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대래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 10일 공정위 출입기자들과 나눈 대화 중 일부다.
노 위원장은 그러면서 "창업 1,2세대가 산업을 일으킬 때 정부에서 돈을 몰아주고 하다보니까 (성장했는데) 3~4대로 가면서 이게 자기 돈일줄 알고 있다"며 "기업가 정신이 이렇게 돼서는 우리나라에 장래가 없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재벌 개혁을 추진하는 공정위 수장의 이런 발언은 정부의 경제민주화 정책이 향후 어느 정도의 강도로 재계를 휘몰아 칠지 가늠케 한다. 소유와 지배, 그에 따른 책임의 문제는 재계 오너들의 가장 큰 아킬레스건이기 때문이다.
국세청과 검찰 등 사정당국의 견해도 이런 흐름과 무관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 힘들어지는 상속증여, 대안은?
때문에 법조계 일각에서는 20~30년 후 대다수 그룹들이 현재의 오너경영 지배구조를 유지하기는 어렵지 않겠냐는 전망을 내놓기도 한다.
경제민주화 코드가 시대적 요구인 탓에 규제의 완화보다는 강화에 무게를 두고 있는 판단이다.
특히 상속·증여 문제는 앞으로 더욱 다양한 강화 방안이 나올 것으로 법조계는 예상하고 있다. 재벌이 지배력과 경영권 모두를 가진 현재의 거대 그룹을 유지하는 것은 그만큼 어려울 수 있는 것이다.
더구나 대물림 과정에서 편법을 동원한 옛 오너들이 경영승계는 이미 난관에 봉착한 상태다.
사실 재벌가의 승계 문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익 향유'를 얼마나 지속할 것이냐는 본질적 논의와 맞닿아 있다.
귀족 작위를 받으면 대대로 계승되던 봉건시대와 달리 자본주의 사회는 부의 대물림에 대한 한계를 두는 것에 사회적 협의를 이룬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오늘날 상속제도에서는 세금으로 인해 선대의 자산을 물려받아도 손자대에서는 자산이 10% 이하로 줄어 버리는 게 현실이다. 단순히 물려받는다는 가정만 놓고 봤을 때, "부자는 3대만 간다"고 해야 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상속받은 재산을 토대로 자산을 불려야만 하는데, 오너의 자녀 모두가 사업수완이 뛰어나리라고 보는 것도 무리다. 실제 최근 20년 사이 국내 재계서열 30위 그룹의 부침은 컸다. 30위 그룹에 이름을 올렸던 절반 이상의 그룹은 경영승계 이후 부도를 맞거나 법정관리 등으로 자취를 감췄다.
한 로펌의 상속컨설팅 전문가는 "현재의 재벌 지배구조는 세법은 물론 다양한 규제법 강화에 따라 부와 경영 모두를 온전히 대물림하기는 힘들어졌다"면서 "가업상속의 측면에서 소유와 경영 모두를 지배하는 것은 앞으로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결국 현재의 재벌은 멀지 않은 시간에 존경받는 로열패밀리로 남는 방향에서 고민을 시작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게 그의 견해이기도 하다.
많은 경제 전문가도 향후 기업의 지배구조가 유럽의 소유와 경영의 분리 방식을 따라갈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오너일가가 지배권을 가지고 있지만 경영은 하지 않는 구조를 만들거나 오너가 직접 경영을 하지만 그 소유권을 재단에 내놓는 방식 등이 거론되기도 한다.
오너의 경영능력과 상관없이 안정적인 대물림을 가능하게 하면서 동시에 명예를 지킬 수도 있는 방안이기 때문이다.
실제 해외의 장수기업집단은 대체로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사례가 많다.
이지수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미국 변호사는 "우리 기업의 경우에는 유럽 쪽 모델로 소유와 경영이 분리될 가능성이 크다"며 "상대적으로 미국 모델을 가기에는 아직 국내 자본시장이 발달되지 못했고 지배주주의 인식이나 사회적 제도·문화의 차이가 크다"고 말했다.
◆ 재벌, 소유와 경영 분리으로 가나
단적으로 독일의 글로벌 제약·석유화학기기업 머크그룹은 올해 창업 344주년을 맞는다. 머크그룹이 이처럼 장수할 수 있었던 것 중 하나는 바로 소유와 경영의 분리 때문이다.
경영을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고, 오너일가는 '파트너위원회'를 통해 그룹을 소유하는 한편 경영을 관리, 감독한다.
오너일가가 세대교체를 통해 약 130명에 달한다는 점도 이같은 체제구축의 이유가 됐다. 이들은 모회사 이머크를 통해 그룹을 지배하고 있지만 파트너위원회에 참여하는 것은 오너가 5명 외부인사 4명에 불과하다.
오너일가가 머크에서 근무하기 위해서는 남들과 마찬가지로 능력을 검증받고 경쟁에서 살아남아야만 한다.
스웨덴 경제의 한 축을 맡고 있는 발렌베리그룹도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사례에서 단골로 꼽히는 기업이다. 발렌베리그룹의 지배구조는 발렌베리의 후계자들이 기업의 주식을 직접 소유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주식은 투자 및 지주회사인 인베스터가 갖고 있으며 이 회사의 주식들을 다시 발렌베리가의 4개의 공익재단들이 소유하고 있다.
이들 재단이 지배구조의 핵심인 것. 모든 기업의 이익은 배당 형태로 투자 지주회사인 인베스트를 통해 4개의 공익재단으로 들어간다.
때문에 발렌베리 가문 사람들은 이 돈을 개인적 용도로는 사용할 수 없다. 오로지 재단이나 기업에 재직하며 급여를 받을 수 있을 뿐이다.
발렌베리그룹은 이 이익금 중 80% 이상을 법인세 및 공입사업 기부에 쓰고 있다. 경영권을 갖되 소유권은 사회에 돌려준 경우다.
미국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소유에 대한 인식도 희박하다. 미국 근대화 과정에 대부호였던 카네기와 록펠러는 아예 대부분의 자산을 사회에 환원해 공익 재단을 설립했다. 이는 지배보다는 공익 목적이 대부분이었다.
현재 카네기와 록펠러 가문은 지배주주가 아닌 개인 주주 정도의 역할만 맡고 있다.
실제 미국 사회는 이미 법원에서 독점에 대한 강력한 제재를 해왔고 이사회의 독립성 및 주주의 권한이 강화되면서 오너의 권한에 한계가 생겼다. 전문경영인 체제는 미국에서 가장 활성화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끝>
[뉴스핌 Newspim] 이강혁 강필성 기자 (ikh@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