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방보경 기자 = 전통제약사들이 가족 같은 분위기라는 건 옛말이다. 최근 전통제약사들이 연이은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일동제약을 시작으로 종근당바이오, 유유제약 등이 부서를 축소하고 직원들을 내보내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지형이 완전히 바뀌고 있다고 진단했다. 예전에는 공채 문화가 발달해서 신입을 책임지고 몇십년 동안 키우겠다는 인식이 강했다면, 경력 이직이 잦은 최근에는 회사가 어려운 상황에서 조직을 살려야겠다는 판단이 먼저라는 것. 근속연수가 유독 길었던 제약업계에서 '인력은 언제든지 대체될 수 있다'는 인식이 박힌 셈이다.
산업부 방보경 기자 |
근로자가 가족 구성원에서 이탈했으므로 업계의 근로 환경은 앞으로 더 열악해질 것으로 관측된다. 구조조정 첫 사례가 된 일동제약은 희망퇴직자들에게 9개월치 급여를 지급하고 최대한 많은 직원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유도했으나, 다른 회사들의 위로금은 그보다 훨씬 낮은 2~4개월분에 불과했다.
제약사들의 인건비 줄이기는 이미 징조가 있었다. 업계에 따르면 재작년과 작년 A사는 신입 영업사원의 연봉을 기존보다 600만원가량 삭감한 바 있다. 광고비 비중이 높다고 잘 알려진 회사다. 매출 상위권이던 A사가 코로나를 견디기 위해 내놓은 방안은 결국 인건비를 줄이는 것이었다.
구조조정 등 인건비를 절감하는 모습과 달리 제약사들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에 적극적이다. 올해 다양한 전통제약사들이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앞다퉈 내는 등 ESG 활동에 나서고 있다.
일각에서는 ESG 열풍에 대해 제약사들이 해외 진출을 노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선진국에서 ESG를 중요하게 간주하면서 일정 등급을 받지 못하는 업체와는 거래를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제약사들의 이러한 노력 덕분에 근로자 입장에서 일하기 좋은 환경이 조성됐다면 다행이다.
하지만 정작 근로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정치경제학자 홍기빈의 말마따나 ESG가 투자자, 기업, 평가기관, 관련 업계가 자기들끼리 자화자찬만 벌이는 '수영장 파티'라는 생각이 든다. 상반기 최고의 실적을 기록한 B사가 계약직 비중을 높이는 방식으로 사람을 뽑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이같은 우려는 더 커졌다.
제약바이오 사업이 미래 먹거리로 부상하면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에게 어필해야 한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관련 업계에서 각종 인증 제도나 수상, '역대 최대 실적' '주주가치 제고' 같은 타이틀을 따는 데 필사적인 이유다. ESG 경영 역시 중요한 척도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근로자들을 소외시키거나 부담을 전가시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ESG에는 '직원에 대한 처우나 상생' 역시 중요한 항목이다. 아무리 환경이나 기부를 많이 하고 그럴듯한 보고서를 공개해도 직원들이 빠진 기업은 'ESG 워싱'이라는 평가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ESG'가 위험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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