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뉴스핌 황숙혜 특파원] 키프로스의 구제금융 조건으로 제시된 예금자 과세 방안이 안팎의 반발을 사면서 정책자들이 수위 조절에 나서는 움직임이다.
유로존 재무장관들이 이른바 헤어컷(채권자 손실 부담) 대신 예금자에게 세금을 부과하는 조건으로 키프로스에 구제금융을 제공하는 방안을 제시한 가운데 반발과 파장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키프로스 의회가 이를 승인하는 표결을 연기한 한편 유로존 정책자들도 수정안 마련을 저울질하고 있다.
◆ 러시아 강력 비난 이어 ECB도 시큰둥
키프로스의 예금액 3분의 1을 차지하는 러시아가 발표 즉시 강력하게 반발한 것을 포함해 이번 구제금융 방안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다.
키프로스의 채권자인 유럽중앙은행(ECB)은 18일(현지시간) 예금자 과세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외르크 아스무센 ECB 집행이사는 이날 베를린에서 기자들과 만나 “ECB는 키프로스의 예금자 과세 방안을 강요하거나 이에 찬성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키프로스 정부가 이번 방안을 수정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ECB의 다른 대변인도 키프로스 정부가 대안을 제시할 경우 이를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이번 방안에 대해 즉시 강력하게 비난하고 나섰다. 예금자 과세라는 전례 없는 조치가 공정하지 못할 뿐 아니라 위험한 결정이라는 경고다.
키프로스 은행권에 예치된 러시아인의 예금액은 200억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과세 방안이 시행될 경우 러시아 예금 고객의 손실이 15억유로에 이를 전망이다. 이 때문에 러시아의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총리는 예금자 과세가 러시아 예금자의 재산을 몰수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 키프로스 의회 표결 연기..수위 조절 움직임
예금자 과세 방안에 대한 소식이 전해지면서 이미 뱅크런 조짐이 고개를 들었다. 은행권은 ATM의 인출 규모를 400유로 이내로 제한했지만 이미 주말 현금이 바닥난 ATM이 속출했다.
안팎의 강력한 반발과 금융권 리스크가 고조된 가운데 키프로스 의회는 조건부 구제금융안의 승인 표결을 하루 연기하기로 했다.
외신에 따르면 키프로스 정부는 10만유로 이하 예금자의 과세율을 3% 선으로 낮추는 한편 10만유로 이상에 대해서는 세율을 12.5~15%로 높여 소액 예금자를 보호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유럽 정책자들 역시 구제금융 조건의 수정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마틴 슐츠 유럽의회 의장은 2만5000유로 이하 예금자는 과세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독일의 볼프강 쇼이블레 재무장관 역시 “유럽 재무장관들이 과세 조건을 조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유로 재무장관들은 10시간에 걸친 밤샘 회의 끝에 지난 16일 키프로스에 100억유로의 구제금융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10만유로 이하의 예금자에 대해 6.75%, 그 이상에 대해 9.9%를 과세하는 방안에 합의했다.
[뉴스핌 Newspim] 황숙혜 기자 (higrac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