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북·미 대화 문을 연 '핵 협상 산증인'
'북한이 공감할 수 있는 전략' 필요성 강조
전술핵 재배치 "남북,미 모두에게 좋지 않아"
트럼프 당선되면 한,일 독자핵무장 나설수도
[서귀포=뉴스핌]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 미국과 북한의 공식적인 핵협상의 문을 열었던 로버트 갈루치 조지타운대 명예교수는 북한을 비핵화로 이끌기 위해서는 남북 관계와 북·미 관계 개선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갈루치 교수는 30일 제주 서귀포시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주포럼 참석을 계기로 열린 프레스미팅에서 북한이 공감할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다며 이같이 밝혔다. 갈루치 교수는 "남북, 북·미 관계 개선없이 비핵화를 논하는 것에 회의적"이라며 "북한이 핵을 포기하게 만들려면 안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현실적인데 이에 대한 고려가 적은 것 같다"고 말했다.
로버트 갈루치 조지타운대 명예교수가 30일 오후 제주 서귀포시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에서 열린 '제19회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제주포럼'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제주포럼사무국] |
갈루치 교수는 또 한·미가 북한과 '강 대 강'의 대치를 이어가는 것은 우발적인 충돌에 이어 핵전쟁으로 확전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하면서 대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이어 "핵 포기를 전제하는 협상은 안 하겠다는 북한의 입장에 일일이 반박하고 비판해서는 대화의 길이 열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갈루치 교수는 1993년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으로 비롯된 1차 북핵 위기 당시 국무부 북핵 특사로 임명돼 강석주 당시 북한 외무성 부상과 처음으로 북·미 대화를 시작했던 북핵 협상의 산증인이다. 갈루치 특사와 강 부상은 협상을 통해 북한의 NPT 탈퇴 선언의 효력 발생을 유예하고 이듬해 북한의 핵포기와 경수로 제공을 맞바꾸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제네바 기본합의'를 만들어냈다.
갈루치 교수는 "30년 전 북한 김정일 정권은 성실하게 협상해 임했지만 나중에 미 중앙정보국(CIA)은 북한이 그때에도 이미 파키스탄과 협력해 우라늄 농축을 위한 원심분리기를 비밀리에 개발하고 있어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면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핵에 대한 집념이 더 강하기 때문에 핵을 포기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고 전망했다.
갈루치 교수는 또 미국 공화당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한반도 전술핵 재배치 주장에 대해 "좋지 않은 아이디어"라고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그는 "한반도의 전술핵 재배치는 대량살상무기(WMD) 확산을 야기해 한국과 북한, 심지어 미국에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갈루치 교수는 이어 미국이 한국에 충분한 확장억제를 제공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한다면 체제와 국가가 살아남지 못한다는 것을 북한 스스로도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갈루치 교수는 또 오는 11월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되면 한국과 일본 등이 독자 핵무장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갈루치 교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은 동맹을 중요하게 생각치 않고 안보 공약에 대한 확신도 적어 동맹국들이 독자 핵무장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동맹은 조약에 기초한 것으로 개인 선호에 따라 달라질 수 없다"면서 "동맹국의 안보는 미국에도 사활이 걸린 국가 이익이라는 인식이 미국의 전반적인 분위기여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되더라도 뒤집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opento@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