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명인증·비공개 '부적절' 지적, 추가 논란 사전차단 의혹
보안숫자 수차례 입력…의견개진, 미로찾기 수준
교육부 "책임있는 의견 개진 위한 시스템…진행사항 공개할 것"
[뉴스핌=이보람 기자] 교육부가 새로운 국정 역사교과서를 공개하면서 국민들의 자유로운 의견을 수렴한다는 입장을 내놨지만, 실제 의견개진을 위해서는 실명 인증 등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다른 사람들이 제출한 의견은 볼 수 없게 돼 있어 정부가 추가적인 논란을 미리 차단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28일 교육부는 '올바른 역사교과서'로 이름 붙여진 새 국정 역사교과서 현장검토본을 웹사이트에 공개하고 국민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제출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했다. 이준식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이날 "국민 여러분께서 주시는 소중한 의견들이 교과서에 충실히 반영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해당 사이트에 실제 접속한 결과, 웹브라우저 '익스플로러(Explorer)'로만 의견 접수가 가능하고 실명인증 등도 필요해 의견개진 자체가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자료='올바른 역사교과서' 공개 웹사이트 갈무리> |
특히 휴대전화나 아이핀(I-PIN)을 통해 본인인증을 하지 않으면 새 교과서에 대한 의견을 제시할 수 없다. 교육부는 '역사교과서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실명제를 시행하고 있다'고 사이트를 통해 밝혔다. 본인 인증 전, 일반 국민인지 역사 교사인지를 구분하는 단계도 있다.
본인인증 뒤에는 교과서종류·해당 페이지·유형 선택→오류내용·근거·수정안 작성→임시저장→최종제출의 단계를 거친다. 이 과정에서 보안숫자를 두어차례 입력해야하는 것은 물론이고 최종제출된 후에는 수정이나 삭제도 불가능하다.
일부 시민들은 이처럼 복잡한 의견개진 절차, 특히 교사와 국민을 나눠 실명을 인증하는 방법이 부적절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김모(32)씨는 "실명인증 취지는 이해하지만 일반 국민과 역사교사를 나눈 뒤 실명인증까지 하는 것은 국정교과서 '블랙리스트'를 따로 만드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들게 한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이 교과서에 대해 의견을 제출한 내용은 볼 수 없고 오로지 자신이 제출한 의견만 볼 수 있는 것. 이에 교육부가 예상치 못한 추가적인 논란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서 의견 개진 시스템을 비공개 제출 형태로 만들었다는 추측도 나온다.
남모(28·여)씨는 "남의 의견을 못 보게 해 놓은 것은 여론 동조를 막기 위한 방법인 것 같다"며 "요즘처럼 정부가 신뢰를 잃은 상황에서 개진한 의견이 그대로 전달될 지도 믿을 수 없는 느낌"이라고 반응했다. 하모(27·여)씨 역시 "다른 사람의 의견을 공개하지 않으면 역사교과서의 주체인 국민들은 정작 어떤 의견들이 나왔는지 알 수 없다"며 "의견 개진은 실명으로 하더라도 이를 무기명으로라도 공개해 다른 국민들이 낸 의견을 볼 수 있도록 해야 어떤 의견이 어떻게 반영됐는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부 한 관계자는 "현장검토본 공개에 따른 의견수렴 절차를 다각도로 고심한 결과, 책임있는 의견 개진이 가능하도록 실명인증 절차를 마련키로 결정했다"며 "교사와 국민을 구별한 것은 현장에서 교과서를 직접 활용해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들의 편의를 고려, 그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한 방안"이라고 말했다.
비공개로 의견 수렴을 진행한 것은 교과서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집필진의 집필과 심의 등 정해진 절차가 있는 만큼, 의견 공개와 토론을 통해 결정할 부분은 아니라고 판단했다는 게 교육부의 입장이다.
그는 또 "수렴된 의견을 반영하는 진행상황과 관련 '깜깜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관련 내용을 공개할 수 있도록 조치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뉴스핌 Newspim] 이보람 기자 (brlee19@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