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습 위반·들러리 참여 엄중 제재…'솜방망이'는 옛말
[편집자] 이 기사는 지난 8일 오후 3시 39분에 프리미엄 뉴스서비스 'ANDA'에 먼저 출고했습니다.
[세종=뉴스핌 최영수 이동훈 기자] 공정거래위원회가 달라졌다. '솜방망이'에서 무서운 포청천으로 돌변했다.
공정위는 4대강 건설 담합사건을 비롯해 주요 담합 사건에서 관련 매출액의 5% 미만을 과징금으로 부과할 뿐이었다.
하지만 지난 7일 한국가스공사 주배관 건설공사 입찰담합에 대해 공정위가 그간 볼 수 없었던 강한 조치를 내렸다.
공정위는 이 담합에 가담한 22개 건설사에 시정명령과 함께 총 1746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특히 건설업계 맏형격인 현대건설과 삼성물산은 관련매출의 30%가 넘는 과징금 폭탄을 맞았다.
현대건설의 매출액이 1182억원인데 30.7%에 해당하는 363억원의 과징금이 부과됐고, 삼성물산은 매출액 747억원의 39.2%인 293억원을 받았다. 한양은 매출액 835억원의 37.7%에 달하는 315억원 과징금을 부과받았다(그래프 참조).
◆ 공정위원 대폭 물갈이…이젠 솜방망이 아닌 회초리
![]() |
(그래픽=송유미 미술기자) |
우선 최근 공정위원 9명(상임위원 5명, 비상임위원 4명) 중 절반 이상이 바뀐 것. 새 공정위원들이 중요 사건에 대해 제재 강도를 높인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해 말 내부출신인 정재찬 위원장이 취임한 이후 상임위원 2명이 교체됐고, 비상임위원도 4명 중에 2명이 새롭게 선임됐다.
내부출신 공정위원장과 새로워진 공정위에 대한 안팎의 기대감이 고조됐고, 솜방망이 오명을 벗고 '경제검찰'의 위상을 되찾아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커졌다.
공정위는 공식적으로는 "달라진 게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원칙'을 강조하며 솜방망이 이미지 쇄신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는 게 공정위 안팎의 전언이다.
공정위는 최근에도 비정상적 거래관행을 근절하기 위해 '3대분야 10대 핵심과제'를 선정하며 '공공분야 입찰담합 근절'을 신규과제로 제시한 바 있다.
이번 담합 사건의 주심을 맡았던 김석호 상임위원은 "워크아웃(기업회생절차) 기업 외에는 과징금 산정기준을 원칙대로 적용했다"면서 "특정업체에 유리하거나 불리한 결정은 없었다"고 강조했다.
◆ 건설업계 상습적인 담합 '자업자득'
또 다른 이유는 건설사들의 위반건수가 누적되면서 가중치가 높아진 것.
![]() |
(자료:공정거래위원회, 단위:백만원) |
특히 업계 맏형격인 현대건설과 삼성물산은 최근 1년 만 돌아봐도 대형 공공입찰 담합에서 '단골손님'이나 다름없었다.
현대건설은 지난해 7월 호남고속철도 건설사업과 낙동강하구둑 건설사업(9월)에 이어 올해도 고양바이오매스 에너지시설(2월)과 광주시 환경시설(4월) 건설공사 등에서 잇따라 시정조치를 받았다.
삼성물산도 지난해 7월 호남고속철도 건설사업과 낙동강 하구둑(9월), 9호선 건설사업(10월)에 이어 올해도 새만금방수제(3월) 건설공사에서 잇따라 담합행위가 적발된 바 있다.
신영호 공정위 카르텔조사국장은 "대형 국책사업 등 공공입찰 담합에 관한 감시를 강화하고, 담합이 적발될 경우 법과 원칙에 따라 엄중하게 제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한 한 건설업체 관계자는 "과거 관행처럼 벌어졌던 '나눠먹기식' 수주가 문제가 됐지만 최근에 거의 사라졌다"면서 "공정위 조치에 성실히 대응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 무분별한 들러리 남발…'과징금 폭탄' 부메랑
또한 건설업체간 '나눠먹기'를 위해 들러리를 남발한 것도 대규모 과징금의 화근이 됐다. 실제로 건설사들은 27개 공사에서 여러차례 중복해 들러리를 서준 것으로 조사됐다.
현행 과징금 규정상 들러리를 서준 업체도 관련매출(입찰가격)의 최대 50%까지 과징금을 물리고 있다. 그동안 들러리에 대해서는 다소 괜대했던 공정위의 조치가 보다 엄격해진 것이다.
공정위 카르텔조사국 관계자는 "이번 사건에서 대부분 건설사들이 상호 들러리를 중복해 서주면서 과징금이 커지는 요인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한 피심인업체(건설회사) 관계자는 "단순한 사전 논의를 담합으로 몰거나, 한 건설사가 여러 공구를 수주하지 못하는 규제는 문제가 있다"면서 억울함을 호소했다.
하지만 공정위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과징금 감경요인을 대폭 축소했기 때문에 이후 조사가 시작된 담합사건의 경우 조치가 더욱 엄격해질 전망이다.
[뉴스핌 Newspim] 최영수 이동훈 기자 (dream@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