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핵심 요약
beta- 트럼프 집권 초기 분열적 언어가 민주주의 조기경보가 됐다
- 2020년 대선 부정 주장 뒤 1월 6일 의사당 사태가 벌어졌다
- 바이든은 통합을 내세웠지만 미국 정치의 분열은 남아 있었다
!AI가 자동 생성한 요약으로 정확하지 않을 수 있어요.
분열적 대통령 언어의 폐해
트럼프 집권 초기의 연설들은 민주주의 언어가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하나의 조기경보였다. 헌법은 그대로 존재하고 있었고, 의회와 법원 역시 정상적으로 기능하고 있었다. 선거제도 또한 유지되었다.
그러나 정치적 경쟁자를 공존해야 할 상대가 아니라 국민의 뜻을 방해하는 세력으로 묘사하는 언어, 국제협력을 공동의 이익보다 손익계산의 문제로 환원하는 언어, 그리고 제도적 절차보다 지도자의 결단을 우선하는 언어가 대통령직의 공식 수사 속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언어는 한 사람의 대통령만으로 만들어지는 것도, 한 번의 선거로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언어는 오랜 사회적 경험 속에서 축적되며, 반복을 통해 정치문화의 일부가 된다. 대통령은 그러한 언어를 증폭시킬 수는 있지만, 혼자서 만들어 내거나 하루아침에 되돌릴 수는 없다.

트럼프 행정부가 남긴 가장 큰 변화는 정책보다 정치문화에 있었다. 정치적 반대는 점차 정책의 차이가 아니라 국가의 정체성을 둘러싼 대립으로 이해되기 시작한 것이다. 공화당과 민주당은 서로 다른 정책을 제시하는 경쟁 정당이라기보다 미국의 미래를 위협하는 존재로 상대를 인식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의회의 토론은 상대를 설득하는 과정이라기보다 자신의 지지층에게 충성심을 증명하는 무대로 변해 갔다.
이러한 변화는 미국 정치의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켰다. 의회에서 상대 당의 발언은 점차 박수보다 야유를, 타협보다 거부를 불러오는 일이 많아졌다. 대통령의 연설은 국민 전체에게 전달되는 국정 메시지이면서도 동시에 상대 정당의 항의와 시위가 반복되는 정치적 이벤트로 전락되었다. 대통령이 말하는 순간조차 미국 사회는 하나의 청중이 아니라 서로 다른 현실을 믿는 두 개의 청중으로 나뉜다.
2020년 대통령선거는 이러한 분열이 얼마나 깊어졌는지를 보여주는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선거는 헌법에 따라 실시되었고 각 주의 개표와 인증, 사법적 검토를 거쳐 조 바이든의 승리가 확정되었다. 그럼에도 트럼프와 그의 지지세력은 선거가 "stolen(도둑맞았다)", "rigged(조작되었다)"고 반복해서 주장했다.
선거 결과에 이의를 제기하고 법적 절차를 통해 재검표와 소송을 요구하는 것은 민주주의에서 허용되는 권리였다. 문제는 법원에서 관련 주장들이 잇달아 받아들여지지 않고 모든 주가 결과를 인증한 뒤에도 선거 자체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언어가 계속되었다는 데 있었다. 2021년 의회 기록 역시 1월 6일 이전 수주 동안 이러한 주장이 반복·확산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 언어는 2021년 1월 6일 워싱턴에서 극단적 정치행동을 부추켰다. 이날 의회에서는 각 주의 선거인단 투표를 공식 집계하여 대통령선거 결과를 인증하는 상·하원 합동회의가 열릴 예정이었다. 트럼프는 백악관 인근 엘립스(Ellipse)에 모인 지지자들에게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자신들을 위해 행동한다면 "we win the election(우리가 선거에서 이긴다)"고 주장하고 의사당으로 행진할 것을 촉구했다.
이후 군중 일부가 경찰의 저지선을 뚫고 의사당에 진입하면서 상·하원 회의는 중단되었고 의원들과 펜스 부통령은 대피해야 했다. 미 하원 1·6 특별위원회 최종보고서는 이 공격이 선거 결과 인증과 미국의 오랜 평화적 권력이양 전통을 방해하려 한 전례 없는 시도였다고 결론지었다.
이 사건이 미국 민주주의의 역사에서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시위대가 의사당 건물에 난입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미국 의회는 1789년 이후 정치적 갈등을 토론과 표결이라는 제도적 절차를 통해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었다. 그런데 2021년 1월 6일에는 바로 그 의회가 대통령선거 결과를 헌법적 절차에 따라 확정하려는 순간 물리적 힘에 의해 일시적으로 중단되었다.
미국 정치학자 스티븐 레비츠키(Steven Levitsky)와 대니얼 지블랫(Daniel Ziblatt)은 『How Democracies Die』(2018, 한국어판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헌법과 법률만으로 민주주의가 유지되는 것은 아니며, 제도 밖의 비공식적 규범을 민주주의를 지키는 '가드레일(guardrails)'로 설명한다.
그중 핵심이 정치적 경쟁자를 제거해야 할 적이 아니라 정당한 경쟁자로 인정하는 '상호관용(mutual toleration)'과, 법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라도 민주주의를 훼손할 정도로 극단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제도적 자제(institutional forbearance)'이다.

선거에서 패배하면 결과를 인정하고 다음 선거를 준비하는 평화적 권력이양의 관행은 바로 이러한 규범 위에서 작동해 왔다. 따라서 1월 6일 의사당 사태는 단순한 질서문란을 넘어, 미국 민주주의를 오랫동안 지탱해 온 이러한 가드레일, 특히 상대의 정치적 정당성을 인정하는 상호관용의 원칙이 심각한 시험대에 오른 순간이었다.
"우리와 그들", "진정한 국민과 기득권", "국민과 국민의 적"이라는 구분에서 시작된 언어가 마침내 "승리한 선거와 도둑맞은 선거"라는 구분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정책을 비판하는 것과 상대방이 승리한 선거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것은 민주주의에서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전자는 민주주의의 경쟁이지만 후자가 충분한 근거 없이 반복되고 제도적 판정마저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정치적 경쟁의 공동 규칙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정치언어를 민주주의의 '조기경보'로 보아야 할 이유가 나타난다. 민주주의의 후퇴는 어느 날 갑자기 의회가 폐쇄되고 헌법이 폐지되는 방식으로만 시작되지 않는다. 먼저 상대를 설득할 필요가 없는 존재로 만들고, 다음에는 상대의 정당성을 의심하며, 마침내 선거와 법원, 의회가 내린 결과까지 자신에게 불리하면 믿을 수 없다는 언어가 등장할 수 있다.
1월 6일은 그러한 언어의 변화가 더 이상 말에 머물지 않고 미국 민주주의의 핵심 제도인 평화적 권력이양 절차를 직접 압박하는 행동으로 전환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실제로 의회는 시위대의 점령으로 중단되었던 합동회의를 같은 날 밤 재개하여 이튿날 새벽 선거인단 개표를 완료했다. 민주적 제도는 버텼지만, 제도가 버텼다는 사실만으로 민주주의가 건강하다고 볼 수는 없다.

정상트랙으로의 귀환
이러한 상황 속에서 2021년 1월 조 바이든(Joseph R. Biden Jr.)이 제46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바이든은 취임 연설에서 자신이 직면한 가장 큰 과제를 경제나 외교보다 국민의 분열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오늘 우리는 민주주의가 소중하며 민주주의는 연약하지만, 민주주의는 승리했다(Today, we celebrate the triumph not of a candidate, but of a cause, the cause of democracy. Democracy is precious. Democracy is fragile. And at this hour, my friends, democracy has prevailed.)"고 선언하며 민주주의의 회복을 새로운 행정부의 출발점으로 제시했다.
트럼프가 미국의 쇠퇴와 배신을 이야기할 때, 바이든은 치유와 통합을 다시 꺼내 들었다. 트럼프가 'America First'를 외교의 핵심 원칙으로 밀어부칠 때, 바이든은 동맹의 복원과 국제협력의 회복을 강조했다.
그는 트럼프가 탈퇴했던 파리기후협정에 재가입하고 세계보건기구(WHO) 복귀를 추진하였으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비롯한 전통적 동맹과의 관계를 다시 강화하고자 했다. 또한 민주주의 정상회의(Summit for Democracy)를 개최해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의 연대를 미국 외교의 중심 가치로 재확인하고자 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이러한 방향은 더욱 분명해졌다. 바이든 행정부는 유럽 동맹국들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며 러시아에 대한 대규모 경제제재를 추진하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재정적 지원을 주도해 나갔다. 국제질서는 다시 자유민주주의와 권위주의 체제의 경쟁이라는 구도로 설명되기 시작했고, 미국은 자신이 구축했던 전후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중심국가로 복귀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표면적으로 보면 미국의 정치언어는 다시 전통적인 모습으로 돌아가는 듯했다. 협력, 동맹, 민주주의, 국제규범, 연대와 같은 단어들이 다시 대통령 연설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국제사회 역시 미국이 다자주의와 동맹 중심 외교로 복귀한 것을 환영하는 분위기를 보였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대통령의 언어에서 먼저 나타났을 뿐, 미국 정치 전체의 언어를 곧바로 변화시키는데는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바이든 집권기간 의회의 분극화는 계속되었고, 선거 결과를 둘러싼 불신 역시 완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었다. 공화당과 민주당은 주요 입법과 예산, 이민정책과 대외정책을 둘러싸고 극단적인 대립을 이어 갔다. 상대 정당을 민주주의의 정상적인 경쟁자로 인정하기보다 미국의 미래를 위협하는 존재로 바라보는 시각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여기에서 중요한 사실은 대통령의 언어와 정치문화의 언어가 반드시 같은 속도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통령은 취임과 동시에 연설을 바꿀 수 있다. 그러나 의회와 정당, 언론과 시민사회가 오랜 시간 축적해 온 정치언어는 훨씬 느리게 변화한다. 민주주의의 언어는 대통령 개인의 의지만으로 회복될 수 없으며, 사회 전체의 신뢰가 함께 회복될 때 비로소 다시 설득의 언어로 돌아갈 수 있다.
결국 바이든 행정부는 국제사회에서는 미국의 전통적인 지도력을 상당 부분 복원하는 데 성공했지만, 국내 정치에서 누적된 분열의 언어를 근본적으로 치유하는 데에는 분명한 한계를 드러냈다. 민주주의의 제도는 여전히 작동하고 있었지만,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상호 신뢰는 이전만큼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이러한 한계는 2024년 대통령선거를 거쳐 다시 한 번 미국 정치의 방향을 바꾸는 중요한 변곡점이 된다. 트럼프의 재등장은 단순히 한 정치인의 귀환이 아니다. 그것은 미국 사회 내부에 남아 있던 정치적 불만과 정체성의 갈등, 그리고 미국의 역할을 둘러싼 서로 다른 국가 비전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역사적 사건이다.

*필자 최연혁 교수는 = 스웨덴 예테보리대의 정부의 질 연구소에서 부패 해소를 위한 정부의 역할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다. 스톡홀름 싱크탱크인 스칸디나비아 정책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매년 알메달렌 정치박람회에서 스톡홀름 포럼을 개최해 선진정치의 조건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그 결과를 널리 설파해 왔다. 한국외대 스웨덴어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은 후 스웨덴으로 건너가 예테보리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고 런던정경대에서 박사후과정을 거쳤다. 이후 스웨덴 쇠데르턴대에서 18년간 정치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버클리대 사회조사연구소 객원연구원, 하와이 동서연구소 초빙연구원, 남아공 스텔렌보쉬대와 에스토니아 타르투대, 폴란드 아담미키에비취대에서 객원교수로 일했다. 현재 스웨덴 린네대학 정치학 교수로 강의와 연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저서로 '우리가 만나야 할 미래' '좋은 국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민주주의의가 왜 좋을까' '알메달렌, 축제의 정치를 만나다' '스웨덴 패러독스' 등이 있다.
kimsh@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