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사법농단' 관련 압수수색 영장 90% 기각…사유도 '가지가지'
검찰 등 "이해하기 어렵다" 반발…'제 식구 감싸기' 논란
[서울=뉴스핌] 이보람 기자 = 사법부가 압수수색 영장기각이라는 수단으로 검찰의 '사법농단' 의혹 수사를 방해하고 있다는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17일 검찰 등에 따르면 검찰의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가 시작된 6월 이후 최근까지 검찰이 청구한 200여 건 넘는 압수수색 영장 가운데 180건 넘게 기각 결정을 내렸다. 기각률이 90%에 가까운 셈이다.
법원이 제시한 개별 압수수색 기각 사유도 다양하다.
서울중앙지검 /김학선 기자 yooksa@ |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지난 13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차명휴대전화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했다. '휴대전화 압수로 인한 기본권 제한의 정도를 등을 고려하면 현 단계에서 휴대전화에 대한 압수수색의 필요성 내지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이를 두고 한 시사평론가는 "'차명폰'이라는 것 자체가 불법인데, 고위 법관이 차명폰을 사용했다는 의혹이 이는 상황에서 이를 확인하기 위한 검찰의 증거확보시도를 기본권 침해를 이유로 기각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법원이 관련 자료가 남아있을 가능성이 없다고 예단한 경우도 있었다. 검찰이 법원행정처가 일선 법원의 예산을 빼돌려 '비자금'을 조성한 정황을 포착하고 이를 확인하기 위해 박병대 당시 법원행정처장 등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다. 그러나 법원은 "자료가 남아있을 개연성이 희박하다"며 이를 기각했다.
사건의 핵심 증거가 될 수 있는 문건들이 '재판의 본질'을 침해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 압수수색 영장이 기각되기도 했다. 법원은 이달 초 대법원 수석·선임재판연구관을 지낸 유해용(52·사법연수원 19기) 변호사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하면서 "재판자료를 반출한 것은 대법원 입장에서 매우 부적절한 행위이나 죄가 되지 않는다"며 "이를 수사기관이 취득하는 것은 재판의 본질적 부분을 침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이에 "관련 자료들은 수사 진행 중인 범죄의 '증거물'이라며 "재판의 본질적 부분은 이미 불법 반출됐고 수사는 그 진실과 책임소재를 가리는 것인데 무조건 수사를 막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고 강도높게 반발했다.
결국 두 차례에 걸친 유 변호사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 기각 이후 유 변호사는 관련 자료들을 모두 파쇄, 유 변호사는 재판자료 불법 반출에 이어 파쇄에 대해서도 검찰 조사를 받게 됐다.
통상적으로 압수수색 영장 반려는 흔치 않은 경우인 데다 사법농단 사건 관련한 압수수색 영장만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로 잇따라 기각돼다 보니, 검찰의 반발이 거센 것은 물론 세간의 시선도 곱지 않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사법부가 수사 대상을 법관으로 하는 특정 사안에 대해서만 구속영장도 아닌 압수수색 영장을 계속 기각하고 있어 '제 식구 감싸기'라는 논란이 불가피하다"며 "의도적으로 수사를 방해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고 평가했다.
brlee19@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