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개혁 명분이 기업 의사결정 주저하는 이유가 되서는 안돼
기업인이 결정 주저하고 실패 두려워하면 생존과 성장 담보할 수 없어
[서울=뉴스핌] 이강혁 산업1부장 = 4만명 직접채용, 3만명 직·간접 일자리 창출.
삼성의 초대형 청년일자리 청사진이 지난 14일 나왔다. 요즘같은 '취업 빙하기'에 한 그룹사에 3년간 7만명의 일자리라니. 놀랍다. 일자리 절벽 앞에서 좌절감이 극에 달한 청년들에게는 희망의 불씨를 당길 소식이다. 이번 결정이 현대차, SK, LG 등 재계 곳곳으로 번져 나아가길 기대한다.
삼성이 제시한 일자리 청사진이 반가운만큼 기업들이 더 좋은 일터, 더 좋은 일자리를 유지하는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 코로나19 팬데믹 여파로 경영상 어려움을 겪는 기업은 늘어나고 고용의 질은 그만큼 더 나빠진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더 중요한 것은 경영을 위해 내리는 기업의 의사결정이다. 기업의 생존도, 성장도, 이에 따른 일자리도 결국 여기부터 출발이다. 김부겸 국무총리가 '과감한 결단'이라며 이재용 부회장과 삼성 경영진에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부분이 있다.
[서울=뉴스핌] 이강혁 기자 = 2021.09.15 ikh6658@newspim.com |
하지만 시선을 돌려 현실을 돌아보면 먹구름 투성이다. 지나친 재벌 개혁 프레임에 갖힌 사회 곳곳 색안경은 여전하고 기업인이 경영을 위해 내리는 결정마저 곧 사법리스크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기 일쑤다.
한창 재판이 진행 중인 조대식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의 900억원대 배임혐의 역시 기업인들 사이에서는 우려를 키우는 사례다. 물론 유무죄는 재판부에서 판단할 영역이다. 다만 소신껏 임직원의 일터를 지켜낸 그의 역할과 의사결정마저 폄하되는 것은 아닌지 기업인들의 답답함은 고민해볼 문제다.
조 의장은 SKC 이사회 의장이었던 2015년 자본잠식 상태에 빠진 자회사 SK텔레시스의 유상증자에 700억원을 투자하도록 해 SKC에 손해를 입힌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지주회사인 SK 재무팀장으로 있던 2012년에도 재무 상태가 좋지 않은 SK텔레시스의 유상증자에 SKC가 199억원을 투자하도록 한 혐의도 받는다.
유상증자 과정에 문제가 있었느냐, 누가 혜택을 봤느냐 등의 재판 쟁점들을 차치하고, 결과적으로 이 유상증자를 통해 부실을 털어낸 SK텔레시스는 이후 건실한 회사로 거듭났다. 임직원의 일자리는 유지됐고 모회사인 SKC도 효과를 톡톡히 봤다.
만약 당시 유상증자의 결정이 내려지지 않았더라면. 만약 자회사나 손자회사가 부실한데 그걸 모회사가 책임지지 않고 부실하게 그냥 놔뒀다면.
이후 벌어졌을지 모를 대량 실직사태와 협력사 연쇄도산은 불보듯 뻔하다. 이런 사태는 누가 책임져야 할까.
정상적인 유상증자 결정이라면 설사 실패한 결과가 되더라도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하물며 부도위기에 몰린 자회사를 어렵게 살려놨더니 이제는 배임이라고 한다. 볼멘 소리가 나올법도 하다. 이래서 누가 소신껏 경영활동을 하겠는가.
오히려 기업인이 실패가 두려워 결정을 주저하면 그것이 더 부끄럽고 참담한 일이다.
"과감한 결단을 해주시고 뜻깊은 자리도 만들어 주셨다. 이재용 부회장님을 비롯한 삼성 관계자 여러분께 대단히 감사드린다".
김부겸 총리의 인사말이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총수의 부재가 그동안 기업의 소극적인 의사결정을 부추긴 것은 아닌지. 사회에 기여하겠다는 기업인과 기업의 진정성마저 가로막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밥벌이의 신성함을 배워나갈 청년들이 일자리 절벽을 마주한 것이 결단의 부재가 출발은 아닌지.
사익추구를 위해 폭주한다면 엄격한 법으로 막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털어서 먼지 안나겠느냐의 접근은 곤란하다. 경영상 정당한 의사결정에 부담을 주는 배임과 같은 법적용은 한번쯤 생각해볼 문제다.
성패를 떠나 기업의 결단은 존중되야 한다. 기회와 리스크 모두를 감안한 결정은 해당 기업이 가장 전문가다. 결정을 주저하고 실패를 두려워하는 기업인이 많아지면 기업의 생존과 성장, 우리 청년들의 양질의 일자리 모두 담보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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