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실적에도 철회..."재상장 계획 無"
[서울=뉴스핌] 신수용 기자 = 현대오일뱅크가 2012년, 2019년에 이어 세 번째로 IPO(기업공개) 계획을 철회했다. S-OIL의 주가 급락하는 등 국내·외 증시가 얼어붙어 기대했던 기업 가치를 평가받기 힘들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충남 서산시 현대오일뱅크 대산공장 내 차량용 고순도 수소 정제설비에서 수소 트레일러가 충전하고 있다. [사진=현대오일뱅크] |
22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오일뱅크는 지난 21일 공시를 통해 IPO 계획을 철회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 한국거래소에 상장 예비 심사 신청서를 제출한 이후 8개월 만이다.
현대오일뱅크는 지난 20일 이사회를 열고 IPO 철회 안건을 승인했다. 앞서 현대오일뱅크는 2021년 8월 KB증권과 NH투자증권, 크레디트스위스를 대표 주관사로 선정해 유가증권시장 입성을 본격 추진했다. 지난달 상장예비심사 승인까지 받으면서 오는 9~10월에 공모를 거쳐 상장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계획을 철회함으로써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상장 계획이 또 다시 무산된 데 더해 향후 재상장 시기를 가늠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현대오일뱅크 관계자는 "IPO 재도전에 대한 계획은 현재로선 논의된 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일각에선 이번 상장 철회가 예견된 수순이었다는 의견도 있다. 현대엔지니어링과 SK쉴더스 등 올해 코스피 입성을 추진하던 기업들도 증시 부진을 이유로 상장을 철회한 상황에서 현대오일뱅크가 굳이 상장할 이유가 없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초 3000대를 찍었던 코스피는 글로벌 인플레이션 심화와 금리 인상, 경기 불황 우려 등으로 최근 2300~2400대로 내려앉았다.
IPO 완주를 통해 재무구조를 개선, 신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자금을 조달하는 게 통상적인 절차다. 다만, 현대오일뱅크는 최근 국제 유가 상승과 정제 마진 급등에 힘입어 호실적 거두면서 어느 정도 자금력을 확보한 상태다.
현대오일뱅크는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 20조6066억 원, 영업이익 1조1424억 원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거뒀다.올해 1분기에도 연결기준 매출 7조2426억 원, 영업이익 7045억 원을 기록했다. 현대오일뱅크의 파생상품 자산을 포함한 현금성 자산은 약 4789억 원, 유동비율은 106.5%다.
현대오일뱅크 '2030 비전' [사진=현대오일뱅크] |
업계에선 경쟁사인 S-OIL의 시총이 11조 원대에서 최근 10조4800억 원대까지 떨어진 데다가 정유업에 대한 전망도 불투명해지고 있는 점을 들어 몸값이 낮아질 것이란 우려가 제기됐다. 현대오일뱅크의 기업가치는 8~10조 원으로 평가받았는데, 3년 전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영 석유사 아람코가 투자를 유치할 당시 몸값 9조 원과 유사한 수준이다.
업계 관계자는 "무리하게 상장을 추진했다가 오히려 기업가치를 떨어뜨릴 수도 있는 시기"라며 "자금 조달이 급하지 않은 지금과 같은 상황에선 상장에 따르는 득보다 공모가 예상만큼 흥행하지 않거나 기업가치가 낮게 판단받는 등 위험 요소가 더 많다"고 했다.
앞서 현대오일뱅크는 두 차례 상장을 추진했지만 각각 금융위기 확산과 실적 악화, 금융당국의 회계 감리 강화에 따른 상장 절차 지연 등의 이유로 무산됐다.
2011년 9월에는 정유업계 이익 지표로 꼽히는 정제 마진이 하락하는 등 업황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이듬해 상장 계획을 철회했다. 이어 2018년에는 회계 감리 이슈로 IPO가 무산됐고, 현대오일뱅크는 아람코와 상장을 전제로 프리IPO(상장 전 지분 매각)를 먼저 진행해 약 2조 원을 마련한 바 있다.
상장이 무산됨에 따라 현대오일뱅크는 투자 계획을 일부 수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오일뱅크는 내연기관차가 줄고 전기차, 수소차 시대가 성큼 다가온 만큼 정유사업의 매출 비중을 현재 85%에서 2030년 45%로 낮출 방침이다.
현대오일뱅크 관계자는 "비록 기업공개는 철회하기로 했지만 탄탄한 실적을 바탕으로 석유화학 소재와 바이오연료, 수소 사업 등 미래 사업에 대한 투자와 재무구조 개선 노력은 끊임없이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aaa22@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