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년전 박승 "철없는 채권시장" 나무랐지만
[뉴스핌=김선엽 기자] 지금부터 9년 전인 2004년 10월 금융통화위원회를 하루 앞두고 국고채 3년물 금리는 3.46%까지 떨어졌다. 당시 기준금리 3.5%를 0.04%p 역전한 것이다. 참여정부가 추경과 부동산 활성화 대책을 발표하면서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하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크게 작용했다. 당시로서는 흔치않은 장단기물의 역전 상황이었다.
하지만 다음 날 금통위는 시장의 예상을 뒤엎고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박승 당시 한은 총재는 기자간담회를 통해 "(금리인하를 시사하는) 재정경제부만 바라보고 투자한 철없는 채권시장은 학습효과를 얻어야 한다"고 질책했다. 이 발언 즉시 국고채 3년물 금리는 0.17%p나 급등했다.
* 2004년 10월 기준금리(당시 연 3.5%)를 0.04%p 역전한 채 금통위를 맞이한 국고채 3년물은 박 승 한은 총재의 발언 직후 0.17%p 상승했다. |
그러나 한은의 호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다음 달 금통위는 기준금리를 0.25%p 인하했다. 소위 '금통위의 반란'이다. 당시 금통위는 한은 집행부의 금리 동결 시사에도 불구하고 인하를 밀어붙였고 당시 이성태 한은 부총재만 실명으로 반대에 이름을 남겼다. 박승 총재가 추진한 총액한도대출 한도확대는 기준금리 인하 주장에 밀려 무산됐다.
◆ 김 총재 서별관회의 불참..숨막히는 채권시장
오는 11일 금통위를 앞두고 한은이 깊은 고민에 빠졌다. 기준금리 결정이 정부와 한은의 불협화음을 넘어서서 이제 구(舊)정부와 신(新)정부간의 대결 국면으로 비춰지면서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시장 참여자들도 서늘한 기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미 시장은 최대 0.5%p 인하까지 베팅을 마친 상태다. 하지만 지난 5일 김중수 한은 총재가 서별관회의에 불참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긴장감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금통위 수장인 김 총재가 과연 정부를 향해 '항전'을 외칠지, 아울러 다른 금통위원들의 '반란'은 기대해도 되는 것인지 시장 참여자들의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다.
◆ 한은 총재와 청와대, 둘 사이에 무슨 일이
김중수 한은 총재와 청와대,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MB맨’이라는 점에서 김 총재와 박근혜 대통령의 관계가 딱히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김 총재가 처음부터 정부쪽을 향해 반기를 든 것은 아니었다.
그는 대선 직후 열린 1월 4일 중소기업인 신년인사회에 이례적으로 참석하며 ‘경제민주화’를 한창 주창하던 당시 박 당선인과 코드맞추기에 나선 바 있다. 또한 지난 1월 14일 외신기자 기자간담회에서는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은 같이 갈 때 효과 있다"며 정부를 향해 적극적인 구애의 손길을 내밀었다.
하지만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이후로 조금씩 다른 분위기가 감지된다.
한은의 인수위 보고 당일인 1월 18일에는 “양적완화(QE)의 언와인딩(unwinding)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하기 시작하더니 이후부터 '저금리의 폐해', '세계경기 회복세' 등을 언급하며 스스로의 퇴로를 차단하고 나섰다. 금리와 관련해 직접적 언급을 삼갔던 과거와 다른 모습이다.
김 총재의 강경한 태도에 정부 측도 급해졌는지 금기를 깨고 연일 금리관련 발언을 내놓았다. 한은에 대한 간섭 문제가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달 8일 현오석 경제부총리는 "재정, 금융, 부동산 정책이 정책조합의 형태로 이뤄져야 한다"며 한은을 압박했다.
때문에 2일 김 총재와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의 저녁 회동이 결국 막판 협상이 아니었냐는 분석도 제기된다. 한 채권시장 참여자는 "그날 금리 얘기 대신에 총재의 '자리' 얘기를 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며 모임 취지에 의문을 던졌다.
[뉴스핌=김학선 기자] 지난 3월 14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기준금리를 연 2.75%로 동결했다. |
◆ 4월 ‘금통위의 반란’ 나올까
일각에서는 김 총재가 동결을 주장한다고 하더라도 남은 금통위원들이 금리인하를 주장하고 나설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임기가 1년 남은 김 총재와 3년이 남은 나머지 금통위원의 스탠스는 다를 수 있다는 분석이다.
금리인하를 명시적으로 반대해 온 임승태 위원을 제외한다면, 나머지 금통위원들이 금리인하를 밀어붙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4명이 인하를 주장할 경우 관례에 따라 김 총재의 의결권 행사 없이 바로 금통위는 기준금리를 인하한다. 4월 금통위가 9년전의 데자뷰를 재현할지 주목된다.
[뉴스핌 Newspim] 김선엽 기자 (sunup@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