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 교체, 명분 정당성 민주성 망각한 막장드라마
변칙 반칙 난무...대충 고쳐 쓸 단계 이미 한참 지나
[서울=뉴스핌] 이재창 정치전문기자 = 한 편의 막장 드라마였다. 이보다 더 나빠질 수는 없다. 그야말로 밑바닥을 보여줬다. 실패로 끝난 국민의힘의 대선 후보 교체 내홍 얘기다. 명분과 정당성, 민주성 등 민주 정당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변칙과 반칙이 판을 쳤다. 당원들이 지도부의 비정상을 바로잡았지만 그 상처는 치유가 어려울 정도로 깊다. 민주 정당으로 거듭날 수 있을지에 대한 기본적인 의문을 던졌다.
오죽했으면 당내에서조차 '북한도 이러진 않는다. 친윤 쿠데타'(한동훈 전 대표), '막장 정치 쿠데타'(안철수 의원), '정당성이 결여된 날치기'(조경태 의원)라는 말이 나왔을까. 합법으로 포장했지만 비민주의 극치였다. 꼼수와 편법이 난무했다. 후보 단일화를 열망했던 당원들이 김문수 후보를 한덕수 후보로 교체하는 안을 부결시킨 이유다.
![]() |
[서울=뉴스핌] 양윤모 기자 =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11일 오전 국민의힘 당사에서 열린 한덕수 전 국무총리와 회동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10일 김문수 대선 후보를 한덕수 후보로 교체하는 찬반을 묻는 전 당원 투표결과, 반대 의견이 찬성보다 많아 부결됐다고 밝혔다. [공동취재] 2025.05.11 yym58@newspim.com |
애당초 당 지도부의 단일화 구상 자체가 비상식적이었다. 8명의 당내 후보를 3차 경선을 거쳐 최종 후보를 선출한 뒤 당 밖 인사와 토론 후 여론조사로 최종 후보를 정하겠다는 것이다. 시간이 없다는 이유였지만 누가 봐도 당 밖 인사에 무게가 실린 불공정 게임이었다. 그것도 당 밖 인사는 조직이 전혀 없는 무소속 후보다. 지지율이 월등히 높은 것도 아니다. 특정인을 후보로 만들기 위한 시나리오라는 의혹이 나올법도 했다.
당 경선이 마이너리그로 전락한 것은 필연이었다. 경선 후보들은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다. 3억 원 이상 쓰며 혈투 끝에 선출된 당 후보가 쉽게 후보 자리를 양보할 리 만무하다. 자신이 한 수십 번의 단일화 약속에 발목이 잡혔지만 지도부의 일방적인 밀어붙이기에 굴복할 수 없었다. 당연히 자신이 주도권을 쥐고 버티며 돈도 조직도 없는 당 밖 무소속 후보를 주저앉히려 했다. 이에 지도부가 약속 위반이라고 반발하면서 야밤에 후보 교체를 시도했다. 후보는 '쿠데타'라며 법적 투쟁에 나섰다.
이런 소설 같은 일이 의원 107명을 가진 정당에서 일어났다. 그것도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집권 여당이었던 곳이다. 김문수 후보와 한덕수 후보와의 단일화를 둘러싼 내홍이 친윤 지도부의 후보 교체로 막을 내리는 듯했으나 당원 투표로 결국 무산됐다. 예고된 결말이었다.
더 심각한 것은 후보 단일화 내홍 과정에서 드러난 당의 극단적인 반민주성이다. 명분과 절차적 정당성은 찾아보기 어렵다. 편법과 반칙의 연속이었다. 민주 정당이 맞나라는 의구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당이 선출한 후보가 아웃사이더가 되고 단일화의 주도권이 당 밖 인사로 넘어간 것 자체가 비정상이었다. 단일화 약속 위반을 이유로 후보 교체를 시도한 것도 애당초 명분이 약했다. 서약서를 쓴 것도 아니다. 김문수 후보를 옹호할 생각은 전혀 없다. 후보 경선 과정에서 22번의 단일화 약속을 하고 이를 이행치 않은 것은 신뢰를 저버린 것이다. 비난받아 마땅하다. 정치적 도의적 책임을 져야 한다. 법적인 문제는 다른 차원이다.
지도부의 단일화 일방 추진은 문제가 많았다. 정상적인 당이라면 선출된 후보의 정통성을 인정하는 것은 기본이다. 대선 기간 동안 당 후보가 원톱이다. 후보에 대한 예우를 다하면서 단일화의 주도권을 후보에 넘기는 게 당연하다. 지도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자신들이 짜놓은 단일화 시간표로 김 후보를 압박했다. 심지어 시간이 없다며 한 차례 토론 후 여론 조사를 하는 안을 받으라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주도권은 한 후보에게 넘어갔다. 그는 단일화가 안 되면 후보 등록을 하지 않겠다고 배수진을 쳤다. 말이 배수진이지 사실상 김 후보에 대한 최후통첩이었다. 당 지도부와 한 후보가 김 후보를 협공하는 모양새였다. 한 후보는 여론 조사 방식 등 모든 걸 당에 일임한다고 했다. 정작 협상에서는 달랐다. 100% 국민 여론 조사를 하자는 김 후보의 제안을 거부하며 버텼다. 지도부는 수수방관했다. 묵시적으로 한 후보를 미는 듯한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단일화가 시간표대로 안 되자 지도부는 후보 교체 작업에 착수했다. 심야의 후보 교체 작업은 절차적 민주주의가 아예 생략됐다. 하자 투성이었다. 국민의힘이 10일 새벽 '국민의힘 제21대 대통령후보자 선거 후보자 등록 신청 공고'를 당 누리집에 올린 시간은 새벽 2시 30분이었다. 신청자에게 요구한 서류는 모두 32가지다. 접수는 이날 새벽 3시부터 4시까지 단 한 시간뿐이었다.
1시간 30분 안에 모든 서류를 국회 본관 228호에 접수해야 했다. 무소속이었던 한 후보만 접수했다. 사전에 연락을 받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경선에서 2위를 차지했던 한동훈 전 대표 등 당내 다른 경선 주자들은 아무도 접수하지 못했다.
한덕수 후보만을 위한 절차였다고 볼 수밖에 없다. 경선에 나서고 싶은 다른 후보들에 대한 명백한 권한 침해다. 당장 당내에서 문제가 제기됐다. 새벽 3시부터 단 한 시간만 후보 등록을 받은 건 "심각한 절차적 하자"로 "무효"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5.16 쿠데타식이라는 비난까지 나왔다.
이런 논란을 차치하고라도 후보 교체는 80만 명의 당원과 무당층 유권자의 선택을 무시한 것이다. 당원의 권리를 침해한 것이다. 결국 후보 교체 시도는 믿었던 당원 투표에서 부결됐다. 당원들은 후보 단일화를 열망하지만 이런 식의 일방통행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책임론 등 후폭풍이 거세다. 후보 교체를 주도한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은 사퇴했다. 권성동 원내대표의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권 원내대표도 사퇴 의사를 밝혔지만 대선을 불과 20여 일 앞두고 지도부 공백 사태를 우려해 일단 자리를 지키지만 오래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특정인을 염두에 둔 듯한 무리한 후보 교체는 하루짜리 해프닝으로 끝났다. 막장 드라마에 중도층은 물론 합리적 보수층 상당수도 등을 돌릴 판이다. 실망한 이들을 달랠 방안도 마땅치 않다. 지도부는 대선 승리를 내세웠으나 정작 대선 승리는 한참 더 멀어졌다. 민주당에서는 어부지리 대승 얘기가 공공연하다.
명분도 실리도, 국민의 신뢰도 다 잃었다. 대선 승리는커녕 민주 정당으로서의 존립 기반조차 흔들리고 있다. 대충 고쳐서 쓸 수 있는 단계는 지나도 한참 지났다. 자성과 뼈를 깎는 혁신 없이는 살아날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그간 보수의 정통 세력을 자처해온 국민의힘은 무능력 무비전 무책임의 '3무 정당'으로 전락했다. 열정과 파이팅이 사라진 지 오래다. '웰빙당' '정치 동호회'라는 비아냥을 받는 처지다.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을 거치면서 극우화 경향까지 보였다. 친윤(친윤석열) 기득권에 옴짝달싹 못하고 있다. 혁신과는 거꾸로 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의 관계 정리를 못하면서 당의 정체성도 흔들리고 있다. 합리적 보수 색깔도 잃었다.
이래서는 미래가 없다. 30년 진보 정권 얘기는 그냥 나오는 게 아니다. 출구가 안 보인다. 차라리 당을 해체하고 헤쳐 모여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온다. 웃어넘길 얘기가 아니다. 기득권에 가로막혀 혁신이 어렵다면 심각하게 고민할 때가 됐다. 보수의 미래를 위해 그게 해법이 될 수 있다.
leejc@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