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링너 "매우 짧고 모호해 구체적인 내용 부족"
[서울=뉴스핌] 이영태 기자 = 지난 20일 출범한 조 바이든 행정부는 북핵 문제와 관련해 보다 포괄적이고 잘 짜여진 합의를 목표로 하는 새로운 대북정책을 수립해야 한다는 미국 전문가들의 지적이 나왔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때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에서 이뤄진 합의를 기준으로 삼아선 곤란하다는 설명이다.
미국 중앙정보국(CIA) 출신 한반도 전문가인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21일(현지시각)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정책이 전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총비서가 2018년 합의한 싱가포르 공동선언에 기초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사진=로이터 뉴스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2일 공동성명에 서명한 뒤 악수하고 있다. |
클링너 선임연구원은 "바이든 행정부는 구 소련과 미국 간 군축협정들처럼 매우 상세하고 강력한 검증요구를 포함한 포괄적이고 잘 구성된 합의를 목표로 해야 한다"며 "앞선 미북 간 (핵)합의들은 이런 면에서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문재인 정부는 바이든 행정부가 싱가포르 합의를 기초로 대북 정책을 세우길 원하고 있지만, 싱가포르 합의는 비핵화 조치에 대해 매우 짧고 모호한 언급을 하는데 그쳤다며, 결격 사유가 많아 실패한 남북 기본합의서나 이행 관련 부속합의서, 6자회담의 합의 내용보다도 구체적이지 않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무엇을 감축하고 어떻게 철저히 검증하는지를 상세히 밝힌 보통 100여 쪽에 달하는 미국과 구소련 간의 합의와 달리 싱가포르 합의 후 2년 반 이상 지난 지금까지도 한반도 비핵화 등의 정의조차 미북이 합의하지 못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 분석관 출신인 수 김(Soo Kim) 랜드연구소 정책분석관도 RFA에 싱가포르 합의는 거의 실질적 내용(substance)이 없었다고 꼬집었다.
김 분석관은 "싱가포르 합의에 기반한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북한이 비핵화나 역내 긴장완화에 대한 입장 변화를 보이지 않으면서 오히려 미국이 싱가포르 합의를 위반했다는 억지 주장으로 미국에 책임을 전가할 빌미를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을 지낸 올리 하이노넨 스팀슨센터 특별연구원은 핵탄두 소형화나 핵추진잠수함 등 북한이 최근 8차 당대회에서 발표한 핵무력 증강 계획은 많은 시간과 자원이 필요한 사업이라며 바이든 행정부가 서둘러 대북 협상에 나설 필요는 없다고 주장했다.
다만 북한과 막후에서 앞선 북미협상의 실패 원인들에 대한 논의를 통해 서로의 입장을 이해할 필요는 있다고 덧붙였다.
1994년 제네바 합의 당시 미국 측 수석대표였던 로버트 갈루치 전 미국 국무부 북핵특사는 싱가포르 합의가 북미관계 개선, 북한의 장거리탄도미사일 시험과 핵실험 중단에 대한 대규모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이라는 암묵적 합의 등 북한과의 관여를 지속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 데 참고할 수는 있다고 말했다.
갈루치 전 특사는 그러나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외교협상의 길잡이 혹은 청사진으로 삼아서는 안될 이유들이 너무도 많다고 지적했다.
반면 미국 국방장관실 선임보좌관을 지낸 프랭크 엄(Frank Aum) 미국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바이든 행정부가 싱가포르 합의 자체나 원칙을 북한에 재확인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싱가포르 합의는 상호성(reciprocity)에 가치를 두고 평화와 비핵화를 동시에 추구하는 향후 북미관계의 향방을 잡을 단단한 기초를 제공한다는 주장이다.
그 이유에 대해선 "싱가포르 합의에서 북한 스스로 단계적이고 동시적인(phased and synchronous) 비핵화 과정을 지지한다고 밝혔으며 미국의 조치에 대한 상응조치(corresponding measures)라는 용어를 사용했기 때문"이라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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