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극적 대응…전문인력 양성 대응체제 갖춰야
[뉴스핌=김홍군ㆍ김양섭ㆍ이연춘ㆍ김기락 기자]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는 지난 1월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로부터 각각 172억원, 201억원의 과징금을 부과 받았다.
치메이 등 대만기업 4개사와 함께 2001년부터 5년간 한국과 대만에서 수 차례 모임을 갖고 휴대폰과 TV에 들어가는 LCD 패널의 가격을 담합해 중국 기업들에게 피해를 줬다는 이유였다. 총 과징금 600억원 가운데 삼성과 LG가 부과받은 과징금이 60%를 넘었다.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는 1990년대 말부터 중국에 LCD패널 수출을 시작했으며, 2000년대 들어서는 현지에 공장을 설립하는 등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삼성과 LG가 중국에서 가격담합으로 과징금을 부과 받은 것은 이 건이 처음이다. 중국 정부가 자국 영토 밖에서 이뤄진 담합 행위를 처음으로 제재한 사례이기도 하다.
중국 정부가 해외 기업들의 가격담합 등 불공정 거래행위를 본격 규제하기 시작하면서 국내 기업들도 비상이 걸렸다.
반독점법 시행 5년을 맞아 그동안 미미했던 세부규정들이 제정되면서 한국을 비롯한 해외 기업들에 대한 압박이 본격 시작된 것으로 분석된다. 중국 경제의 성장세가 둔화되면서 자국기업 보호의 필요성이 커진 점도 원인이다.
중국 정부는 지난 8월에도 프랑스 다농, 미국의 미드존슨 등 다국적 유제품기업 6곳이 분유값을 담합했다며 6억6873만위안(약 1200억원)에 달하는 사상 최대 액수의 과징금을 매겼다.
스웨덴의 포장용기 제조업체인 테트라팩에 대해서도 끼워팔기를 했다며 7월부터 강도 높은 조사를 실시 중이다.
전경련 김성욱 변호사는 한 보고서에서 “중국 반독점법이 시행된 후 4년이 경과함에 따라 중국 정부의 반독점법집행이 강화되고 있다”며 “특히, 반독점법의 역외 적용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더 큰 문제는 중국 정부로부터 제재를 당하면 소명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국내에서는 이의제기와 소송 등을 통해 과징금을 낮추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중국은 이 같은 절차가 아예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삼성과 LG는 별다른 이의제기 없이 과징금을 냈다.
또한 규제범위가 지나치게 포괄적이고, 과징금을 산정하는 기준이 명확치 않는 등 당국의 재량이 작용할 가능성이 큰 점도 국내 기업들이 더욱 긴장해야 하는 이유다. 자칫 중국 정부에 찍혔다가는 언제든 막대한 금액의 과징금 폭판을 맞을 수 있는 셈이다.
이처럼 중국의 반독점법이 강화되고 있지만, 국내 기업들의 대응은 소극적인 편이다. 연초 과징금을 부과받은 삼성과 LG 측은 “현지 법규를 준수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원론적인 입장만 밝히고 있다.
이는 중국에 진출해 있는 다른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중국에서 올해 150만대 가량의 자동차를 판매할 것으로 예상되는 현대기아차는 “현재로서는 전혀 문제되는 부분은 없다”며 “관련 조항들을 세부적으로 검토해 강화된 법 적용으로 인한 리스크 관리에 만전을 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포스코도 “지난 1991년 중국에 진출한 이후 중국 경쟁법으로 인한 제재를 받은 적이 없다”고만 밝혔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각종 정책 설명회에 담당자를 직접 파견해 의견을 청취하는 등 중국 내 유통업과 관련된 법안 모니터링을 상시적으로 실시 중"이라며 "중국 내 주요 입법 동향에 대해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국내 기업들의 대응이 미온적인 것은 중국 경쟁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데다 경쟁법에 대한 대응이 중국 정부에 대한 반발로 읽혀져 불이익을 당하지는 않을까 우려하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중국 당국이 외국계 기업을 대할 때 비교적 고압적인 자세를 취하는 편인데, 자칫 괘씸죄 등이 적용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는 것 같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김성욱 변호사는 “중국 경쟁법의 연구는 어느 한 기업에서 주도하여 진행하기 어려운 공공재적 성격이 강하므로 정부 또는 경제단체에서 주도하여 법률, 정책전문가들이 연구할 필요가 있다”며 “기업들도 사내 중국 전문인력 양성과 중국의 법정책 동향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끝>
[뉴스핌 Newspim] 김홍군 기자 (kiluk@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