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연한 표정으로 태연하지 않는 세계를 노래하다
시인의 딴생각에 포획되어 끌려갈 수밖에 없는 시
[서울 = 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그렇게 토끼는 죽은 듯이 잠이 들었고/ 거북이는 결승선을 통과했습니다/ 이때부터 토끼의 비극이 시작된 겁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사실은 누구도/ 토끼를 깨워 주지 않았다는 것' -'토끼잠'
시집 '이 시는 누워 있고 일어날 생각을 안 한다'(민음사)의 시인 임지은은 자서에서 "교양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결국 "세 번째 시집이 있는 사람이 되었다"고 적는다. 임지은은 상상의 세계에서 현실로 여행하다가 당연한 것들을 툭 건드려서 당연하지 않게 만든다. 그래서 그의 세 번째 시집은 읽는 재미가 특별하다. 편안하게 읽히다가도 지나쳐 가려는 사람의 발목을 잡아챈다. 당연한 것을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힘, 그것이 임지은의 시가 갖고 있는 힘이다.
[서울 = 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임지은 시집 '이 시는 누워있고 일어날 생각을 안한다' 표지. [사진 = 민음사 제공] 2024.07.22 oks34@newspim.com |
'뭐든 중간이라도 가려면 가만히 있어야 하고/ 가만히 있기엔 누워 있는 것이 제격이니까/ 다른 걸 하려면 할 수도 있는데/ 안 하는 거다/ 왜? 누워 있으려고' - '눕기의 왕' 중에서.
이 시는 '누워 있을 것'의 의지를 당당하고 뻔뻔하게, 나른하고 단호하게 진술하는 작품이다. 어떤 이유로 눕는다거나, 누워 있었기에 어떤 일이 생겼다거나 하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어제 뭐 했어?" "누워 있었어." "왜?" "누워 있으려고." 시인은 누워 있을 자유, 누워 있으면서 당당할 수 있는 자유를 적극적으로 표현한다.
문학평론가 최선교는 해설에서 "(누워 있기는) 이 시집의 자세이기도 하지만, 시집을 읽는 사람이 따라 할 수 있는 자세이기도 하다"라고 말한다. 좋은 걸 좋다고, 지금 하는 걸 하고 싶어서 그냥 한다고 말하는 시인의 화법과 보법을 따라 읽고 살기. 그것이 어쩌면 '뭔가의 왕'이 취할 법한 자세 아닐까. 임지은의 시집에는 치밀하고 찬란한 딴생각들이 우글거린다. 그가 가장 즐거워하는 딴생각은 역시 당연한 것들을 불러내 요리조리 다르게 보이도록 하는 일이다. 소인국에 놀러 온 걸리버처럼 작은 언어들을 데리고 즐거워한다.
'한국어는 뜨거운 국물이 시원한 것만큼 이상합니다// 여기 자리 있어요, 가/ 자리가 없다는 뜻도 있다는 뜻도 되니까요// 그럼 여기 나 있어요, 는/ 내가 있기도 없기도 한 상태입니까?'- '혼코노'중에서.
이방인으로부터 익숙한 세상의 질서가 지적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즐거운 딴생각으로 인해 숨겨진 진실이 끌려나오기도 한다. 임지은의 시집은 이런 밀고 당기기로 우리를 그의 딴생각 안에서 벗어날 수 없게 만든다. 그의 딴생각이 만든 낯선 시선으로 시집 바깥의 세계를 돌아볼 때, 우리는 아마 조금 다른 마음을 품은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184쪽. 값 12000원. oks34@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