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소득 줄자, 돈 있어도 대출상환 대신 더 빚내
[뉴스핌=한기진 김연순 기자] 서울 서초구에 사는 김모 씨(60)는 보유 중인 서울 목동 신시가지 7단지 15평짜리 아파트로 담보대출 1억원 더 받기로 했다. 2년 전 이 아파트를 변동금리대출 1억원(만기 5년, 금리 4.70%), 자기 돈 1억원, 전세금 2억원을 끼고 총 4억원에 샀다. 김 씨는 “원래는 집사람이 빚이 싫다고 해서, 그동안 모은 돈을 더해 대출금을 거의 갚을 생각이었다”면서 “요즘 금리가 많이 싸져서 이자소득 등 금융소득이 대출이자보다 더 줄어, 대출을 더 받아 월세로 전환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김 씨의 계산은 이랬다. 그의 총 금융소득은 전세금에 대한 이자소득 연간 460만원(금리 2.3%)과 보유현금 1억원으로 얻는 금융소득 300만원(예금 및 ELS 등 상품투자) 등 총 760만원이다. 금융소득에 대한 소득세를 제외하면 600만원 초반으로 줄어든다. 여기에 대출 이자 370만원(금리 3.7%)을 내면, 실질 금융소득은 240만원 불과하다.
그러나 월세로 전환하면 보증금 5000만원 전후에 월 임대료 100만원씩, 연간 임대수익으로 총 1200만원을 예상한다. 돌려줄 전세금은 자기 돈 1억원, 은행 신규 대출 5000만원 및 월세 보증금 5000만원을 더해 마련키로 했다. 이럴 경우 은행 빚은 1억5000만원으로 불어나 연간 대출이자가 550만원에 달하지만, 실질소득은 650만원(1200만원-550만원)으로, 이전보다 3배 가까이 늘어난다. 월세는 과세대상으로 노출되지 않는 장점도 있다.
김 씨는 “1억원을 예치하는 것과 대출받는 것을 비교하면 금리가 워낙 싸져 금융소득 감소분이 대출증가에 따른 대출이자 증가분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대출받아 부동산에 투자하는 게 낫다”며 “초저금리로 금융소득이 많이 감소하면서 싫어도 월세로 전환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 추가대출을 어쩔 수 없이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저금리는 양면성이 있는데 대출이자 부담이 줄고 자산가치가 상승하는 부(富)의 효과가 있지만, 가계의 금융소득이 감소하는 단점이 있다. 부인이 빚을 싫어하는 김 씨의 경우 단점이 훨씬 크게 다가온 사례다.
이처럼 가계는 저금리의 줄타기를 하지만, 다른 경제주체인 기업은 이익만을 얻고 있다. 금융자산 운용으로 수익을 창출하지 않기 때문에 저금리에 따른 금융수익 감소에 따른 타격이 거의 없는 편이다. 여기에 대출금리가 크게 떨어지면서 재무구조에 숨통이 트이고 있다. 대기업의 경우 신규취급액 기준 예금은행 대출금리가 지난해 12월 4.43%에서 지난 8월 4.03%로 0.40%포인트 하락하며 이자상환부담이 감소했다.
◆ 가계 대출금리는 제자리… 금융소득이 더 감소
기준금리 인하로 '가계 이자부담 경감→소비 통한 경기회복'의 선순환 구조로 이어지지 못하고 실질적으론 가계가 금융소득 감소를 피하기 위한 신규 대출증가로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 과정에서 월세 세입자가 더욱 늘어나며 소비여력 감소로 이어지고 있고, 기업들은 대출이자 감소로 저금리의 재미를 보고 있다.
결과적으로 가계는 기준금리 인하의 혜택에서 비켜나고 있다는 이야기다.
한국금융연구원 임진 연구위원은 "기준금리 인하는 이자 생활자보다는 대출받은 사람들이 이익을 볼 것"이라며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이자 부담 경감 혜택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처럼 가계의 대출 저항이 많이 감소하면서 은행들은 가계 대출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주택담보대출을 취급하면서 기준금리 인하에도 불구 가산금리 인상을 통해 대출금리 인하를 최대한 억제하고 있다.
이에 따라 대출금리는 제자리걸음을 보이고 오히려 소폭 상승하는 일도 있지만 금융소득만 감소하는 기현상이 연출되고 있다.
실제 한국은행이 지난 8월(14일) 기준금리를 인하했지만, NH농협, 하나·외환·IBK기업은행 등 시중은행은 오히려 대출금리를 올리면서 금융당국과 정치권으로부터 경고를 받은 바 있다.
은행연합회 공시 자료에 따르면 외환은행이 취급한 분할상환방식 주택담보대출 평균 금리는 7월 3.35%에서 지난 8월 연 3.59%로 0.24%포인트나 상승했다. 농협은행이 취급한 주택담보대출의 평균 금리도 7월 연 3.31%에서 지난 8월 연 3.5%로 0.19%포인트 올랐고, 하나은행 주택담보대출 금리도 연 3.57%에서 연 3.59%로 상승했다.
가계대출 금리는 '기준금리+가산금리'로 이뤄지는데 기준금리 하락분을 가산금리 상승으로 상쇄해 대출금리 하락을 막은 셈이다.
◆ 은행들 저금리 속 마진 고민에, 대출금리 인하 주저할 수밖에 없어
아울러 새누리당 유의동 의원이 금융감독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은행들의 가산금리 인상이 확연히 드러난다.
한국은행 기준금리는 지난 2011년 3월 3.24%에서 2013년 5월 2.50%로 단계적으로 인하됐고, 지난 8월 2.25%로 인하될 때까지 2.50% 수준을 유지했다.
하지만 지난 상반기 은행별 고정금리 주택담보대출 평균금리가 4% 이상인 은행은 무려 10곳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우리, SC, 하나, 씨티, 대구, 전북, 경남, 산업, 수협 등 9개 은행의 경우에는 2013년 대비 평균대출금리가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 전북, 산은의 경우 가산금리를 높이는 방식으로 대출금리 인상이 이뤄졌다.
유의동 의원은 "은행들이 수익성이 하락하자 은근슬쩍 가산금리를 높이는 방법으로 고객들의 호주머니를 털고 있다"면서 "기준금리는 계속 내려가도 대출금리가 내려가지 않아 의아해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모 시중은행의 리스크담당 부행장은 "기준금리 하락에 따라 가산금리, 마진을 얼마만큼 가져가느냐는 것이 중요한데, 기준금리가 바뀐다고 해서 (대출금리가) 일률적으로 바뀌는 것은 아니다"면서 "기준금리 하락을 통해 베이스가 떨어지면 감경금리는 신중하게 해서 전체적으로 은행의 마진 자체는 압박을 덜 받게 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전했다.
[뉴스핌 Newspim] 한기진 기자 (hkj7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