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소장은 검사가 피고인을 재판에 넘기면서 법원에 제출하는 문서로, 검찰이 수개월에서 길게는 수년간 수사한 결과물이 담긴 요약본이다. 수사 중인 사건의 혐의 사실은 공개가 원칙적으로 금지되지만, 모든 형사재판은 공개로 진행되는 만큼 피고인 신분으로 법정에 서게 되면 공소사실과 증거가 모두 공개된다.
최근 서초동에서는 이성윤 서울고검장의 공소장 유출 사건이 단연 화두다. 이전까지 공소장 공개가 윤리적 차원의 문제였다면 이번 사건은 '유출'에 따른 형사적 책임에 대한 문제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이 사건을 공무상 비밀누설죄로 수사하고 있는데 검찰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수도권 검찰청 소속의 한 검사는 검찰 내부망인 이프로스에 "공무상 비밀누설죄는 기밀 그 자체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비밀 누설에 의해 위협받는 국가의 기능을 보호하기 위한 것인데 기소 이후에 공소장 내용이 일부 언론에 보도되었다고 해서 검찰과 법원의 기능 중 무엇이 훼손되는지 의문"이라고 정면으로 비판했다.
고홍주 사회문화부 기자 |
미국은 법원이 비공개를 하지 않는 사례를 제외하고 대부분 기소와 동시에 공소장이 공개된다. 우리나라도 참여정부 이래로 국민적 관심사가 높은 사건의 공소장이 법원에 제출되면 국회를 통한 공개가 관행처럼 자리 잡았다. 2004년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국민의 알권리 신장을 위해 비공개 할 수 있는 정보의 요건을 까다롭게 했고, 그의 일환으로 공소장도 법무부 장관의 허가를 거쳐 공개하도록 했다. '국정농단' 사건이나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건의 공소장은 모두 이렇게 공개됐다.
이렇게 15년 넘게 어느 누구도 문제 삼지 않았던 '피고인의 방어권'은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이후로 새롭게 등장했다. 첫 재판 이전에 공소장이 공개되면 법관에게 예단을 줄 수 있어 부적절하다는 논리다. 하지만 이 논리대로라면 첫 재판이 지난 이후는 물론이고 1심 판결이 끝난 이후에도, 2심 판결이 끝난 이후에도 범죄사실이 공개되어서는 안 된다. 형사재판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보도하는 것 자체가 아직 확정되지 않은 사실에 대해 특정 방향으로 여론이 조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순 알권리보다는 '조금 이따 알아도 될 권리'가 어떻겠느냐는 의견도 있다."
추 전 장관이 취임 40일 기념 기자 간담회에서 한 얘기다.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사건 공소장을 국회에 제출하지 않겠다고 한 뒤 비판 여론이 들끓자 그는 '조금 이따 알아도 될 권리'를 말했다. 하지만 추 전 장관은 더불어민주당 대표 시절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주장하면서 국정농단 사건 공범들의 공소장을 인용했다. 최근 논란에 대해 '첫 재판 전 이전에 공소장을 공개해서는 안 된다는 게 원칙'이라는 입장을 밝힌 박범계 장관 역시 국회의원 시절에는 이의 제기하지 않았다. 명확한 기준 없이 그때는 맞고 지금은 다르다 식의 논리는 '내로남불'이라는 비판을 자초할 수밖에 없다.
공소의 첫 번째 사전적 뜻은 '공적으로 하소연하는 것'이다. 검사의 기소가 사인 대 사인의 문제라면 사생활 보호를 위해 정보 공개는 엄격히 제한돼야 하지만 검사가 국가를 대신해 피고인의 죄를 묻는 것은 사인 대 사인의 문제가 아니다. 게다가 사회적 논란이 되는 공적 인물에 대한 기소라면 알권리에 더 빨리 알권리와 더 늦게 알권리는 존재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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