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손·BP 등 기존 대형사 시대 종료…한국도 대비해야
[뉴스핌=주명호 기자] 세계 석유산업이 지각 변동을 맞고 있다.
한때 '일곱자매(seven sisters)'라 불리며 20세기 중반 세계 석유시장을 지배했던 대형 석유화학기업들의 앞길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어두워지고 있다. 석유화학산업이 수출업계에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는 우리나라로서도 단순히 넘겨 봐선 안 될 부분이다.
국제사회에서 석유가 지닌 힘은 막강하다. 공급은 한정적인데 수요는 꾸준히 증가해온 덕분이다. 하지만 이런 논리는 더 이상 석유의 힘을 유지해주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영국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공급 한계가 아닌 수요 감소가 국제석유시장의 미래지침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을 내놨다. 여기에 각국의 지원을 등에 업은 국영석유기업(NOC, National Oil Companies)들의 약진으로 그간 세계 석유산업을 주름잡았던 대형 석유화학기업들이 쇠락할 것이라는 게 매체의 진단이다.
◆ 소비효율 증가+셰일가스 = '석유수요 감소'
석유 수요가 감소할 것이라는 주장은 먼저 석유 소비 환경이 변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내세운다. 기술의 발전을 통해 더 적은 양으로 더 많은 효과를 얻는 고효율을 지향하게 됐다는 것이다. 석유 소비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자동차 등 운송 연료 분야를 살펴보면 이런 점이 두드러진다. 이미 2000년 중반 이후 선진국들의 석유 수요는 감소세로 전환했다. 엔진 효율성 증대 및 자동차산업의 침체 등이 영향을 준 까닭이다.
신흥국 또한 과거 선진국들의 석유 소비를 답습하지 않으려는 모습이다. 지난 3월 중국은 2015년까지 자동차 연비기준을 6.9리터/100㎞, 2020년까지 5리터/100㎞ 수준으로 엄격히 규제하는 법안을 꺼내들었다. 환경 오염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 절제없는 에너지 소비를 방관하지 않겠다는 의지다. 씨티그룹은 이와 관련해 차량의 에너지 효율성이 연간 3~4%씩 향상되면 2020년까지 하루 380만 배럴의 소비 수요가 줄어들 것이라는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씨티에 따르면 석유 소비량은 하루 9200만 배럴 부근에서 감소세로 전환할 것으로 전망된다. <출처 : Economist> |
수압파쇄(fracking)란 신기술을 통해 셰일가스 생산붐이 번지고 있는 것도 석유 수요를 감소케 하는 원인으로 꼽힌다. 씨티그룹은 셰일가스로 인해 감소하는 석유 수요는 2020년까지 하루 350만 배럴에 이를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효율성으로 인한 감소치를 합하면 향후 세계 하루 석유 소비량은 9200만 배럴을 정점으로 감소세로 돌아설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런 결론은 대형 석유회사 및 국제에너지기구(IEA)가 내놓은 예상과 완전히 다른 방향을 보이고 있다. 브리티시 페트롤리엄(BP)는 2030년까지 하루 1억 400만 배럴, 엑손모빌은 2040년까지 하루 1억 1300만 배럴로 석유 소비량이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코노미스트는 과거 사례에 비춰 볼 때 석유사 및 IEA의 수요 전망은 과장된 측면이 많았다고 지적한다. 1990년대 IEA는 2020년까지 소비량이 하루 1억 1200만 배럴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현재는 9700만 배럴로 하향조정한 상태다.
셰일의 등장은 특히 기존 대형석유화학기업들에게는 악재다. 셰일 개발시장을 선점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이코노미스트는 단순히 시장을 선점하지 못한 것만 아니라 개발에 사용되는 신기술을 축적할 기회를 놓쳤다는 점을 주목했다. 현재 미국 내 셰일가스 개발은 미셸 에너지 등 중소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다.
◆ 국영기업들의 역습…석유업계 판도 변해
여기에 국영 석유기업들의 대두도 기존 석유화학기업들의 앞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특히 아람코(사우디), 가즈프롬(러시아), 중국석유천연가스집단공사(중국), 페데베사(베네수엘라), 이란석유공사(이란), 페트로브라스(브라질), 페트로나스(말레이시아)는 이제 새로운 '일곱 자매'로 불리며 세계 석유산업을 장악하고 있다. 지정학적, 정치적 문제 등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이들 기업은 현재 세계 석유보유량의 90%를 차지하고 있다.
생산량 기준 10대 석유기업 중 7곳이 국영기업이다. <출처 : Economist> |
연구개발, 인수합병에 대한 투자 규모도 국영기업들이 압도적으로 크다. 컨설팅 기업 베인&컴퍼니에 따르면 2011년 주요 대형석유기업들의 투자규모는 44억 달러인데 비해 5개 대형 국영기업들의 규모는 이를 상회한 53억 달러를 기록했다.
최근 고유가에도 불구하고 석유기업들이 부진한 성적을 내놓고 있는 것도 이런 요인들이 영향을 주고 있다. 엑슨모빌, 로얄더치쉘, BP 모두 기대치에 못 미친 저조한 2분기 실적을 발표해 투자자들의 실망감을 키우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4일자 기사에서 이들 대형기업과 다르게 셰일 개발 기업들은 실적 호조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 수요·셰일 문제…국내 석유업계도 안심 못해
이런 국제 석유산업계의 지형 변화 영향에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최근 전문가 및 정부 당국도 국내 석유화학전망이 어둡다는 전망을 속속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산업통상자원부의 한 관계자는 셰일가스 생산이 본격화되면 유가가 하락해 국내 석유화학업종의 경쟁력도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18일 열린 석유화학업계 CEO 간담회에 참석했던 윤상직 장관은 "미국 셰일가스로 인한 가격 우려에 대해 정부와 업계가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겠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뉴스핌 Newspim] 주명호 기자 (joomh@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