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전망 암울…ECB가 위기 진앙으로 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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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 뉴스핌 권지언 특파원] 부실 우려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유럽 은행권이 최근 주가 폭락세에 이어 또 한 번 위기가 도래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최근 유럽 은행권 위기 가능성이 헤드라인을 장식한 것은 도이체방크와 소시에테 제네랄, 도이체방크 등 주요 은행주들이 줄줄이 폭락세를 연출했던 지난주다.
이미 문제아로 낙인찍힌 이탈리아나 포르투갈 뿐만이 아니라 독일 대형은행까지 문제가 불거지면서 2008년 리먼 사태에 버금가는 위기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경고음이 잇따랐다.
유로존 역내 47개 은행으로 구성된 스톡스(Stoxx)600 은행지수는 지난 11일 130.48로 2012년 7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당시 도이체방크와 소시에테 제네랄, 크레디트 스위스, 이탈리아 유니크레디트 등은 8~10%에 달하는 폭락세를 연출했다.
스톡스유럽600 은행지수 1년 추이 <출처=블룸버그> |
거침없는 주가 하락에 유럽 은행들의 시가총액은 올 초 이후 2400억달러, 약 4분의 1 가까이가 증발했다.
지난 7주 연속 하락세를 보이며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악의 흐름을 보이던 유럽 은행지수는 이번 주 들어 12% 넘게 반등하며 추가 하락을 멈추며 안정세를 되찾은 모습이다. 하지만 은행권 전반에 대한 불안감은 좀처럼 누그러들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다양한 대외 악재들로 인해 유럽 시중은행 재무 여건이 악화된 상태에서 유럽중앙은행(ECB)이 추가 금리 인하를 고려하고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은행 수익성이 더 악화되면서 또 한번 위기가 올 수 있다는 판단이다.
◆ '먹구름' 유럽 은행권.. 부실 1조유로
지난 금융위기 이후 8년 가까운 시간을 뼈아픈 구조조정과 인력 감축, 사업 축소 등에 쏟아 부으며 체질 개선에 힘써 온 유럽 은행들이지만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거시경제 환경은 은행 실적 전망을 더욱 어둡게 하고 있다.
배럴당 30달러선으로 추락한 국제유가나 중국의 경기 둔화 등 열악한 시장 환경에 은행 수익성이 악화된 데 이어 위험투자에 대한 당국의 규제 강화, 뱅크런 대비 자기자본 강화 등도 은행에 부담이 되고 있다.
작년 4분기 유럽 은행들의 수익성은 트레이딩 부문을 중심으로 크게 악화됐는데, 부채비용 증가와 마이너스 금리 여건은 은행들을 더욱 위기로 내몰고 있다.
수 년간 지속되고 있는 ECB의 초완화(ultra-loose) 정책으로 유럽 은행들의 부실채권 규모는 작년 상반기 기준으로 1조유로를 기록했으며, 기타 금융기관에 대한 대출을 제외하면 이는 전체 대출의 10% 정도를 차지한다.
미국 은행권의 부실대출 비중이 3% 정도인 것과 비교하면 상당한 수준인데, ECB의 마이너스 금리 도입으로 신규 대출이 늘면서 부실대출 증가세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 ECB, 위기 '해결사' 아닌 '촉매제'
ECB 마리오 드라기 총재<출처=AP/뉴시스> |
특히 유럽 은행권 위기 해소에 앞장서야 할 ECB는 오히려 문제를 더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다.
최대한 시중 유동성을 늘려 경기를 부양하고 인플레이션을 유도하겠다는 취지로 도입된 마이너스 금리는 은행의 수익성을 짓누르고 있는데, 오는 3월 ECB의 추가완화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은행 부담은 늘어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모간스탠리는 17일 투자노트에서 ECB가 이미 마이너스인 예금금리를 더 낮추면 유럽 은행들의 수익은 5~10% 축소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내년에 예금금리가 20bp(1bp=0.01%포인트) 추가 인하되면 은행 수익도 평균 10% 더 줄어들 것이며 유형자기자본이익률(ROTE)은 80~90bp 축소될 것으로 내다봤다.
현재 시장은 ECB가 3월 예금금리를 마이너스 (-)0.5%로 20bp 추가 인하할 가능성을 86%로 보고 있다. 애널리스트들 상당수는 또 ECB가 현재 월 600억유로 규모의 채권매입 프로그램을 가속화할 가능성도 점치고 있다.
이미 ECB가 은행 구제 비용을 납세자들이 감당해야 하는 베일아웃(bail out)에서 채권 매입자 등 투자자들이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베일인(bail in) 쪽으로 스탠스를 변경한 것 때문에 금융시장은 '코코본드' 이자상환 중단 우려를 계기로 크게 들썩인 바 있다.
앞서 키프로스와 그리스 은행 위기 당시 베일인 방식을 밀어 부친 ECB가 최근 도이체방크를 중심으로 위기 발생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독일 은행권에만 베일아웃을 적용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럴 경우 독일 연방정부가 다시 구제금융 부담을 짊어져야 하는데, 이 경우 정부부채 규모를 국내총생산(GDP)의 60% 이내로 제한하는 유럽연합(EU) 규정을 위반할 수 있다.
아일랜드와 포르투갈, 그리스 등에 엄격히 적용됐던 부채 한도를 독일이 지키지 않는다면 유로존 균열을 초래해 붕괴 위기로까지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뉴스핌 Newspim] 권지언 시드니 특파원 (kwonjiu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