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박서영 기자 = 국회가 잠잠해졌다. 연일 쏟아지던 폭우에 전국 곳곳에선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왔다. 수해 심각성을 느낀 국회가 '정쟁 올스톱'을 선언했다. 양평고속도로 논란부터 불체포특권 논쟁까지. 극에 달했던 여야 대립이 잠시 멈췄다.
각 상임위원회 일정들은 순연됐고 여야 원내대표는 당내 해외출장 자제령을 내렸다. 지도부는 너나할 것 없이 수해 지역을 찾아 봉사활동을 이어갔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방미 일정을 마치고 귀국해 곧바로 현장을 점검했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또한 오송 지하차도 및 곳곳의 피해 상황을 둘러봤다.
박서영 정치부 기자 |
기자는 지난 21일 김 대표의 경북 예천 수해 지역 방문을 동행했다. 수해복구 일손을 돕겠다며 봉사활동을 자처한 국민의힘 지도부를 따라 경북 예천군 감천면을 찾았다. 실제로 마주한 현장은 언론을 통해 접한 것보다 훨씬 처참했고 열악했다. 무너진 자재들은 진흙에 뒤엉켜 있었고 불어난 물에 농산물들이 떠내려갔다. 폭염 속, 복구 작업에 투입된 해병대원들과 자원봉사자들의 수고가 특히 눈에 띄었다.
빨간 조끼와 장화, 목에 두른 수건까지. 봉사활동을 위해 무장한 김 대표와 지도부가 삽을 들었다. 뜨거운 볕 아래서 묵묵히 진흙 속 잔가지들을 퍼다 날랐다. 김 대표는 중간 중간 "상황이 생각보다 훨씬 심각하네"라며 혼잣말을 뱉기도 했다. 민주당도 마찬가지로 수해 현장을 찾아 봉사활동을 이어갔다. 지난 25일 민주당 지도부는 충남 부여를 찾아 침수된 원예 비닐하우스 복구를 거들었다. 이 대표는 작업복 차림으로 썩은 포도나 수박을 솎아내는 일을 도왔다.
지난 한 주. 국가적 재난 앞에 국회는 한마음으로 수해복구에 전념했다. 집이 무너지고 살림이 떠내려간 흔적을 보며 여야는 대책 마련에 함께 머리를 맞댔다. 매번 정쟁과 고성이 오가던 국회가 오랜만에 하나의 목표를 향해 총력을 기울이는 모습이 낯설면서도 반가웠다. 수해가 지나고서도 여야가 '오늘만 같았으면' 하는 생각도 잠시 했다.
이제 다시 여야가 국회에서 마주한다. 피해 지원을 위한 입법을 논의하기 위해 환경노동위원회 개최와 수해 복구 TF(테스크포스)가 가동된다. 잠시 멈춰 섰던 정쟁의 그림자가 벌써부터 꿈틀거린다. 한 편에선 피해 복구를 위한 추가경정예산안(추경) 편성을 두고서 여야 신경전이 시작됐다. 수해 원인을 두고서도 4대강 보 해체 문제가 제기되는 등 다시금 네 탓 공방전이 벌어졌다.
정쟁 올스톱, 일주일 만에 다시 만난 여야에게 주어진 과제는 막중하다. 마지막까지 안전하고 조속하게 수해 복구가 이뤄질 수 있도록 실질적인 입법 논의가 뒤따라야 한다. 그 밖에도 정쟁 속에 한없이 표류 중인 민생법안들을 살펴야 한다. 다시 만난 여야가 재난 앞에 한마음 한뜻으로 달렸던 오늘의 순간들을 기억하기를 바란다. 21대 국회가 마지막까지 '정쟁 올스톱' 오늘만 같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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