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주사 음성유통 의료 사고 속출…사망에 이르는 부작용
서울 강남 한 피부과…‘프로포폴’ 주사기에 미리 담은 이유
[서울=뉴스핌] 김유림 기자 =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는 마취제 프로포폴(Propofol). 반복 투여하는 경우 심각한 중독에 이르러 ‘마약’에 준하는 향정신성의약품으로 분류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오남용과 투약 사고가 빈번해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고 있다.
#1.
2009년 6월 25일,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이 세상을 떠났다. 자택에서 숨을 거둔 채 발견됐으며, 전 세계는 충격에 휩싸였다. 경찰은 주치의에 의한 살인으로 판단, 재판에 넘겼고 법정 공방은 수년간 지속됐다. 주치의는 “마이클 잭슨이 잠을 자고 싶다고 호소해 불면증 치료제를 주입한 것”이라고 밝혔으나, 결국 과실치사죄에 대한 법정 최고형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2.
몇 년 전 국내 유명 여자 연예인들의 ‘마약류 주사제’ 상습 투여 사건이 대한민국을 강타했다. 성형외과, 산부인과 등에서 미용 시술과 통증 치료를 받는다는 명목으로 ‘향정신성의약품’을 상습 투약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은 약 40~190차례 정도 마약류 주사제를 불법 투약해왔으며, 이미 상당수의 연예인이 이 향정신성의약품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 ‘우유주사’ 프로포폴…‘꿀잠’ 유도하는 마취제
이 두 사건의 중심에 있는 약물은 바로 ‘프로포폴’이다. 하얀 색깔 때문에 일명 ‘우유주사’로 불리지만, 사실 우유와는 전혀 무관하다. 페놀계 화합물로서 실온에서 물에 잘 녹지 않아, 대두유(콩), 난황레시틴(계란 노른자), 글리세롤 등의 용매와 섞어 사용한다. 따라서 콩, 계란에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은 주의해야 한다.
<사진=로이터> |
프로포폴은 대뇌의 GABA 수용체에 작용해 ‘억제성 신경전달’을 항진시키고, NMDA 수용체 활성을 억제한다. 쉽게 말하면 결국 대뇌의 기능을 저하시켜 수면을 유도한다는 얘기다. 불면증 치료를 위해 사용하는 수면제와 본질은 비슷하지만, 엄연히 사용 목적은 의료용 ‘마취제’다.
정맥으로 투여하는 주사제이며, 마취 효과가 나타나는 시간과 지속 시간이 매우 짧다. 깨어날 때 구토, 구역질 등의 부작용이 적어 개원가에서 통증이 심하지 않은 소규모의 수술이나 검진에 환자 안정의 목적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반복적으로 투여하는 경우 마약과 같은 중독 증세가 나타나게 되고, 오남용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면서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2011년 2월 프로포폴을 전문의약품에서 마약류인 향정신성의약품으로 지정했다.
체내에 축적되지 않는 프로포폴은 일반인들이 환각 효과로 착각할 정도로 마취에서 깨어날 때 개운한 느낌을 준다. 순간적으로 폭발하는 쾌감, 존재하지 않는 냄새를 느끼는 등 병적인 환각 증세와 달리 짧은 시간 자고 일어났지만, 피로회복이 되는 듯한 상쾌한 느낌을 받는 것이다.
이런 기분을 느끼기 위해 불면증이나 우울증, 스트레스가 많은 직업종사자 중 프로포폴에 중독된 사람이 많다. 그러나 반복 투여하다 보면 내성이 생기게 되고, 원하는 효과를 보기 위해 많은 양이 투약되면서 사고가 발생하게 된다.
프로포폴은 약물 자체가 ‘무호흡’을 유발하는 빈도가 높으며, 정량 투여 시 무호흡 지속 시간은 30초에서 최대 3분이다. 그 이상 숨을 쉬지 못하면 급격한 저혈압, 심혈관 기능을 저하시켜 사망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실례로 지난해 거제 한 병원의 의사가 프로포폴을 과다 투여해 환자가 숨지자, 시신을 바다에 버린 사건이 발생해 큰 충격에 휩싸인 바 있다.
◆ 마취제의 마약 변신…과다투여 땐 사망 사고
현재 당국은 음성적으로 공급하는 일부 의사와 불법인 줄 알면서 투약하는 수요자 처벌에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프로포폴의 중독과 오남용의 근본적인 문제는 부실한 내부 관리 시스템에 있다.
특히 사용하고 남은 마약류 관리가 허술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는 규정상 잔여마약류를 재사용하지 못한다. 폐기 처리 과정은 남은 약을 한꺼번에 모아서 병원에서 자체 폐기한다. 타부서(원무팀, 진료팀 등) 2인 이상 입회하에 진행되며, 그 근거자료(사진 등)를 2년간 보관한다.
특히 신속히 폐기하는 것은 취급·관리 환경이 달라 일괄 적용이 어려우나, 자체 기준에 따라 2주를 넘지 않는 기간 내에 폐기하는 것을 권고하고 있다. 바꿔 말하면 사실상 주사제 엠플(주사액이 든 작은 병) 개봉 후 남은 약을 즉시 폐기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프로포폴이 음성적인 수요를 맞출 수 있는 배경에는 ‘잔여마약류’가 있다. 프로포폴은 한 앰플당 200㎎이 들어있다. 보통 체중당 2㎎을 사용하는데, 50kg 여성의 경우 100㎎ 정도면 충분하다.
하지만 음성적인 유통을 위해 10개의 앰플을 20개의 주사기에 미리 넣어놓으면 두 배의 투여량을 만들 수 있다. 10명은 정상적인 처방, 10명에게는 불법적인 투약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 마약류 오남용 최선의 예방…‘관리시스템’ 마련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이달 초 ‘집단 패혈증’을 일으킨 강남의 M피부과 사건의 원인이 프로포폴 주사제의 오염으로 밝혀졌다.
이 병원은 프로포폴 엠플을 여러 개의 주사기에 넣은 뒤 약 60시간 동안 고장 난 냉장고에 보관했다. 계란, 콩 등의 성분이 섞여있는 프로포폴은 변질의 가능성이 높아 사용 직전 개봉하는 것이 바람직한데, M피부과는 미리 개봉해 수십개의 주사기에 나눠놓은 것이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해당 사건에서 주사제의 오염보다 엠플 개봉 과정, 주사기에 넣어놓은 용량, 투여 받은 환자의 치료 목적 등 프로포폴의 불법적인 사용 여부를 중점적으로 수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처럼 프로포폴은 누가, 언제,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따라서 마약류처럼 유통될 수도 합당한 의료목적에 사용될 수 있는 ‘양날의 검’과 같은 약물이다. 따라서 프로포폴 오남용을 원천적으로 예방하기 위해서는 당국의 강력한 관리시스템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
urim@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