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 배치 결정 후 첫 회담…중국, 노골적 불만제기 향후 파장 주목
[뉴스핌=이영태 기자] 한국과 미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결정 이후 24일(현지시각) 라오스 비엔티안에서 처음 열린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왕이(王毅) 외교부장 간 한·중 외교장관 회담에서 양국은 사드 문제를 놓고 팽팽한 기싸움을 벌였다.
윤병세 외무장관이 지난 4월27일 중국 방문 중 왕이(王毅) 외교부장과 댜오위타이 영빈관에서 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사진=뉴시스> |
왕 부장은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등 아세안(ASEAN) 관련 연쇄 외교장관 회의를 계기로 비엔티안 돈찬팰리스호텔에서 1시간 동안 진행된 윤 장관과의 양자회담에서 사드 배치 결정에 대해 "최근 한국 측의 행위는 쌍방(양국)의 호상(상호) 신뢰의 기초에 해를 끼쳤다"며 "이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왕 부장은 "한국 측이 실질적인 행동으로 우리 사이의 식지 않은 관계를 수호하기 위해 어떤 실질적인 행동을 취할 것인지에 대해서 들어보려고 한다"며 사실상 사드배치 중단을 요구했다. 사드 배치가 자국의 군사적 억제력 등 전략적 이익을 훼손하는 것이라며 반대해온 중국의 입장을 가감 없이 전달한 것이다.
중국 외교수장이 한국 외교수장과 직접 대면한 자리에서 한국 정부의 실질적 행동을 요구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 정부가 예정대로 사드 배치를 진행할 경우 중국 측의 추가 대응이 주목된다.
양국은 당초 회의 첫머리 발언을 공개하지 않는 방안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한중 취재진에 취재가 허용됐으며, 이는 회담 직전 중국 측의 요구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사드 이슈를 부각하고 싶은 중국 측의 속내가 드러난 대목으로 볼 수 있다. 왕 부장은 윤 장관의 발언을 듣던 중 불만이 있는 듯 손사래를 치거나, 턱을 괸 채로 발언을 듣는 등의 모습을 취재진 카메라에 보여주기도 했다.
윤병세 장관은 사드 배치 결정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해 국가 안위와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자위적 방어조치로서 책임 있는 정부로서 당연히 해야 할 조치를 한 것이며, 제3국을 겨냥하지 않는다는 점을 재차 강조하고 설득을 시도했다.
윤 장관은 고사성어까지 곁들여가며 사드 배치의 불가피성을 피력했다. 그는 '추신지불 전초제근'(抽薪止沸 剪草除根·장작불을 빼면 물을 식힐 수 있고, 풀을 뽑아 없애려면 그 뿌리를 뽑아야 한다)는 말을 인용해 사드 배치의 근본적 문제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있음을 강조하고, 문제의 근원을 제거하기 위한 중국 측의 역할을 우회적으로 요구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윤 장관이 "사드 배치가 중국의 전략적 안보 이익을 왜 해치지 않는지에 대해 상세하고 당당하게 설명했다"고 전했다.
두 장관은 사드 배치를 둘러싼 팽팽한 긴장 속에서도 양국관계의 끈을 아주 놓치는 않았다.
왕 부장은 "(한중관계는) 식지 않은 관계"라면서 "쌍방의 인적 교류는 이미 천만 시대다. 이런 협력은 두 나라 인민들에게 지금 의미가 있고, 나중에도 계속 의미를 줄 것"이라고 말했다.
윤 장관은 "(박근혜 정부 들어) 지난 3년 반 동안 양국이 과거 어느 때보다 높은 수준의 관계발전을 이룩했다"며 "양국이 협력해나가는 과정에서 여러 도전에 직면할 수는 있지만 특정 사안으로 양국관계가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또 '봉산개도 우수탑교'(逢山開道 遇水搭橋·산을 만나면 길을 트고, 물을 만나면 다리를 놓는다)란 고사성어를 들며 "양국이 여러 도전에 직면할 수 있지만 특정 사안으로 관계가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역설했다.
이날 회동에서 중국 측의 북한 비핵화와 대북제재 이행 의지를 재확인한 것은 성과로 보인다. 외교부 당국자는 중국 측이 "한반도 비핵화 원칙을 재확인하고, 안보리 대북결의 2270호의 엄격한 이행 의지를 표명했다"고 전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사드배치 결정이 발표된 이후에도 외교장관 간의 소통이 되고 있고, 앞으로도 이런 소통을 계속해 나가겠다는 공감대가 있었다는 점이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한편 왕 부장은 회담에 앞서 취재진과 만나 '(ARF에 참가하는) 리용호 북한 외무상과 오늘이나 내일 만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가능성이 있다"(It's possible)고 말했다. 다만 한중 외교장관 회담에서 북중 회담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고 외교부 당국자는 밝혔다.
[뉴스핌 Newspim] 이영태 기자 (medialyt@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