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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훈의 4색 여행기] 기상천외의 괴암 군집 속의 애잔한 역사, 카파도키아

기사입력 : 2015년06월04일 14:37

최종수정 : 2015년06월04일 14:37

아쉬움 속에 파묵칼레 마을을 떠나 카파도키아 행 야간버스를 탔다. 자정 무렵에 휴게소에 정차했는데 그곳을 가득 채우며 울려퍼지던 무슬림 음악이 전혀 색다른 서정을 불러 일으키고 있었다. 잠에서 막 깨어나 느낌이 강렬했는지도 모른다. 눈을 떠보니 몇 군데 불빛을 빼놓곤 캄캄한 가운데 코란의 정서가 진하게 배인 노래가 들려온 것이었다. 어둠은 역시 그윽한 맛을 담는 최고의 그릇인 것 같았다. 적당한 휴식을 취한 다음 버스에 다시 올라타 단잠에 빠졌다가 깨니 다음 날 새벽 7시경. 카파도키아의 작은 마을 괴레메의 풍경이 압도적으로 펼쳐져 있었다.

너무도 아름다웠다. 파묵칼레도 절경이었지만 또다른 눈부신 절경이 황홀하게 드러난 것이다. 파묵칼레와 카파도키아가 터키 여행시 자연 풍광의 백미라는 말이 있는데 과연 그랬다. 단체 여행용 봉고가 대기하고 있어 순식간에 열댓 명으로 급조된 우리 일행은 그 차를 타고 놀라운 경치 속을 달려나갔다. 우르치사르라는 이름의 지역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원추형의 거대 괴암들이 건조한 황갈색의 모래벌판 위에 군집을 이룬채 퍼져 있었다. 괴암마다 큰 구멍들이 파진 곳이 많았는데 그것들이 내부의 동공으로 이어진다고 가이드가 알려주었다. 어느 괴암 앞에 가이드가 멈추고는 말했다.
“이 동굴 안에 사람들이 거주하기 시작한 게 대략 기원전 사천년 전부터입니다. 히타이트 족들도 이 동굴에서 살곤 했지요.”

책에서나 보던 히타이트 족. 철기 문화를 지니고 있었고 강국인 이집트와도 서아시아의 패권을 놓고 전쟁을 벌였던 제국. 그 고대 문명인들이 살았던 장소를 직접 보니 아찔해졌다. 나는 가이드를 따라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 공간이 여섯 개의 층으로 구분되어 있고 그 사이를 오르내리도록 돌층계도 만들어져 있었다. 천장은 울퉁불퉁하고 바닥은 평평하게 다져져 카펫이 깔려 있었다. 실내 공기는 흙냄새가 배긴 했지만 바깥의 뜨겁고 건조한 공기보다는 훨씬 살만했다. 물론 현재 살고 있는 사람들의 여건이다. 그러나 히타이트 인들이나 그들보다 먼저 존재했던 고대인들이 살던 공간의 구조만큼은 지금의 이 형태와 큰 차이가 없을 것 같았다. 자연 그대로의 지형이 거의 절대적인 조건이니까 말이다. 

이 기상천외한 괴암군이 생긴 것이 약 삼백만 년 전의 격렬한 화산폭발과 지진활동 후 오랜 세월에 걸친 풍화와 침식 때문이라고 한다. 히타이트와 그 후에 이곳에 살다가 사라진 고대 문명들에 대한 상상만으로도 벅찬 내 가슴에 더 깊은 시원이 보여지자 상상의 한계를 뛰어넘는 우주적 파노라마에 입이 벌어질 뿐이다. 점심을 먹은 후 가이드는 봉고를 좀 더 몰아 괴레메 야외박물관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야외박물관이라고 해서 야외에 유적지들이 적당히 전시되어 있는 걸로 상상했는데 그런 것이 아니라 광대하게 펼쳐진 괴암의 지형 자체가 박물관이었다. 기묘하게 생긴 괴암들이 구멍들이 뚫린채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우리는 그 사이를 걸어다녔는데 흡사 저 우주 속의 행성 위를 걷는 기분이라는 말들이 절로 나왔다. 영화 '스타워즈'의 배경으로도 쓰여진 곳이란다.

“저 구멍 파인 곳들은 돌집들이지요. 카파도키아는 페르시아의 지배에 이어 로마의 지배를 받는데 초기 기독교인들이 로마의 박해를 피해 저 돌집에서도 살았지요.”
가이드의 말에 따라 돌집을 바라보는 마음에 스산하고 애잔한 바람이 불어왔다. 과거의 거대 문명들의 흔적이 느껴진데다가 에페소스에서 일어났던 전율이 뭉클 되살아나서였다. 

“이 괴레메 야외박물관엔 동굴 교회만 해도 수 백 개가 넘는답니다. 알다시피 로마가 분열되어 서로마와 동로마로 나뉘어지게 되고 동로마 즉 비잔틴 제국이 펼쳐지게 되지요. 이곳의 동굴 교회들은 비잔틴 시대에 만들어집니다. ‘사과 교회’니 ‘뱀의 교회’니 괴암의 형상에 따라 동굴 교회의 이름도 붙게 되구요. 교회들의 암벽엔 예수나 사도들의 모습이 담긴 프레스코화들이 그려져 있기도 하죠. 생성 시기에 따라 색상이나 문양이 물론 달라지지요.”
가이드를 따라 들어와 설명을 들으며 벽면의 프레스코화를 살펴보는 동안 가슴 속의 동요가 심화되어 나갔다. 

“그런데 잘 보시면 프레스코화에 훼손이 있습니다. 비잔틴 시대에 성상 파괴 운동이 일어났는데 그때 파손된 것도 있고 무슬림들에 의해 그렇게 된 것도 있지요.”
과연 훼손된 부분들이 있었다. 비잔틴과 무슬림까지 영역이 확장되니 역사 공부를 진짜 제대로 하는 것 같았다. 터키 여행이 줄 수 있는 진귀한 선물인데 이곳 괴레메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는 것이었다. 프레스코화에서 어느 정도 떨어진 벽면에는 연기에 그을려 새까맣게 변한 곳도 있었다. 기도 장소와 함께 생활 공간으로도 쓰여진 증거일 것이다. 아득한 시절의 생생한 증거들이 뿜어내는 내음에 내 마음엔 형언할 수 없는 무늬들이 계속 그려져 나갔다.

놀라운 보물들로 가슴을 채우고 호텔에 도착하니 일몰이 지고 있었다. 자연으로만 거의 채워져 오염이라곤 없는 거나 마찬가지여서 석양빛이건 그에 물들어가는 괴암들의 아름다움은 상상 초월이었다. 나는 호텔에 들어서려다가 미의 여신에 눈길을 빼앗기듯 바위 언덕을 올랐다. 광야의 끝에서부터 바람이 장쾌하게 불어왔다. 온몸으로 맞고 싶어 망설이다가 웃통을 벗었다. 런닝까지. 붉게 물들어가는 장엄한 자연과 나뿐이었다. 바람은 갈수록 세지더니 괴암의 모래가루를 끌어다가 내 맨몸에 뿌려댔다.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수평으로 강하게 때려오는 모래 바람을 맞아 맨살이 아팠다. 하지만 시원하고 후련했다. 몰아쳐라. 강풍이여. 카파도키아의 괴암들을 신비하게 빚은 예술의 손, 삶의 혹독한 채찍이여. 나는 두 팔마저 양쪽으로 펼친채 한참이나 그러고 서 있었다. 붉은 노을이 검정빛으로 변할 때까지.

이명훈 (소설 ′작약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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