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KM갤러리 올해 첫 전시 백현진 개인전
'노동요:흙과 매트리스와 물결', 3월 31일까지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백현진(47)의 이름은 다양한 곳에서 만날 수 있다. TV와 극장, 갤러리나 미술관, 때로는 홍대 앞 공연장에도 그의 이름이 등장한다. 화가로, 설치미술가로, 행위예술, 그리고 음악가와 배우 감독, 그래픽 디자이너까지. 백현진은 대중예술과 순수예술을 오가며 부단하게 자신을 표현하고 있다.
PKM갤러리는 올해 첫 전시로 백현진 작가를 내세웠다. 박경미 대표는 백현진의 개인전을 기획한 이유에 대해 "이번 시즌과 잘 어울릴 거라고 생각했다. 미술과 음악, 퍼포먼스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작업하는 박 작가의 활동이 당대 미술계와 잘 맞아떨어진 부분이 있다"고 소개했다.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PKM갤러리에서 만난 백현진 작가 2019.02.14 89hklee@newspim.com |
이번 전시를 위해 백현진은 60여 점의 설치작품과 퍼포먼스 '뮤지컬:영원한 봄'을 준비했다. 전시 개막을 하루 앞둔 14일 PKM갤러리에서 만난 백현진 작가는 이번 전시의 제목인 '노동요:흙과 매트리스와 물결'에 대해 설명했다. 언뜻 봐도 나열된 단어의 상관관계를 쉽게 파악하기 힘들다. 백 작가는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과정을 거치면서 제목이 결정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말을 잘 못해서 그림으로, 노래로 표현한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12월 어느 겨울 밤, 머릿속에 떠오른 이미지가 있어요. 흙바람 그리고 아지랑이, 흙먼지가 뒤섞인 공터의 매트리스요. 그 이미지가 반복되고 변형되는 상황이 그려졌어요. 그렇게 엉망진창인 과정을 통해 흙, 매트리스, 물결을 가져왔고 이를 감쌀 바구니로 '노동요'가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노동요의 사전적 정의는 '적막함을 벗어나 일의 능률을 올리기 위해 부르는 노래'인데, 저는 적막함을 유지하면서 일하는 편이에요. 이 의미를 직관적으로 가져왔죠."
백현진은 자기 작품을 설명하는 것을 지양한다. 작가가 작품을 설명하는 건 보는 이들 생각을 제한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보는 이 저마다의 취향과 생각을 존중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그래서 자신의 경력을 프리젠테이션하는 방식도 따라가지 않았다. 그는 "하기 싫어서가 아니다. 말로는 안 돼서다"고 말했다.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PKM갤러리에서 만난 백현진 작가 2019.02.14 89hklee@newspim.com |
"'제 작업은 OO입니다'라고 소개하는 걸 지향하지 않아요. 작가 생활을 오래했는데, 보통 작가들은 프리젠테이션하며 커리어를 쌓습니다. 저는 그러지 않은 편이에요. 제도와 어긋난 쪽이죠. 운좋게도 프리젠테이션을 하지 않고도 일할 수 있었어요. 제 작품에 대해 말하기 싫다기보다 말로 잘 안되니 노래도 부르고 그림으로 표현하고 영화로도 만들어보고 그런 것 같아요. 말로 하면 제 작업의 해상도가 떨어지거든요."
이런 자유로움은 백 작가가 다양한 예술활동으로 이어진다. 1994년 밴드 어어부프로젝트로 대중 앞에 뮤지션의 모습으로 등장한 그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에서 음악 감독도 맡았다. 친누나의 영향으로 최정화 작가 등 현재 유명해진 다수의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미술계에 입문했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 '북촌방향'과 장률 감독의 '경주', 최근 드라마 '푸른 달 붉은 해'에서 굵직한 캐릭터로 대중의 눈도장도 찍었다. 그는 "미술과 음악, 그리고 연기활동이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한다"고 말했다. 그가 좋아서 하는 일인 음악과 미술, 연기는 알고보면 하나로 연결돼 있다.
"뮤지션, 미술가, 연기자는 다 다르지만 일종의 메커니즘은 같이 돌아가는 것 같아요. 서로 영향을 많이 주고 받죠. 즉흥적으로 직관적인 과정으로 일하는 방식이 뮤지션, 미술가, 연기자일 때 그대로 보여져요. 저는 연기할 때 대사의 내용을 제 방식으로 바꾸거든요. 시나리오가 있는 상황에서 즉흥이 일어나는 거예요. 그래서 사람들이 제 연기를 두고 '못 보던 연기'라 하는 거겠죠."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개인전 '노동요:흙과 매트리스와 물결'이 펼쳐지는 PKM갤러리에서 퍼포먼스 '뮤지컬:영원한 봄'을 선보이는 백현진 작가. 2019.02.14 89hklee@newspim.com |
2017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 4인이었던 백현진. 크게 주목받은 시점이지만 '올해의 작가' 후보에 올랐던 당시를 전후해 크게 달라진 건 없다고 했다. 다만, 일함에 있어 '운신의 폭'이 넓어졌음은 느낀다고. 그는 "일하기가 편해진 거 같다. 사실 딱 그 정도"라며 웃었다.
"체감하기에 크게 달라진 건 없어요. 그런 소문은 있죠. 제 작업을 꼼꼼히 보지 않던 사람들이 이젠 집중한다든지, 혹은 미술신에서 인정받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걸 들은 적도 있고요. 권위있는 미술일수록 전시, 경력 같은 것들이 일할 때 편한 건 사실이에요. 그런데 모든 일을 하다보면 운신의 폭이 생겨요. 본인이 크게 무리만 하지 않는다면요."
화가 백현진을 만날 수 있는 자리는 15일부터 3월 31일까지 PKM갤러리에서 이어진다.
89hkle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