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고인원 기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미국 달러화로만 원유를 결제하도록 한 이른바 '페트로달러' 체제가 붕괴되며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달러의 패권이 약화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이 같은 주장에 힘을 실은 건 중국과 사우디아라비아가 원유 대금의 위안화 결제를 논의 중이라는 언론의 보도다.
15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은 소식통들을 인용해 사우디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의 선물거래에 위안화 가격 표시제인 '페트로위안'을 적용하는 게 논의되고 있다고 전했다.
미 달러화 [사진=로이터 뉴스핌] |
◆ 흔들리는 미·사우디 우방 vs 갈수록 끈끈해지는 중·사우디
위안화로 원유를 결제한다는 논의가 새로운 건 아니다. 앞서 2016년에도 사우디가 위안화로 원유 결제 대금을 받는다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가치가 불안정한 위안화를 받으면 사우디 경제에 이롭지 않다는 지적 등이 제기되며 논의는 불발에 그쳤다.
하지만 소식통들은 이번에는 다르다며 그 이유 중 하나로 사우디와 중국 간 관계가 한층 끈끈해진 반면 미국과의 관계에는 금이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이 사우디의 예멘 내전 개입을 지지하지 않고, 아프가니스탄에서 갑자기 철군해 버리는 등의 행동으로 사우디 내에서는 미국에 대한 불만이 이미 팽배한 상황이었다. 이 가운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원유 시장의 공급 부족이 심화되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이란 핵 합의 복원에 나서며 양국 간 갈등의 수위도 높아지고 있다.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의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불만도 양국 간 갈등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2020년 대선 과정에서 빈살만 왕세자가 사우디 출신 언론인 카슈끄지를 살해한 것을 비판했는데, 이에 불만을 품은 빈살만 왕세자가 지난달 바이든 대통령의 통화 요청을 거부할 정도로 양국 관계가 악화된 상황이다.
[서울=뉴스핌] 사우디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가 18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야마마궁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공식회담을 하고 있다.[사진=청와대 SNS] 2022.01.19 photo@newspim.com |
반면 중국과 사우디의 관계는 갈수록 끈끈해지고 있다. 중국의 사우디산 석유 수입은 2021년 기준 일일 176만배럴로 늘어 중국이 명실공히 사우디산 석유 최대 수입국으로 부상했다. 또 중국은 사우디의 무기 개발, 원자력 프로그램 등에도 적응 참여하며 관계를 공고히 했다.
사우디가 실제로 위안화를 석유 대금으로 인정한다면 달러화의 기축통화 지위도 흔들릴 수 밖에 없다. 석유 등 주요 상품이 달러로 거래됨으로써 미국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가 유지돼 왔기 때문이다. 여타 석유 수출국이 사우디의 뒤를 이을 가능성도 있다.
워싱턴 소재 국제안보분석연구소의 갤 루프트 이코노미스트는 "미 달러로 거래되는 글로벌 원자재 시장은 달러의 기축 통화 지위를 지탱해주는 일종의 근간"이라며 사우디의 이탈로 하나의 벽돌이 빠지면 벽 전체가 무너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 대러 제재 목도한 각국 "미 달러화 외 안전자산 물색"
글로벌 투자은행 모간스탠리의 제임스 로드 신흥시장 전략가는 이와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우크라이나 사태가 달러의 패권을 흔들 가능성을 언급했다.
그는 우크라 침공에 대한 댓가로 러시아의 해외 자산이 동결되는 것을 목도한 각국이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미 달러화나 미국채 외의 안전 자산을 물색하고 자산 다변화에 나서며 ▲(이번 제재가 미국과 동맹국의 공동 행동이란 점에서) 다른 국가와의 전략적 동맹 관계를 강화 ▲해외 자산을 국내로 이전하려는 움직임을 본격화 할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 달러화와 중국 위안화 [사진=블룸버그] |
특히 이번 사태로 미국과 적대적인 관계에 있는 국가들이 미 달러가 더 이상 안전자산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미국 외의 경제 강국과 전략적 동맹을 강화하고 미 달러화 기반의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 대체할 결제 시스템을 모색하고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중국의 위안화 국제결제시스템(CIPS)이나 경제 강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과의 관계 강화가 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또 각국 중앙은행이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달러화 중심의 외환보유고를 다변화하려는 과정에서 위안화의 비중이 늘며 2030년까지 글로벌 외환보유고에서 위안화 비중이 전체의 5~10% 수준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또 해외에 보유하고 있는 자산을 국내 관할권 내로 옮기려는 수요도 커질 것으로 봤는데, 그 방법 중 하나로 실물로 된 금을 구매해 이를 국내에 보관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그는 달러화의 패권이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위협당하고는 있지만 당장 세계 기축통화로의 지위를 흔들 정도는 아니라며 당분간은 달러가 기축통화의 지위를 유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koinwo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