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초과학자·노벨상 석학 한목소리 비난
국회 예산 심의서 야권 R&D 예산 증액 예고
[세종=뉴스핌] 이경태 기자 = 그야말로 생존의 문제가 돼 버렸다. 과학기술 연구·개발(R&D) 예산 축소에 따른 과학기술계의 반발이 거세지는 이유다. 과학기술계는 연말까지 진행되는 국회의 예산 심의에 사활을 거는 분위기다.
◆ 국내 10만 기초과학자·노벨상 해외 석학, R&D 예산 중요성 강조
기획재정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달 말께 정부 예산안을 발표하면서 내년도 국가 R&D 예산을 25조9000억원으로 편성했다. 올해 31조1000억원 대비 5조2000억원(16.6%) 삭감된 수준이다. 기초연구 예산 역시 올해 대비 1537억원(6%) 줄었다.
당초 정부는 지난해 국가 R&D 예산을 첫 30조원대 이상 편성해 이를 대대적으로 알린 바 있다. 그러나 올해를 끝으로 30조원대 예산 시대는 저물게 됐다.
[서울=뉴스핌] 김학선 기자 =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2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정부 R&D 제도 혁신 방안'과 '2024년 국가연구개발사업 예산 배분·조정 결과'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3.08.22 yooksa@newspim.com |
10만여명에 달하는 기초과학자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다.
지난 25일 기초과학 학회협의체는 지난달 발표된 정부의 대대적인 기초 R&D 삭감안이 포함된 정부 R&D 제도혁신 방안에 대한 성명서를 발표했다. 전국대학 기초과학연구소 연합회를 비롯해 한국분자·세포생물학회도 성명서에 동참했다.
성명서에서 협의체는 "이번 발표 내용은 '자율과 창의로 만드는 담대한 미래'라는 국정목표 및 'R&D 예산을 정부 총지출의 5% 수준에서 유지'하겠다는 약속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며 "정부 총지출이 증가했는데도 유독 R&D 예산만 큰 폭으로 삭감한 것은 재정 운영 비효율성의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정부 스스로가 혁신하려는 노력 대신에 과학기술 R&D에 그 책임을 떠넘기고자 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예산 삭감의 최대 피해자가 대학원생과 포스닥 등 학문후속세대라는 점은 또다시 과학기술인의 위상 추락으로 인한 이공계 기피 현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지적됐다.
협의체는 "교육, 연구 등과 관련된 정책은 오랜 숙의를 거친, 예측 가능한 제도 운영이 중요한데도 졸속으로 만들어진 정부의 R&D 제도혁신의 기본 철학과 전략으로는 장기적인 국가발전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비난했다.
해외 노벨상 석학들 역시 우리나라의 이례적인 R&D 예산 삭감을 지적했다. 지난 24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노벨프라이즈 다이얼로그 서울 2023' 기자간담회에서 마이클 레빗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예산 삭감에 타당한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으나 결코 좋은 결과를 불러올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조지 스무트 홍콩과학기술대 교수를 비롯해 콘스탄틴 노보셀로프 영국 맨체스터대 교수, 요아킴 프랑크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 등 석학 역시 한 목소리로 예산 삭감에 대한 우려감을 나타냈다.
과학기술과 교육에 대한 투자가 필요할 뿐더러 기초과학 발전을 위한 정부의 장기적인 투자가 절실하다는 점이 강조됐다.
◆ 연말 국회 예산 심의에 시선집중…야권 예산 증액 '예고'
국내외 과학기술계 인사들의 연이은 예산 축소 비난에 시선은 연말 국회의 예산 심의로 옮겨진다.
한 기초과학분야 연구자는 "노벨상이 왜 없냐고 지적하지만 이를 위한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투자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 대해 과기부 (예산삭감에 대해) 스스로 목소리를 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게 안타깝다"며 "눈치보기식의 예산 삭감에 대한민국 과학기술의 원동력이 꺾이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한덕수 국무총리가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09회국회(임시회)폐회중 제1차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3.08.30 pangbin@newspim.com |
출연연 한 연구위원은 "과학기술 R&D 예산은 정치적이어서도 안되고 경제비용을 대신 내 줄 예비비가 돼서는 안된다"며 "예산 심의에서 국회가 보다 현명한 판단을 해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야권의 한 관계자는 "카르텔 등을 얘기하는데 과학기술 분야에 대한 현 정부의 시각을 그대로 보여준다"며 "과학기술 패권 경쟁에서 R&D가 중요할 뿐더러 무르익지 않은 국제협력은 예산 낭비가 될 수 있다"고 전했다.
그는 "과학기술계에 절실한 R&D 예산을 증액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중"이라며 "국가 경쟁력을 훼손시키지 않도록 지원 방안을 고민할 것"이라고 말했다.
biggerthanseoul@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