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료 인하 vs 서비스 개선…누굴위한 논쟁?
진화론자 찰스 다윈이 말한 모든 생물의 살아남기 위한 싸움, 생존경쟁, 적자생존이 시작됐다. 살아남기 위해 부단히 싸우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 개인이든 기업이든 가혹한 경쟁에서 이겨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시기. 바로 지금 증권업계의 얘기다.
최근 자문형랩 수수료 적정성 논란으로 촉발된 금투업계 수수료 분쟁. 공급과 수요의 논리속에 증권사들의 제각각 속내와 경쟁양상, 선의의 경쟁구도로 가기 위한 요건, 이로 인한 소비자 선택의 향방 등 수수료를 둘러싼 업계내 역학관계를 짚어봤다. <편집자주>
[뉴스핌=홍승훈기자] 여의도 증권가에 때아닌 수수료 전쟁이 촉발됐다. 그간 이어져왔던 온라인 위탁수수료도, 빅딜을 따내기 위한 IB부문 수수료 경쟁도 아니다. 최근 한창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자문형랩의 수수료 적정성 논란이다.
포문은 역시 선제공격에 익숙한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이 열었다. 앞서 최근 랩시장 과열 경쟁을 우려한 김석동 금융위원장에 대한 시장의 첫 화답이기도 했다.
박현주 회장은 지난 7일 제 1회 금융투자인상을 받는 시상식에 참석해 3% 안팎인 자문형랩 수수료가 지나치게 높다는 지적과 함께 미래에셋이 수수료 인하를 주도해 투자자 부담을 줄여나가겠다고 선언했다.
삼성이 즉각 반격에 나섰다. 삼성증권 박준현 사장은 "지금은 수수료 경쟁을 할 단계가 아니다. 고객에게 보다 많은 가치를 주고 만족도를 높이는 데 치중할 때"라고 일격을 가했다. 이로써 증권업계내 자산관리부문 양대산맥인 삼성과 미래에셋의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직후 업계에선 현대증권이 미래에셋과 같이 수수료 인하경쟁에 뛰어들었고, 우리투자증권 등 일부 대형사는 삼성증권과 같이 고객서비스 향상을 모토로 대응 전략을 취했다. 아직 다수의 증권사들이 서로 눈치를 보며 분위기를 살피고 있지만 무게추가 어느 한 쪽으로 기울기 시작하면 수수료 인하 경쟁은 가속화될 조짐이다.
사진설명 = 강세장과 약세장을 상징하는 황소와 곰의 힘겨루기처럼 근래 대형 선발증권사간 자문형 랩등 금융상품 및 매매단말기등에 대한 수수료 경쟁이 치열하다. |
◆ 때아닌 수수료 전쟁 왜?
'수수료'. 증권업계에선 최대 수익원이다. 온-오프 주식위탁, 금융상품 판매, IPO, M&A 자문 등 증권사 수익원 가운데 수수료수익 비중은 적게는 30%에서 많게는 80%를 웃돈다. 트레이딩과 이자수익 등 일부 항목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수수료수익으로 이뤄져 있다. 그만큼 중요하고 민감할 수밖에 없다. 신규고객 창출과 타사고객 유인을 위해서도 수수료전략은 증권사 영업의 최대 전술 중 하나로 꼽힌다.
최근 금융상품 판매, 특히 자문형랩을 중심으로 한 자산관리수수료가 증권사의 안정적 수익원의 하나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지난 3/4분기(10~12월) 증권사 중 유일하게 시장 기대치를 상회하는 이익을 낸 삼성증권 또한 자문형랩을 중심으로 한 자산관리수수료 증가가 효자노릇을 했다.
투자자들이 펀드에서 랩으로 갈아타기 시작한 시점, 삼성증권이 이같은 트렌드를 먼저 읽고 치고나갔기 때문이다.
지난 2000년대 중반 금융투자업계내 다크호스로 급성장한 미래에셋의 파워가 주식형펀드에 있었다면 요즘은 랩 수수료수익으로 삼성증권이 돈방석에 앉게 됐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수익차원에서도 랩은 상당히 짭짤하다. 예컨대 8% 목표전환형일 경우 수수료 2%(200bp)를 전제로 지난해 같은 상승기때 목표달성을 해서 1년에 4번을 갈아탔다고 가정하면 고객은 32%의 수익률을, 증권사는 8%의 수수료를 얻게된다. 지금 삼성증권의 자문형랩 잔고가 3조원을 넘는데 3조원으로만 쳐도 200bp면 수수료수익이 무려 600억원이란 계산이 나온다. 부침이 심한 주식위탁수수료와는 달리 고객자산이 급격하게 움직이지 않는 이상 상당히 안정적인 수익원인 셈이다.
반면 한때 자산관리분야의 황제랄 수 있었던 미래에셋을 보자. 지난 2005~2008년 주식형펀드 붐을 일으키며 급성장한 미래에셋에는 돈이 넘쳐났다. 다른 증권사 직원들이 밖으로 영업하러 다닐 때 지점에 앉아서도 줄을 서서 기다리는 고객돈 받기에 시간이 부족했다.
하지만 금융위기 이후 최근 2년간 펀드환매가 이어졌다. 하락장에서 공격형펀드가 힘 을 못쓰며 수익을 제대로 못내줬기 때문이다. 시장 신뢰도 상당부분 무너진 상태다. 최근 박현주 회장은 이러한 상황에 대해 "아쉬운 점이 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금융당국 수장이 랩시장 과열을 경계하는 발언을 했고, 미래에셋이 승부수를 던졌다. 랩시장을 과열경쟁 구도로 만들고, 펀드를 부활하고자 한 의도가 엿보였다. 하지만 이는 업계나 투자자의 공감도, 당국의 속내도 제대로 짚지 못한 섣부른 대응이었다는 게 업계 지배적인 시각이다.
◆ "쏠림현상 경계가 때아닌 수수료율 분쟁으로 확산될 줄은…"
금융당국의 애초 우려는 자문형랩에 대한 쏠림현상이었다. 1년새 4~5배 가량 급속하게 자금이 몰렸고, 특히 랩운용이 일부 대형주에 과도하게 쏠렸다. 이같은 현상이 추후 시장 변동성 과정에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금융당국 한 관계자는 "위원장의 의중은 쏠림을 경계한 것이지 수수료를 문제삼은 것이라고 보긴 어렵다"며 "과거 카드사태와 PF대출 부실, 펀드환매 등이 모두 쏠림현상에서 나온 만큼 랩시장 또한 일부 대형주에만 집중되는데 따른 우려, 그리고 이에 대한 증권사들의 무작위 영업행태에 대한 경고였다"고 전해왔다.
하지만 시장은 뜬금없이 '수수료율'에 대한 문제로 이슈를 확대 재생산했고 업계는 때아닌 분쟁에 직면하게 된 것.
증권사 한 CEO는 "수수료율에 대한 차등은 각사 전략의 차이라서 누가 잘했다 못했다고 예단할 순 없다"면서 "다만 수수료는 많이 받지만 서비스가 기대 이하라면 고객들은 그 회사를 다시 찾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증권사들은 고객서비스 개선에 보다 주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언급했다.
자문형랩 한 투자자는 "내 돈을 투명하게, 제대로 불려주는 것이 중요하다. 1~2% 수수 료율의 차이는 상품선택의 잣대가 아니다. 수수료 10%를 주더라도 보다 신뢰가 가는 상품을 선택하는 게 투자자의 현실"이라고 전해왔다.
한편 최근의 수수료 논란이 업계내 긍정적인 시그널로 다가오는 측면도 없지는 않다.
자산을 불리며 수수료 수익에만 눈이 멀었던 증권사들이 보다 개선된 시스템과 서비스 제고로 랩운용의 질을 높이는데 나섰기 때문이다. 기왕 벌어진 수수료 전쟁이 선의의 경쟁구도 속에 고객서비스 개선으로 귀결됐으면 한다는 게 취재과정에서 느낀 업계와 투자자들의 공통된 바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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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 Newspim]홍승훈 기자 (deerbear@newspim.com)