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밀 검사, 6월까지 기다려야"
[서울=뉴스핌] 신수용 기자 = #. 야학 수업에 나오던 노숙인 A씨가 최근 몸이 안 좋다며 활동가 B씨를 찾았다. 뇌졸중이 의심되는 모습이었다. B씨는 119를 누르려 했지만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B씨는 "상황이 위급한데 '병원 뺑뺑이'가 무서워 여러군데 전화해서 (응급실 이용이) 가능하다는 곳으로 간신히 차로 모시고 갔다"고 말했다.
전공의 파업 여파로 빚어진 의료대란으로 노숙인과 쪽방촌 거주자와 같은 취약계층 진료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의료대란이 이들에게 일종의 '의료재난'으로 잔혹하게 적용되고 있다.
서울 중구 서울역광장에 병원 및 생활치료센터 병상 부족으로 재택치료가 필요한 노숙인 수용을 위해 한 교회에서 설치한 텐트가 놓여있다. [서울=뉴스핌DB] |
28일 뉴스핌 취재에 따르면 의료 취약계층에게 필요한 검사나 진료가 수개월씩 미뤄지거나, 응급차 이용도 망설이게 되는 등 의료 공백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한 60대 노숙인은 뇌전증 환자다. 그는 몸 상태가 나빠지자 공공병원인 서울 동작구에 있는 서울특별시보라매 병원을 찾았지만 '정밀 검사는 6월에나 가능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평일 낮에도 사람이 많아 한참 기다리다 간단한 검사만 받을 수 있었다.
공공병원에서 취약 계층이 진료와 검사가 뒤로 밀리는 상황에 놓였다. 이들은 다른 선택지가 거의 없다. 노숙인은 지정된 병원만 이용할 수 있어서다. 쪽방촌 거주자 대부분이 기초생활수급자이거나 차상위계층이라 일반병원 이용이 어렵다.
쪽방 거주자인 60대 김모씨는 최근 몸에 복수가 차오르고 속쓰림이 심해졌다. 증상이 심해지자 국가 중앙 공공병원인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에 찾았지만 6월에나 진료가 가능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다음날 김모씨의 상태가 더 나빠졌다. 그는 입원 후 치료를 받고 나서야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
의료 취약계층이 이용할 수 있는 공공병원이 파업 여파에 흔들리고 있다. 국가 책임 필수의료를 총괄하는 국립중앙의료원은 경영위기로 지난 21일 비상경영체제에 들어갔다. 다른 공공병원도 마찬가지다. 서울시 공공병원 전공의 총 240여 명 중 70%인 160여 명이 사직서를 내고 현장을 떠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홍수경 홈리스행동 활동가는 "취약계층은 국공립 병원을 이용할 수 밖에 없는데 (의료 파업으로) 받는 영향이 장기화 될 수 있다"며 "아프면 대부분 '참는다는 분들이 많다"고 우려했다.
이어 "노숙인 진료시설 지정제도가 파업 상황에서 의료 취약계층의 병원 이용에 장벽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숙인 진료시설 지정제도란 노숙인 1종 의료급여 수급자가 지자체가 정한 진료 기관에서만 의료급여를 신청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2022년 2월 기준 전국 지정병원은 291곳뿐이다. 이마저도 80%는 보건소고, 종합병원은 40곳도 안 된다. 복지부는 지난해 3월까지 임시로만 모든 1·2차 의료급여기관(요양병원을 제외한 의원·병원·종합병원 등 총 7만3000여 곳)으로 노숙인 진료시설을 확대한 상태다.
김동아 공공운수 의료연대 본부 정책부장은 "취약계층에 대한 의료 붕괴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며 "정부의 정책 실패가 의사의 집단행동을 불러온 것으로, 의사 수 증원만 얘기할 것이 아니라 공공의료 확대를 통한 의료 개혁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aaa22@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