던 외환 거래시장에 적극 진출하고 있다. 물론 은행에 비해 거래 규모는 아직 작은 수준이나 성장 가능성은 충분하다는 관측이다.
현재 서울환시에 등록된 증권사는 우리투자증권과 삼성증권, 한국투자증권, 미래에셋증권, 대우증권, 동양증권, 메리츠종금증권 등 9곳이다. 아직까진 대형 증권사들 위주로 시장에 참여하고 있는 상황.
과거 증권사들은 인터뱅크(외국환거래은행)를 통해 주문을 내고 FX거래를 해왔으나, 최근에는 외국환거래 약정을 추가하며 시장에 직접 참여를 확대하는 모습이다.
특히 FX스팟과 FX스왑 거래 등을 위한 크레딧 라인 확보를 추진 중이다. 크레딧 라인이란 일정기간 동안 환거래은행 또는 고객에 대해 미리 설정해 둔 신용공여의 최고한도다. 이를 설정하게 되면 한도 내에서 미리 정한 조건에 일치하는 한 수시로 자금을 빌려쓰고 갚을 수 있게 된다.
◆ 외환시장, 현실의 벽 높다...은행 넘어서야
정부의 규제 완화에도 불구하고 증권업계가 넘어야 할 산은 여전하다. 기존에 외환거래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은행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아야하며, 상대적으로 부족한 자본금의 한계도 극복해야한다.
현재 외환거래의 대부분은 은행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때문에 증권사들에게 외환거래의 상당 부분이 허용돼도 시장의 변화는 적을 것이라는게 은행권의 시각이다.
작년 당국의 외국환 거래규정 개정 이후 증권사들도 투자은행(IB) 업무와 관련해 대고객 현물환 거래를 할 수 있게 됐으나, 실질적인 거래는 많지 않다.
특히 크레딧 라인 확보가 증권사들의 운신의 폭을 좁히고 있는 상황. 이러한 제약으로 인해 은행들과의 물량 경쟁에서 밀릴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업계 관계자는 "인터뱅크간 시장에서 거래 물량을 감당하려면 크레딧 라인이 있어야하는데 인터뱅크 시장에 진입할 수 없는 증권사들은 상대적으로 불리한 여건"이라고 지적했다. 외환 시장의 경쟁자로 등장하게 될 증권사들에게 은행이 크레딧 라인 개설에 얼마나 적극적일지는 의문이라는 설명이다.
크레딧 라인이 마련되지 않을 경우 증권사들이 외국기업과 관련한 대규모 M&A 자금에 대한 환전이나 외화증권의 발행시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다. 결국 은행의 힘을 빌리거나 은행과 협업을 통해 이를 해결해야한다.
이는 또한 국내 증권사들의 자본 규모가 은행이나 글로벌 IB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다는 문제로도 이어진다. 현재 삼성과 대우, 현대, 우리투자, 한국투자증권 등 5대 대형사만이 1년여전 증자를 통해 평균 자기자본 규모를 3조 5000억원 수준으로 늘렸다. 그러나 이 역시 글로벌 IB들이나 은행들에 비해선 턱없이 작은 수준이다.
한 증권사 고위 관계자는 "대규모 딜을 다루기 위해서 그에 상당하는 헷지를 할 수 있을만한 자본이 있어야한다"며 "국내 증권사들이 IB업무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선 증자를 통해 자본금 규모를 훨씬 더 늘려야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 외에도 외환을 국부로 여기고 있는 당국의 인식도 증권사들의 외환업무 확대를 막고있는 요인 중 하나라는 분석이다.
과거 IMF 사태 등을 경험한 국내 여건상 외환관리의 용이성을 위해서는 외환 관련 업무가 가능한 곳이 제한적이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수출산업이 국내 총생산(GDP)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현실 역시 외환관리에 민감할 수 밖에 없는 이유.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기존처럼 몇개 대형 은행을 통해서만 외환 거래가 이뤄진다면, 당국의 입장에서도 외환거래를 관리하는 것이 보다 용이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외국환 업무의 포괄적인 허용은 관리감독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증권사에 대해 부문별, 순차적으로 외국환 업무의 허용을 진행, 글로벌 IB들과의 경쟁 여건이 마련되야한다"고 덧붙였다.
[뉴스핌 Newspim] 김동호 기자 (goodhk@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