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림의 차이'가 느껴지는 두 감독의 메시지
영화적 재미보다 앞서는 건 휴머니즘
[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박찬욱의 영화 '어쩔수가없다'와 이란의 거장 자파르 파나히의 영화 '그저 사고였을 뿐'을 같은 반열에 놓고 얘기하는 건 다소 무리가 따른다. 두 감독 모두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유명감독이지만 전혀 다른 문법으로 영화를 만들기 때문이다. 개봉 중인 영화도 관객 동원 면에서 비교가 안 된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200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고 있다. 자파르 파나히의 영화는 일부 마니아층의 지지를 얻으면서 2만명 정도의 관객을 동원했다. 우선 두 영화부터 살펴보자.
'어쩔수가없다'는 베를린영화제와 부산영화제를 거쳐오면서 올가을 한국영화 중 가장 주목받는 작품이었다. '어쩔수가없다'의 주인공 만수(이병헌)는 자신의 집 정원에서 회사에서 보내온 장어를 구워먹으면서 '다 이루었다'고 자부한다. 사랑하는 아내 미리(손예진)과 두 아이, 두 마리의 개, 어린시절 눈물을 삼키면서 이사를 나갔다가 다시 찾은 옛집. 더이상 완벽할 수 없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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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영화 '어쩔수가없다'. [사진 = CJ ENM] 2025.10.13 oks34@newspim.com |
그러나 다 이룬 삶을 지켜내기 위해 만수는 살인을 저지른다. 느닷없는 해고 통보로 오래 일했던 제지 회사에서 밀려난 그는 재취업에 걸림돌이 되는 경쟁자들을 제거해 나간다. 재취업이 절실한 업계 베테랑 구범모(이성민)와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실력자 고시조(차승원), 잘나가는 제지 회사 반장인 최선출(박희순)이 그들이다. 만수는 치밀하지도 냉정하지도 못한 솜씨로 이들을 차례로 제거한다. 화려한 주조연들이 출연하여 기괴한 방법으로 사람을 죽이고, 시신을 유기한다.
이 영화는 도널드 웨스트레이크의 '액스(AX)'를 원작을 한다. 봉준호가 '미키 17'을 내놨듯이 박찬욱도 외국 원작을 가져다가 각색하여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었다. 그러나 화려한 출연진과 풍부한 영화적 상상력에도 불구하고 관객을 설득시키지 못하는 건 재취업 때문에 사람을 죽인다는 설정이다. 과연 어쩔 수가 없었을까. 이란에서 가장 유명하고 존경받는 감독 중 한 명인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영화 '그저 사고였을 뿐'은 의외로 '어쩔수가없다'와 오버랩 되는 부분이 많다.
제78회 칸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이 영화는 고요한 밤의 정적 속에서 시작된다. 한 남자(에브라힘 아지지)가 임신한 아내와 어린 딸을 태우고 차를 몰고 가다가 길 잃은 개를 들이받는다. 어린 딸은 개를 치어 죽게 한 아버지를 원망하지만 아내는 '그저 사고였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자동차가 고장 나고, 차를 고치기 위해 마을을 찾는다. 그가 찾은 집에 있던 바히드(바히드 모바세리)는 삐거덕거리는 의족을 한 채 걷는 남자를 보고 몸서리 쳐지는 과거의 기억을 떠올린다. 그 의문의 남자가 몇 년 전 자신을 고문했던 정부 검사관이라고 의심하는 바히드는 그를 납치하여 사막으로 데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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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영화 '그저 사고였을 뿐'. [사진 = 그린나래미디어] 2025.10.13 oks34@newspim.com |
복수를 위해 구덩이를 팠던 바히드는 선뜻 실행하지 못한다. 만약 이 남자가 그의 인생을 파괴한 사람이 아니라면? 확신 없이는 무고한 사람을 살해할 수 없다고 판단한 바히드는 자신과 이란 정권에 의해 비슷한 피해를 입은 다른 사람들을 찾아나선다. 그중에는 결혼을 앞둔 골리(하디스 팍바텐)와 그녀의 남편(마지드 파나히), 이들의 결혼 사진을 찍고 있는 사진작가 시바(마리암 아프샤리), 그리고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당장 복수를 원하는 다혈질 하미드(모하마드 알리 엘리아스메르)가 있다. 그러나 그들의 복수는 결코 쉽지 않다.
'그저 사고였을 뿐'은 복수와 도덕적 죄책감에 대한 조용하지만 파괴적인 탐구다. 파나히 감독 특유의 롱테이크와 와이드 프레이밍으로 촬영된 이 영화는 긴장감을 서서히 고조시키며, 등장인물들과 그들의 고뇌가 프레임 안에서 살아 숨 쉰다. 영화적 장치가 별로 없어서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그 결과, 배우들은 멜로드라마로 치닫지 않으면서도 국가 폭력의 감정적 여파를 탐구하는 연기를 선보인다. 마지막 장면은 납치범이 나무에 묶인 채 부인하고, 항의하고, 간절히 살려달라고 애원하며 울부짖는다. 그 뒤에 결말로 가서는 더욱 충격적인 장면이 기다리는 영화다.
두 영화를 보면서 '울림의 차이'를 느꼈다면 과장일까. 박찬욱의 영화에서 주인공은 어쩔 수 없이 살인을 저지른다. 그 살인에는 필연적인 이유도 없다. 그저 가족과 생업을 지키기 위한 살인이다. 그러나 '그저 사고였을 뿐'의 주인공들은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부른다면서 '우리는 살인자가 아니다. 우리는 그들과 다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이 지키고 싶었던 휴머니즘은 배신을 부른다.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가 없었다는 가해자의 잔인한 보복 뿐이다.
어쩌면 우리가 끝까지 잃지 않아야할 건 인간에 대한 사랑이 아닐까. 많은 것들을 포기하더라도 휴머니즘은 끝까지 지켜야할 그 어떤 것이다. oks34@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