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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혁 교수의 '이제는 정치혁신'] ① 이익집단 이해의 틀

기사입력 : 2024년09월14일 07:00

최종수정 : 2024년09월15일 06:54

제5권력, 이익집단은 민주주의의 장애물인가

현재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는 사회적 갈등현상은 이익집단과 정부, 이익집단간의 첨예한 대립이 주 원인이다. 사익확대와 공익보호를 위한 이익집단과 정부의 충돌은 다양한 사회적 긴장관계를 양산하고 국민의 안전과 생명까지 위협하고 있다. 이 글은 3편으로 나눠 게재할 예정이다.

사람을 경제적 동물이라 한다. 이익을 추구하고 이익을 상호거래하는 동물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경제적 동물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기술이나 지식, 경제적 이익을 공유하고 힘을 모아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조직된 형태가 바로 이익집단(interest groups)이다. 이익집단은 회원들의 이익을 보호하고 정부의 정책결정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로빙(lobbying)이라는 수단을 사용하기 때문에 압력집단(pressure groups)라 불리기도 한다.

이익집단은 입법-사법-행정부의 제3권력, 언론기관을 제4권력, 그리고 이익단체를 제5권력기관이라 불리고 있을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가진다. 제5권력으로서 정부의 의사결정과정에서 이익집단은 다수 국민의 공공이익에 해악을 끼칠까, 아니면 공익에도 도움이 될까? 이익집단의 집단행동과 로비스트활동은 경쟁국가들에 비해 어떤 특징을 보여주고 있으며, 의대증원, 간호법 제정, 정권퇴진운동과 같은 노조의 정치시위 등의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지속적 발전과 국민안전, 그리고 민주주의의 심화를 위해 이익집단은 앞으로 어떻게 변화를 해야 할지, 그리고 정부는 어떤 제도적 접근을 고려해야 할지에 대해 논의해 본다.

이익집단의 역사, 불법단체에서 압력단체까지

이익집단의 발전은 곧 민주화의 역사이자 사회 및 경제생활의 기폭제 역할을 담당했다. 중세기부터 존재해 왔던 길드 제도(Guild)는 현대적 이익단체의 전신으로 받아들여 진다. 공예공, 유리공, 석공, 시계공, 대장장이, 직물공, 예술인 등의 공예인 길드(artisan guild)들과 도시상인 및 유통, 사채업자 등이 만든 다양한 상인길드(trader guild)는 정부의 허가를 받고 정식으로 자체 수련과정, 허가제도, 매스터 제도 등을 통해 상점을 열수 있어 회원들은 핵심적 도시중산층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상인길드는 자체의 허가제와 감독 그리고 규칙을 만들어 내는 상공회의소(Chamber of commerce)를 조직해 활동하기 시작했다. 중세기에 시작했지만 현지까지 남아 있는 조직이다.

길드조직들은 자신들만의 이익과 상권을 보호하기 위해 등록제를 도입했고, 이것이 바로 특허의 효시다. 특허제도는 1624년 독점사용권법 (Statute of Monopolies)로 보호되기 시작했고, 특정 상품에만 표시할 수 있는 상표등록(trademark) 등도 길드제도의 부산물이다. 법으로 정한 최초의 특허 제도의 효시는 1474년 제정된 베니스 특허조례 (Venetian Patent Statute)로 기록되고 있다. 1474년 상인길드들이 만든 특허제도는 10년의 보호 기간동안 독점적으로 사용되었다. 프랑스의 샴페인, 보르도와인 등은 중세기에 획득한 상표가 그대로 유지된 몇 안 되는 상품들이다. 샹파뉴 지방에서 생산된 백포도주에 이산화탄소를 혼합해 제조된 음료만 샴페인이라는 상표를 붙일 수 있다. 중세기의 길드제도는 지적재산권과 발명품에 대한 특허제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여전히 현대 경제와 사회생활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셈이다. 도제제도의 기술전수방식은 독일에서 현재까지 잘 보존되어 주축산업으로 자리잡은 중소기업과 중견기업, 즉 미텔슈탄트(mittelstand)가 하나의 제품으로 세계를 석권하는데 가장 핵심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식기, 가구, 빵, 식료품, 향료 등과 같은 생필품과 일용품부터 승마 안장, 기사투구, 마차, 나무선박, 선박장비 등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서 길드조직에 속한 회원들이 장악하면서 폐해도 속출하게 시작했다. 물품거래 제한, 가격담합, 공급제한 등을 통해 회원들에게만 이익이 추구되고, 인허가와 관련한 뒷돈거래, 새로운 상점 등의 진출제한, 판매지역 지정 등 산업혁명기에 혁신적 창업과 일자리 창출에 큰 걸림돌이 되기 시작했다.
길드제도에 대해 강하게 비판한 장자크 루소와 애덤 스미스는 시장제도에 특수이익이 장악해 다수의 이익을 해치는 구시대의 존재로 단정지었다. 프랑스 혁명 이후 길드를 봉건주의의 마지막 잔재로 보는 경향이 강해 결국 1791년 3월 2일 제정된 달라르드(D'Allarde Law) 법은 프랑스의 모든 길드를 금지시켰고, 1803년 나폴레옹 법전은 노동자의 활동도 같은 선상에서 금지시켰다. 칼 마르크스는 그의 공산주의 선언에서 사회적 계급의 엄격한 등급과 이 시스템이 수반하는 억압자와 억압받는 자의 관계로 보고 길드 시스템을 비판했다. 프랑스에 이어 영국(1835), 스페인(1840), 스웨덴(1846),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1850-60), 이태리(1864) 등이 차례로 금지시키면서 길드제도는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나게 되었다.

최초의 이익 집단이었던 길드조직이 금지되었지만, 반대로 미국을 중심으로 결사의 자유는 민주주의 발전에 필수적인 요소라는 인식이 확대되기 시작했다. 누구든 자신의 이익을 위해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자유롭게 협회를 만들 수 있는 자유를 인정한 결사의 자유(freedom of association)은 1831년 미국을 돌아본 알렉시스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에 의해 주장되었다. 9개월동안 미국의 감옥제도를 연구하기 위해 진행한 마차여행을 마치고 프랑스로 돌아와 미국의 민주주의(Democracy in America, 1835)를 출판한 토크빌은 마을마다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활동하는 이익집단과 시민단체가 미국 민주주의의 역동성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영국은 모든 형태의 조직체 결성과 집단행동에 대한 금지법(Combinations of Workmen Act)가 1825년 통과되어 노조활동이 전면 금지되었다. 1811년 산업혁명으로 기계화가 진행되면서 일자리를 빼앗긴 노동자들이 시작한 기계파괴운동, 즉 러다이트(Luddite) 운동이 확산되면서 생긴 자연스런 결과였다. 이 때부터 노동자의 활동은 비밀결사조직 형태로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1839년 시작된 차티스트운동(Chartism)은 1832년 보통선거권 개혁에 불만을 품고 전개된 정치운동이었지만, 상징적으로 노동자의 힘을 결집시킨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들이 주장한 21세 이상 남성의 보통선거권, 비밀선거, 피선거권 재산한도 제한철폐, 국회의원 봉급요구, 선거구 개혁 등은 영국의 민주화에 불을 지핀 중요한 사건이다. 이를 통해 노동자의 선거참여확대를 관철시켜 역사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1871년 노조법(Trade Union Act)의 제정에 따라 합법화된 영국의 노동조합은 시대변화의 조류현상이라기 보다는 산업혁명으로 장시간 과로와 음주, 질병 등에 노출된 노동자들의 삶의 개선을 요구하는 정치운동의 결과로 보는 것이 더 가깝다. 영국 근로자들의 열악한 사회경제적 조건을 개혁하기 위해 조직된 노동자 대표위원회의 활동으로 노동당이 1900년 결성되어 노조의 정치운동이 시작했다. 영국의 경우 노동조합운동이 당설립과 연관이 있다면, 스웨덴은 그 반대의 경우다. 1889년 설립된 사회민주당의 당지도부 중심으로 전국노동자들을 결속해 전국노동조합(Landsorganisation, LO)을 만들었다. 노조의 정치화나 순수한 이익집단으로 남아 의사결정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노동시장의 압력단체로 발전되었던 것과 관계없이, 각국마다 노조의 확산은 다른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아래 <표 1>에서 보듯 노동조합은 19세기 중반부터 빠르게 조직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시작한 영국은 이미 1851년 불법조직으로 비밀리에 활동하기 시작했지만 1871년 노조법이 통과되어 일찌감치 노조활동이 합법화되었다. 대서양 건너 미국과 캐나다에서도 토크빌이 지적한 결사의 자유가 일찌감치 뿌리를 내려 영국에 이어 1886년 노동조합이 설립되어 활동하기 시작했다. 뒤이어 유럽에서 차례로 노조가 합법화되기 시작하면서 설립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시작된 시점은 비슷하지만, 노조조직율에 있어서는 천차만별이다. 아이슬란드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92.2퍼센트의 노조조직율, 즉 노조에 참여하는 노동자 비율을 보여 주고 있지만, 일찍 노동조합이 합법화된 영국(23.5%)과 미국(10.3%)에서 참여율이 매우 저조한 이유가 무엇일까?

민주주의 국가에서 중요한 경제주체로 자리 잡은 노조활동은 왜 국가마다 차이가 날까?
이익집단의 형성과 민주주의 발전은 궤를 함께 한다. 공공선을 강조한 공화주의(republicanism)는 프랑스 혁명의 단초가 되어 길드조직을 금지시켰지만, 대서양 반대편 미국에서는 선택의 자유와 결사의 자유를 앞세운 다원주의(pluralism)가 뿌리를 내리며 발전되었다. 앞서 소개했듯 알렉시스 토크빌이 저술한 미국의 민주주주의 (Democracy in America)는 여전히 정치학 필독서로 꼽힐 만큼 자유주의와 다원주의의 이해를 돕는 교과서로 사용된다. 다원주의의 핵심은 자발성(voluntarism)에 있다. 1800년대말에 유럽과 미국에서 노동운동이 폭발적으로 확산될 때 많은 노동자들이 앞다퉈 가입했던 이유는 자신을 대신해 투쟁해줄 노조에게서 받는 혜택이 지불해야 할 비용보다 컸기 때문이다. 이를 이론화한 학자가 맨슈어 올슨(Mancur Olson) 교수다. 올슨은 그의 저서 집단행동의 논리(The Logic of Collective Action, 1965)에서 노동자들이 노조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이유는 집단행동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혜택이 자신이 치러야 할 비용, 즉 회비와 집회 참가, 노조참가에 따른 불이익보다 크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초기 노조운동이 산업혁명을 거쳐온 거의 모든 국가에서 폭발적 참여를 통해 이루어졌기 때문에 올손의 분석은 어느 정도 설득력을 얻는다.

그 중에서도 노조원들에게 주는 실직수당이 핵심적인 유인책이라 보고 있다. 노조원들에게 파업참가 노조원들에게 줄어든 봉급만큼 보전해 주거나, 해고당해도 실직수당을 지급하는 등의 혜택이 높은 벨기에, 스웨덴, 덴마크, 핀란드 등의 국가들은 겐트체제(Ghent system)라 불릴 정도로 노조조직율이 높게 나타난다. 올손에 따르면 겐트체제에 속하지 않은 국가들의 노조조직율이 낮을 수밖에 없다고 분석한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영국과 미국과 같은 자유시장 경제체제에서는 노조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협상이나 노동조건 향상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 주지 않기 때문에 참여율이 낮다는 논리는 어느 정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오페와 위센탈(Offe and Wisenthal)은 그들의 연구 '두가지의 집단행동'(Two Logics of Collective Action, 1980/1985)에서 올손의 집단행동 모형을 한결 발전시켰다. 즉 노동자 혼자서 이룰 수 있는 것과 집단행동을 통해 이룰 수 있는 능력에 따라 노조조직율이 높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개인이 노동성과를 평가해 주는 고용주가 있다면 굳이 노조에 가입하지 않아도 좋은 연봉과 노동환경을 개선할 수 있기 때문에 개인의 독자적 행동을 선호하게 되고, 효과적으로 사측과 단체협상을 통해 더 높은 특별보너스와 임금인상, 그리고 휴가 등을 관철해 낼 수 있을 때 노조참여율이 높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아이슬란드와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 등의 북유럽국가에서 기업참여율이 높고, 임금단체교섭율이 높을 경우 당연히 노조조직율이 높게 나타난다는 주장이다. 두 이론 모두 상호보완적으로 노조조직율이 높고 낮은 이유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그렇다면 프랑스와 네덜란드 임금단체협상율이 높아도 노조조직율이 낮은 것일까? 아래 <표 1>을 보면 프랑스와 네덜란드의 임금협상율이 각각 98%와 75,6%에 이르고 있지만 노조조직율은 10,8%와 15.4%에 머물고 있을 뿐이다. 노조조직율이 낮은 독일과 브라질도 마찬가지 유형이다. 그렇다면 올손과 오페-위센탈의 이론은 어느 정도 설명력을 잃는 것이 아닌가?

이 같이 설명되지 않은 부분을 잘 분석한 연구가 바로 필립 슈미터(Phillip Schimitter)다.슈미터는 그의 연구 '아직도 세기의 조합주의인가?' (Still the century of corporatism? 1974)에서 각국마다 조합주의의 정도에 따라 노조조직율이 차이가 나고 노조와 사측의 단체협상권이 강하게 나타난다고 분석하고 있다. 조합주의는 노조와 사측의 대표들의 협상창구가 잘 작동될수록 노조참여율이 높고, 파업율이 낮다는 것이다. 북유럽국가들은 노사협의체제가 잘 구축되어 있고, 단체임금협상이 정례화 되어 있으며 정부와의 관계도 노사대표들과 평화적 관계가 잘 갖춰져 있어 노동자들이 굳이 정리해고와 같은 불이익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관계가 구축되어 있다고 본다. 조합주의의 어근인 corpus는 라틴어로 몸체(body)라는 뜻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인 집합(aggregation)이 아닌 조합원 전체의 본체로 본다는 뜻이다. 정치학에서 이를 보디폴리틱(body politic)이라 부르며 허파, 심장, 뇌, 팔, 다리로 이루어진 기능결합체로 인간을 보는 것이 아닌 인간의 본체 혹은 자체를 중요한 정치의 핵심으로 보는 논리다. 조합주의는 결국 노동주체와 경영자 주체간의 협상과 타협으로 이루어지는 정치경제 이론(theory of political economy)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
이 세가지의 이론은 노동시장의 압력집단 주체인 노조와 사용자간의 관계, 노조조직율과 집단행동의 원리를 잘 설명하고 있는 틀로 사용되고 있다.

 

출처: OECD/AIAS ICTWSS database. September 2023를 기반으로 저자가 노조조직 연도를 첨가함.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이익집단들이 활동하고 있을까? 로비제도의 심각한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는 상황에서 부패가 낮은 서유럽처럼 로비제도를 활성화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일까? 다음 2편에서 다뤄 보기로 한다.

[서울=뉴스핌] 최지환 기자 = 최연혁 스웨덴 린네대학교 교수

*필자 최연혁 교수는 = 스웨덴 예테보리대의 정부의 질 연구소에서 부패 해소를 위한 정부의 역할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다. 스톡홀름 싱크탱크인 스칸디나비아 정책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매년 알메랄렌 정치박람회에서 스톡홀름 포럼을 개최해 선진정치의 조건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그 결과를 널리 설파해 왔다. 한국외대 스웨덴어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은 후 스웨덴으로 건너가 예테보리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고 런던정경대에서 박사후과정을 거쳤다. 이후 스웨덴 쇠데르턴대에서 18년간 정치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버클리대 사회조사연구소 객원연구원, 하와이 동서연구소 초빙연구원, 남아공 스텔렌보쉬대와 에스토니아 타르투대, 폴란드 아담미키에비취대에서 객원교수로 일했다. 현재 스웨덴 린네대학 정치학 교수로 강의와 연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저서로 '우리가 만나야 할 미래' '좋은 국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민주주의의가 왜 좋을까' '알메달렌, 축제의 정치를 만나다' '스웨덴 패러독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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