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 수수료 인상, 美 기업 비용 부담 키우고 印 현지 IT 서비스 센터 역량 강화"
[방콕=뉴스핌] 홍우리 특파원 = 미국이 전문직 인력에게 발급하는 H-1B 수수료를 대폭 인상하기로 한 가운데 관련 비자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인도가 긴장하고 있다. 정보기술(IT) 산업이 타격을 입을 것이란 우려가 상당하지만 일각에서는 인도에 오히려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9일 H-1B 비자 수수료를 현재의 1000달러(약 139만원)에서 100배인 10만 달러로 올리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새 수수료는 21일 오전 0시 1분부터 적용된다.
인도는 미국 H-1B 비자 소지자를 가장 많이 보유한 나라다. 21일(현지 시간) AP통신은 H-1B 비자 소지자의 70% 이상이 인도 출신이라고 보도했다.
인도 외교부는 21일 성명을 통해 "H-1B 비자 수수료 인상과 관련한 미국 행정부의 계획을 인도 산업계를 포함한 모든 관련 기관이 검토하고 있다"며 "이번 조치는 (비자 발급자의) 가족에게 혼란을 끼치며 인도주의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인도) 정부는 미국 당국이 이러한 혼란을 적절하게 해결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외교부는 또한 숙련된 노동자 교류가 양국에 엄청난 기여를 해왔다며 "정책 입안자들은 양국의 강력한 인적 교류 등 상호 이익을 고려해 최근 조치를 평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인도 IT 업계가 미국의 새로운 비자 규정에 바짝 긴장하고 있다. 인도 아웃소싱 기업들은 H-1B 비자 프로그램을 활용해 미국에 엔지니어를 파견하고 있는데, 비자 수수료 인상으로 이들 기업의 수익성이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로이터 통신은 지적했다.
일례로 인도 대형 IT 기업 중 하나인 인포시스의 경우 2023/22회계연도(2023년 4월~2024년 3월)에 2504건의 신규 H-1B 비자를 발급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새로운 비자 수수료 규정에 따를 경우 인포시스는 최소 2억 5999만 달러의 수수료를 부담해야 하는 셈이다.
인도의 IT 서비스 산업 규모는 약 2800억 달러로, 인도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미국의 인플레이션과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여파로 고객사들이 관련 지출을 줄이면서 성장 둔화를 겪고 있다.
테크 마힌드라 최고경영자(CEO) 출신으로 인공지능(AI) 기업을 경영하고 있는 찬더 프라카시 구르나니는 미국 행정부의 새로운 비자 규정에 대해 "지정학적 영역의 다툼"이라며 "외국인 유학생과 외국인 근로자는 환영받지 못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인도소프트웨어산업연합회(나스콤)도 "H-1B 제도가 촉박한 기간에 대폭 변경되면서 전 세계 기업을 비롯한 전문가와 유학생에게 상당한 불확실성을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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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령에 서명 중인 트럼프 대통령 [사진=로이터 뉴스핌] |
다만 미국의 이번 결정이 오히려 미국에 불리하고 인도에는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 기업들의 관련 비용이 늘어나는 것은 물론, 기업들이 미국에 인력을 파견하는 대신 인도 현지의 IT 서비스 센터를 확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골드만삭스, JP모건 체이스, 모건스탠리 등 기업들은 이미 인도에 대규모 관련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인도 머니라이프 파운데이션의 설립자인 데바시스 바수는 비즈니스 스탠다드에 기고한 글에서 "2023년 H-1B 비자의 약 65%가 컴퓨터 관련 직종에 발급됐다. H-1B 비자의 주요 사용자는 아마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애플 등 미국과 타타컨설턴트서비시스(TCS) 같은 대형 인도 기업"이라며 "다국적 기업들은 이미 인도 내 글로벌 역량 센터(GCC)에 투자해 인재를 유치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결정 뒤) 과거 미국에 직원을 파견했던 기업들은 글로벌 센터를 확장해 현지에 인재를 유지하면서 글로벌 프로젝트에 대한 접근성을 유지하는 것이 더 저렴하고 간편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바수는 이어 "(미국의 새로운 비자 규정으로 인해) 인도에 더 많은 인재가 남게 되면 현지 인재 풀은 더욱 확대될 것이고, 인도 센터들은 코딩이나 데이터 입력뿐 아니라 연구개발(R&D) 등 고부가가치 업무를 더욱 더 많이 담당하게 될 것"이라며 "H-1B 비자(수수료 인상)는 인도 국내 경제에 잠재적 호재"라고 평가했다.
한편, H-1B 비자는 과학·기술·공학·수학(STEM) 분야의 전문 직종 종사자에게 적용되는 비자다. 고용주가 3월까지 청원서를 제출한 뒤 4월 추첨을 통해 발급되며, 연간 발급 건수는 8만 5000건으로 제한된다.
트럼프 행정부는 비자 수수료 인상을 통해 이민자 유입을 제한, 미국 일자리를 보호하겠다는 방침이다.
hongwoori84@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