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심신미약 상태…재범 위험성 있어 치료감호 필요"
대법 "의사 결정 능력 상실해 벌할 수 없는 경우에 해당"
[서울=뉴스핌] 김현구 기자 = 잠자던 같은 병실 환자를 소화기로 여러 차례 때려 사망에 이르게 한 중증 치매 환자가 무죄를 확정받았다. 범행 당시 그의 '심신상실' 상태가 인정되면서 처벌할 수 없다는 판단이 나왔기 때문이다.
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상해치사 혐의로 기소된 박모 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고 5일 밝혔다.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서울 서초구 대법원의 모습. [사진=뉴스핌DB] |
박씨는 2021년 8월 알코올성 치매 등으로 인해 부산의 한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던 중 병실 밖으로 나가는 것을 간호조무사에게 여러 차례 제지당하자, 출입문 왼쪽에 놓여있던 철제 소화기로 같은 병실에서 잠자던 80대 남성의 얼굴과 머리를 수회 내리쳐 외상성 다발성 머리뼈 골절 등의 상해를 가한 뒤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박씨 측은 범행 당시 중증 치매로 인해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었다는 주장했다. 다만 검찰은 당시 박씨가 심신미약 상태에 있었고, 재범 위험성이 있어 치료감호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박씨는 2004년 12월부터 '알코올 사용에 의한 정신 및 행동장애(의존성증후군)'로 치료를 받기 시작했고, 2008년 6월 알코올성 치매 진단을 받은 이후 2020년 3월까지 6회에 걸쳐 입원 치료를 받았다.
사건 발생 시점으로부터 약 1개월이 경과한 뒤 박씨에 대한 모 병원의 정신감정 의뢰 회신에 따르면 그는 심각한 언어능력의 손상으로 의사소통에 심한 장애가 있을 뿐 아니라 기억력, 판단력 등 인지기능 전반에 걸친 손상으로 논리적 판단력을 상실한 '심신상실' 상태에 해당했다.
또 사건 발생 1년이 지난 2022년 10월 의료사안 감정 회신에는 2020년 3월부터 2021년 3월까지 세 차례에 걸친 간이정신상태검사에서 박씨의 치매 및 인지능력 기능은 점차 저하되는 양상을 보였고, 전반적 퇴화 척도에서도 그는 중등도 이상의 인지장애 평가를 받았다.
아울러 박씨는 사건 범행 당시 의사능력에 대해선 '치매 증상과 함께 사건 전부터 우울, 공격성, 탈억제 등 치매와 동반된 행동심리증상과 일시적 혼돈 상태를 보이는 섬망이 번번이 있었던 것으로 판단되며, 당시 그의 의사능력 수준은 매우 낮을 것으로 추정됨'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에 1심은 박씨에게 무죄를 선고하고 치료감호 청구는 기각했다.
재판부는 "박씨를 치료했거나 감정한 의료진의 의견 등에 비춰 보면, 그는 범행 당시 알코올성 치매로 인해 인지기능이 현저히 저하돼 사물을 분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 등이 상실된 상태에 있었음을 인정할 수 있다"며 "이같은 상태에서 이뤄진 범행은 벌할 수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형법 제10조 제1항은 '심신장애로 인해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자의 행위는 벌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재판부는 "박씨는 만 75세 치매 환자로 사건 이후 병원에 입원해 약물 치료를 받고 있다"며 "박씨의 가족들이 지속적인 보호와 치료를 다짐하고 있고, 건강 상태나 범죄 전력 등에 비춰볼 때 재범의 위험성이 있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고 판단했다.
2심도 1심 판단을 유지했다.
재판부는 "박씨에 대한 정신감정을 다시 실시한 결과 '범행 당시 사물 변별능력과 의사결정능력이 모두 저하된 심신미약 상태였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기재돼 있긴 하지만, 그가 어느 정도 인지능력을 갖춘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있다고 하더라도 범행 당시에는 선악과 시비를 변식할 만한 능력 등이 없는 상태에 있었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봤다.
아울러 2심도 1심과 마찬가지로 박씨의 치료감호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대법원도 하급심 판단이 옳다고 봤다.
hyun9@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