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숙혜의 월가 이야기
[뉴욕=뉴스핌] 황숙혜 특파원 = 미국과 중국의 무역 냉전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월가 투자자들 사이에 경기 침체와 베어마켓 경고가 꼬리를 물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중국과 무역 협상을 재개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밝혔고, 중국 역시 물러서지 않겠다는 입장을 재차 확인하는 상황.
뉴욕증권거래소의 한 트레이더 [사진=로이터 뉴스핌] |
월가의 투자자들은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하는 움직임이다. 변동성이 낮은 종목을 집중적으로 매입하는 상장지수펀드(ETF)와 옵션을 이용해 주가 급락 시 손실 리스크를 헤지하는 상품에 뭉칫돈이 밀려들고 있다.
30여년 전 기록적인 주가 폭락을 연출했던 블랙먼데이 직전의 전략이 최근 인기를 얻고 있다는 지적이다.
28일(현지시각) 시장조사 업체 팩트셋에 따르면 인베스코 S&P 저변동성 ETF와 아이셰어 에지 MSCI 미니 볼 USA ETF에 올들어 64억달러에 달하는 자금이 유입됐다.
옵션 거래를 통해 리스크를 회피하는 구조의 상품에도 지난 4월 이후 3억6400만달러의 ‘사자’가 몰렸다.
저비용의 지수 ETF에 비해 운용 보수가 무려 26배에 이른다는 점을 감안할 때 최근 자금 유입은 월가의 화제다.
이와 별도로 펀드 평가 업체 모닝스타에 따르면 주식시장 혼란에 손실 리스크를 헤지하는 데 초점을 둔 상품에 약 100억달러의 자금이 홍수를 이뤘다.
투자자들의 매입 열기가 달아오른 가운데 인베스코의 ETF는 최근 1년 사이 18%의 수익률을 기록, S&P500 지수 상승폭인 5.8%를 크게 웃도는 성적을 거뒀다.
최근 유동성 움직임과 관련,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투자자들이 지난 1987년 블랙먼데이 직전과 흡사한 전략을 취하고 있다고 전했다.
관세 전면전 재개에도 뉴욕증시가 비교적 강한 저항력을 보이고 있지만 투자자들은 커다란 불안감을 내비치고 있다는 얘기다.
투자은행(IB) 업계의 연이은 경고 역시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이날 모건 스탠리는 보고서를 내고 미국 경제 전망이 꺾이고 있다고 주장하고, 무역 마찰과 경제 지표 둔화가 기업 수익성과 성장률에 상당한 위협이라고 강조했다.
모건 스탠리는 최근 미국이 모든 중국 수입품에 관세를 적용할 경우 글로벌 경제가 침체를 맞을 것이라고 경고한 데 이어 또 한 차례 경고음을 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하버드 대학의 카멘 레인하트 이코노미스트는 노무라 주최로 싱가포르에서 열린 컨퍼런스에서 “중국의 경기 둔화가 더 큰 폭으로 장기화될 경우 글로벌 경제가 악몽에 빠져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밖에 CNBC에 따르면 월가의 기술적 분석가들은 뉴욕증시의 베어마켓 진입 가능성을 제시했다. 주요 지수가 고점 대비 20% 급락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한편 미국과 중국의 무역 협상 재개가 날로 불투명해지는 한편 신경전이 격화되는 양상이다. 전날 트럼프 대통령은 새로운 관세 도입을 강행할 뜻을 내비쳤고, 이날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의 정책자는 희토류를 폭탄 관세에 대한 보복 카드로 동원할 가능성을 제시했다.
higrac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