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장벽 곳곳에 세워지면서 할리 데이비드슨 사례 속출
[뉴욕=뉴스핌] 황숙혜 특파원 = 이른바 세계화(Globalization)를 근간으로 한 지구촌 경제에 로컬라이징(Localizing, 현지화)이라는 새로운 기류가 자리잡고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를 계기로 흔들리기 시작한 세계화 시스템이 트럼프 행정부의 무역 전면전을 도화선으로 무너져 내리고 있다는 진단이다.
할리 데이비드슨 [사진=블룸버그] |
EU의 보복 관세를 빌미로 미국 생산 라인의 해외 이전 계획을 밝힌 오토바이 업체 할리 데이비드슨의 사례는 시작일 뿐, 다국적 기업들의 현지화가 확산되면서 기존의 공급망이 뿌리까지 뒤집힐 것이라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27일(현지시각) 주요 외신에 따르면 유럽 항공기 제조업체 에어버스는 영국의 EU 탈퇴에 따른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 일부 생산 라인을 유럽 다른 지역으로 옮겨야 하는 상황을 맞게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캐나다의 항공기 및 열차 제조업체인 봄바디어 역시 미국의 대규모 관세 시행에 따라 현지 항공기 조립 라인을 미국 앨라배마로 이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글로벌 경제의 세계화 이전에 기업들은 판매 시장에서 제품을 직접 생산했다. 수출국의 관세 부담을 떠안지 않으려는 대응이었다.
하지만 1965년 미국과 캐나다의 자동차 협정은 양국 자동차 산업을 사실상 하나로 뭉쳤고, 이후 주요국 사이에 연이은 자유무역협정(NAFTA) 체결과 2001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은 기존의 거대한 경제 질서를 구축했다.
미국에서 생산된 뒤 중국에 수출되는 독일 폭스바겐이나 중국과 대만에서 조립되는 애플의 아이폰은 세계화 경제의 단면이다.
다국적 기업들은 인건비부터 생산 원가와 물류 및 유통까지 각종 비용을 축소하며 쏠쏠한 반사이익을 챙겼지만 미국이 촉발시킨 무역 마찰에 관세 장벽이 곳곳에 세워지면서 상황은 크게 바뀌고 있다.
이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대규모 관세를 앞세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보호주의 정책이 제조업 부활을 겨냥한 것이지만 예상 밖의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뿐 아니라 유럽과 아시아 기업들까지 할리 데이비드슨과 같은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제너럴 일렉트릭(GE)는 세계화의 균열이 날로 뚜렷해지고 있어 제품 생산의 현지화 전략을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인도 현지의 기관차 제조에 2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한 것은 이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원재료를 수입해 보일러 부품을 생산, 국내외 고객 기업들에게 판매하는 클리블랜트의 베켓 가스는 트럼프 행정부의 25% 철강 관세로 인해 수출 시장에서 경쟁력을 상실할 위기다.
대규모 관세가 제품 원가를 끌어올렸고, 이를 반영해 수출했다가는 멕시코를 포함한 해외 현지 경쟁사들에게 고객을 뺏길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회사 측은 가격 경쟁력 확보와 원가 상승에 따른 충격을 피하기 위해 생산 라인을 해외 시장으로 옮길 계획이라고 밝혔다.
세계화 체제 속에 구축된 공급망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가능성은 낮다. 하지만 무역 마찰이 진정되지 않을 경우 ‘로컬라이징’이라는 새로운 시스템이 지구촌 경제에 뿌리 내릴 것이라는 데 석학들과 기업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higrac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